[길을 묻는 이에게] 자기 의식 속에서 나오는 생각에 말리지 마세요
주인공에다 모든 걸 맡겨 놓으면 과거의 업이 다 무너진다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그 길이 바로 무상한 길입니다. 허망한 길이 아니라 무상한 길입니다. 시발점도 없고 종점도 없는 이 둥근 진리 속에서 그대로 흘러 도는 겁니다, 쳇바퀴 돌듯.
관법 알려주고 싶은데 자신이 없어요
질문 요즘은 제가 마음공부를 하면서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그런데 직장 동료들의 여러 가지 애로 사항을 지켜보면서 관하는 걸 일러 주고 싶은데 아직 제 공부가 짧아서 자신이 없습니다. 관하는 걸 확실하게 알려 주고 싶은데 어떻게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답변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제도하시는 그 공덕이 크다고 합니다. 그럴 때는 관하는 것만 일러 주세요. 여러 말을 가르치지 마시고요. 우환이 있거나 애고가 있거나 가난하거나 그렇다면 그것을 놓고 ‘너만이 가난치 않게 할 수 있잖아. 내가 못났으면 좀 더 지혜로운 마음이 생기게끔, 물리가 터지게끔 할 수 있는 것도 너밖에 없잖아!’ 하고 그렇게 하라고 해 주면 그냥 자기가 하면서 체험을 하게 되거든요. ‘아, 이럭하니까 이렇게 되더라’ 몇 번 그렇게 해 보고 그게 되더라 이러는 건 알았는데, 또 큰 거는 자기가 힘이 없어서 못 한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러니까 자기네들 자유죠. ‘내가 조그마한 건 이렇게 되는데 큰 거는 안 될 거다. 요렇게는 되는데 이렇게 큰 거를 힘없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나?’ 요렇게들 생각을 한단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과거에 업을 얼마나 지었기에 이런 고통이 오나?’ 요런 생각들을 해요. 그런데 업 붙을 자리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생각해서 입력이 된 것을 모두 지워 버리면 되는 거지, 그 업이 어디에 붙겠습니까?
그래서 옛날에 이런 말이 있죠. “무명천을 넘어서라.” 이러니까 이 무명천이 어디 있나 하곤 그냥 찾아다니다가 하세월을 보냈대요. 그러니 불사천에 가지도 못하고, 넘지도 못하고, 그냥 천 년이 지났다는 거죠. 그런데 왜 무명천이라고 했을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무명이 붙을 자리가 없다는 얘깁니다. 내가 만들어서 업을 받고 애고를 당하고, 내가 구덩이에 빠지게끔 만들어 놓고 빠져 가지고 애를 쓰는 거지, 누가 구덩이에 빠지라고 했습니까? 누가 구덩이에서 나오라고 했습니까? 누가 죄를 받으라고 그랬습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자기네들이 만들어서 그렇게 하고 만들어서 그렇게 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다스리면서 잘 조절해 나가면서 자기를 믿고 찾아라 이거죠.
나는 그래서 이날까지 ‘내가 잘되게 해 주시오.’ 하고 손을 꼽고 빌어 본 예가 없어요. 죽든지 살든지, 잘되든지 못되든지 그런 걸 가리지 않았으니까요.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으니까. 그렇게 굴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보이지 않는 중생들과 더불어 친구가 된 거지, 그것을 무서워서 피했다면 귀신들의…, 여러분, 귀신들이 어딨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에 의해서 귀신들이 있고, 여러분의 생각에 의해서 조상이 잘못됐고 이런 거죠, 다. 그리고 조상의 탓을 하고요. 이 문제가 한두 건이 아닙니다. 한생각을 잘하면 모두가…, 무명천이 아예 없어요.
지구가 큰 몸살을 앓고 있는데
질문 요즘은 우리 지구가 아주 큰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지구 안에 붙어사는 우리들은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는 불자로서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허허 웃을 수 있는 장부가 되고 싶은데 어떤 마음으로 공부해 나가야 할는지요.
답변 앞으로 우리가, 예를 들어서 산과 들로 배를 타고 다녀야 하고, 물속으로 수레 마차를 타고 다녀야 할 지경에 도달할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땅속에서 파먹을 걸 다 파먹고, 곶감 꼬치처럼 쌓아 놓은 거를 다 빼먹고 나면 나중에 먹고 살 게 없을 때 어떡해야 할까요? 하기야 뒤집어서 물속이 만약에 산이 되고 들이 된다면 또 파먹을 게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마음으로부터 만 가지 법을 내놓을 수도 있지만 만 가지 법을 들일 수도 있고 둘째, 내가 만 가지의 모습을 할 수도 있고 만 가지의 모습을 거둘 수도 있고 또 셋째, 내가 만 가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 만 가지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고, 이러한 뜻을 우리가 알지 않으면 안 되리만큼 지금 시대가 빠르게 치닫고 있습니다.
