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야의 시, 불교를 만나다] 11. 류근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김광석 곡 리메이크로 대중 관심 커져 ‘지붕 낮은 연애 시인’으로 사랑 노래 마음·현실 간극 집착 고통으로 이어져 집착 아닌 진실한 사랑은 현재에 집중

2025-06-13     이일야 전북불교대학 학장
해당 삽화는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했습니다.

지난해까지 한 교계 신문에 ‘가요, 불교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2년 동안 연재했다. 대중가요 속에서 불교적 의미를 찾아 소개하고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인문학의 근본 물음을 오늘의 시선에서 성찰하는 내용이었다. 소재만 다를 뿐 지금 쓰고 있는 ‘시, 불교를 만나다’와 같은 문제의식을 지닌 글이다. 당시 류근 시인이 쓰고 김광석이 곡을 만들어 노래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쓰다가 그만둔 적이 있다. 얼마 전 KBS ‘아침마당’에서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해 전국 스님 노래자랑을 열었는데, 수안 스님이 이 노래를 불러 