알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한 시루의 콩나물에 대가리 하나 낀 것밖에는 안 되는 나라, 지구 안에서도 그런데 대천세계를 한데 합친다면 그게 먼지 알갱이만이나 할까요? 그렇게 보잘것없는 먼지 알갱이 같은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면서 서로가 옳지 않다고 싸움을 하고 화목지 못하고 이런다면 우리가 지금 공부한다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사대 오온이 다 공해서, 소천세계 중천세계 대천세계가 있다 한다면, 바로 우리 이 지구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보는 대로 혹성들, 은하계, 태양계도 거기대로 문제가 있죠.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태양계도 수억 개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혹성들이 이 오온에 가득 차 있습니다.
또 벌써, 이런 말 하고 지나가면 벌써 백 년이 흘렀다는 둥, 십 년이 흘렀다는 둥, 삼 년이 흘렀다는 둥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런가? 요렇게 말하고 돌아서면 벌써 일 년이 지납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세히 알아야 됩니다. 똑똑히 따지고 보면 일 년 반이 지난다고 봅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돌아서면 말입니다. 그렇게 시공이 없이 빠른 그 진리 속에서 우리는 지금 허덕거리고, 이렇게 일일이 걸리고 사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우리 은하계를 따지고 보면 우리는 지금 은하계의 별성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별 속에 별이 있습니다. 별에서 별을 낳듯이 말입니다. 우리 인간의 혹성이, 혹성 안에 별이, 우리는 혹성이면서도 별입니다. 별이면서도 그 속에 지금 운행을 하고 있는 그 생명체들이 너무도 질서 정연하게 동맥 정맥을 오르고 내리는 반면에, 모든 일체 생명들은 자기 부서를 맡아 가지고 그렇게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은하계도 조금도 틈이 없이 운행을 잘하고 있고, 혹성 이 지구 자체도 그렇고, 모든 것이 운행을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가 어디로 돌아가는지 우리는 지금 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지구가 어디로 돌아서 어떻게 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대로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그 많은 혹성 중에, 그 많은 별성 중에, 그 많은 태양계 중에, 우리 인간이 마음 자체를 발견한다면 대우주 대천세계의 섭리를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음 속에, 티끌 속에 있듯이. 마음으로서, ‘만법’ 하면 대천세계 중천세계 소천세계까지 다 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항상 모르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알고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소릴 하는 것은 왜냐하면 여러분이 좌천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차원이 낮아서 눈도 멀고 귀도 뜨지 못했다면 모습을 바꿔서 짐승 속에 들어가서 짐승 모습을 타고 날 수도 있으니 하천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그 모습을 타고 났으니 그 모습의 노릇을 해야 될 거 아닙니까? 여자는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행동을 하고 남자는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의 행동을 하듯이 돼지로 태어났다면 돼지의 행을 해야 하겠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좌천보다는 승천이 된다면 마음의 세계로 우리가 등장할 수 있는 거죠.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세계에서 그 모두를 보고 듣고, 숙명을 알고, 타심을 알고, 천안을 알고, 천이를 알고, 신족을 알고 법바퀴를 굴려서 이 세상에 공덕이 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나가 보면 볼수록 광명이 비치고 전력 에너지가 다 그 사람의 능력을 또 이끌어 주고 할 수 있는 거죠, 모든 것을. 만약에 그런 능력이 없이 말로만, 학술적으로만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말을 하더라도 주인공 자체로서 둘이 아니게끔 해야죠. 그래야만 말을 해도 한 사이 없이 하는 게 됩니다.
한 사이가 없다 하는 것은 주인공 자체는 다 똑같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많지만 주인공은 다 똑같아서 한데 합쳐서 지금 이렇게 말을 해도 두드러지게 ‘내가 말을 했다’ 이럴 수가 없습니다. 왜? 여러분하고 다 같은 한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라는 것은 묘법의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옛날얘기처럼 듣지 마시고 “과거는 이렇게 지나갔으니깐 그만이지. 꿈이나 같아.” 이러지 마십시오. 과거도 오늘이고 미래도 오늘인 것입니다. 오늘에 우리가 해 놓은 것이 영원한 오늘에 다가온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을 하시렵니까? 여러분은 늙어서 몸 벗으면 그만이지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기는 그 모습을 바꿔서 또 나오니깐 말입니다. 그러니깐 영원히 살아야 하는 거죠. 그러니 늙었다 젊었다 하는 것은, 사람이 늙는 것은 익어 가는 걸 말합니다. 사람이 늙어 가면서, 젊어서부터 늙어질 때까지 그 경험과 체험과, 그 사람이 삶의 모든 것을 익히고 늙어질 때에, 그것은 바로 벼 이삭이 다 익어서 고개가 숙어지듯이 다 익은 걸 말합니다.
살면서 어떠한 게 불편했고, 어떠한 게 좋고 싫고 이런 생각으로 살다 보면 자기가 모습을 바꿔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대로 꼭 가지고 나옵니다. 짐승들도, 자기가 어떤 게 부족하면 다리를 길게 하든지 짧게 하든지 꼭 그렇게 해 가지고 나오니깐요. 그런데 한 가지 뭐가 중요하냐 하면, 짧게 하고 길게 하고 간에 사람의 씨는 사람을 낳는다. 그런데 그 사람의 씨로 사람을 낳는 것이 얼마 동안 가다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올 수가 없는 때가 있습니다. 또 새가 알을 낳다가 말입니다, 새가 알을 낳고 알이 새가 되고 이렇게 쳇바퀴 돌듯 하다가 천 년 만에 그 새의 모습을 바꾼다. 오백 년 만에도 바꿀 수 있고 삼 년 만에도 바꿀 수 있다. 이거는 자기 차원대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눈이 뜨이고 귀가 뜨이고, 다섯 가지의 그 눈을 다 떠서 수레바퀴 굴리듯 다 굴릴 수 있어야, 바로 마음으로부터 골수로 인해서 그것을 굴리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자유인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을 키워 나가야 하리라고 봅니다.
저의 사후의 일이 두렵습니다
질문 제 인생을 돌아보면 남을 도운 것은 기억에 없고 참 이기적으로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면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니 저의 사후의 일이 두렵고 걱정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지옥행은 면할 수 있게 살고 싶은데 저 같은 사람들이 정신 차릴 수 있게 한마디 일러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답변 여러분이 자세히 알아 둬야 할 거는 이 인연에 따라서 뭉친 것이 여러분이 마음먹는 대로 그게 분산돼서,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사대가 흩어져서 없어지면 그 의식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여러분의 차원대로 그 의식들이 모였다가 흩어질 때는 전부 지금 지네다 독사다 뭐, 개구리다 두꺼비다 벌레다 지렁이다 하고 수많은, 즉 말하자면 질척질척한 데서 나는 거, 화해서 나는 거, 태로 나는 거, 알로 나는 거 이 사생의 어떤 것이 될지 그거를 모릅니다. 여러분이 마음먹고 행하고 말하고 이렇게 산 그대로 영향을 받아서 그 원자에서 입자가 되고 입자에서 분자가 되고 분자에서 화해 가지고 그냥 수많은 것이 나가게 되는 겁니다. 쓰레기통에 그냥 수만 개의 생명이 우르르르 생기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즉 말하자면 어떤 것은 지네가 되고 어떤 거는 지렁이가 되고 어떤 거는 독사가 되고 이렇게 해서 모두 나갑니다.
사생이 사는 게 다 우리 인간 사는 거와 똑같습니다. 어떤 거는 아프지 않습니까? 벌레라고 밟으면 안 아픕니까? 우리 인간은 또 밟히면 안 아픕니까? 모두가 아프고 고통이고 고입니다. 내가 언젠가 어느 지원에 갔다가 허리를 조금 아파 봤는데 내 그렇게 허리 아픈 거 처음이었습니다. 허리가 아프니까 야, 이렇게 앉을 수도 없고 설 수도 없고 참 난감한 거예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어허! 내가 여기 조금 더 있으라고 하는 모양이로구나. 그렇지!’ 그러고서는 껄껄 웃으면서, 속으로 웃으면서 ‘그냥 난 더 있다 가겠다.’ 그랬더니, 아니나 달라요? 내가 갔더라면 큰일 날 뻔한 일이 있었어요. 갔더라면 어떡할 뻔했습니까? 되올 수도 없고. 그래서 ‘자기를 끌고 다니는 참자기는 참 일등이로구나.’ 그럭하고선 나니까 허리가 일어나지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몸뚱이를 누가 끌고 다닙니까? 여러분이 다 여러분을 끌고 다니는 겁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그러는 거죠. 만약에 독사 같은 마음이 있어 가지고, 이게 우리 몸속에도 있지 않습니까? 16억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16억만 되는 게 아닙니다. 고 하나하나의 의식 속에서 막 그냥 괘씸한, 남을 탓하는 마음도 생기고 남을 원망하는 생각도 생기고 속상하는 생각도 생기고 뭐, 강도질할 생각도 생기고 별일이 다 생기죠. 남을 약을 먹여서 죽이고 싶은 생각도 있고 그런 생각이 다 나는데 거기에 말리지 마시라 이겁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말려서 이 짓도 하고 저 짓도 하고 이렇게 되면 그런 사람에 한해서는 죽어서 사대가 흩어지면 그냥 그 수많은 구더기가 헤아릴 수 없이 생기듯이, 그냥 거기서 지네도 되고 독사도 되고 별거 다 됩니다. 그게 흩어져 가지고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마음의 차원대로 또 모입니다.
그래서 오간지옥이라는 게 뭐냐? 벌레로 나서 이 흙 속에서 다시 탄생 못 하는 것이 바로 오간지옥입니다. 독사지옥이 뭐냐? 독사가 돼 가지고 다시는 다른 모습으로다가 화하질 못하는 그게 독사지옥입니다. 우리가 딴 데 지옥이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 천당도 있고, 이 자리에서 승천도 하는 거고, 이 자리에 지옥도 있고, 바로 독사지옥도 있고 다 그렇습니다. 이 독사지옥이 돼서 왜 벗어나지 못하느냐? 독사가 되면 독사가 되는 대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습이 있어서. 그런 데다가 독사 엄마, 아빠가 새끼들을 오물오물하게 낳아 놓으면 그 엄마 아빠를 산 채로 뜯어 먹고 이 새끼는 삽니다. 그러면서 자랍니다, 그렇게 무섭게. 그래서 독사지옥이라 그럽니다. 아니, 그것이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갑니다, 그게 모두가. 그런데 우리는 그걸 까맣게 모릅니다, 지금. 내가 죽으면 그냥 ‘죽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지 죽어서 그렇게 그냥 내가 마음 쓴 대로 그렇게 되는 줄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근본 자리에다 모든 거를 맡겨 놓으면, 이 카세트에다가 다른 노래를 또 넣으면 그 앞서의 노래가 없어지죠. 그와 같이 내 전자의 과거의 업이 있어도 그렇게 주인공에다 모든 걸 맡겨 놓으면 앞서의 게 다 무너진다 이겁니다. 그리고 이 속에 들어 있는 의식들이 전부 악으로 가는 게 아니라 선으로 한마음으로 뭉쳐서 자기를 돌보는 보현신이 됩니다, 전부. 보살이 된다 이겁니다.
그런데 이 실험하는 것은 여러분 혼잡니다. 살아가면서 보십시오. 지금도 그렇습니다. 자식한테 할 말 다 하고 삽니까? 부부지간에 할 말 다 하고 삽니까? 그저 속 안 썩이려고 말 안 하는 것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화낼까 봐 말 안 하는 것도 있고, 내가 아프면, 뭐, 몸이 아파서만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쓰리고 그런 모든 일들을 어떻게 다 말을 하고 삽니까? 그러니 믿는 것을 하나라도, 나를 끌고 다니는 내 주인공을 믿어야 그래도 거기다 의지를 하고 살지요, 네? 내가 죽어 가지고 같이 갈 수 있는 거는 바로 나 자체입니다.
그와 같이 대신해 주는 게 없습니다. 대신 죽어 주는 것도 없고, 대신 똥 눠 주는 것도 없고 바로 자 주는 것도 없습니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그 길이 바로 무상한 길이죠. 무상한 길이라고 해서 허망한 길이 아니라 무상한 길입니다. 허망한 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왜? 시발점도 없고 종점도 없는 이 둥근 이 진리 속에서 그대로 흘러 도는 겁니다, 쳇바퀴 돌듯.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돌아가면서 그 고덩어리를 짊어지고 그렇게 앨 쓰고 살아야만 됩니까? 이 고를 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남녀를 막론해 놓고, 늙고 젊고를 막론해 놓고 모두 말입니다. 그런데 늙었다고 공부 안 하고 젊었다고 안 하고 학교 다닌다고 안 하고 장사 다닌다고 안 하고 이러다 보면 어이구, 바빠서 죽을 날도 없겠네요. 그러면 속수무책입니다, 그냥. 쓰러질 땐 속수무책이에요. 그러니 이 도리를 배우라고 내가 안 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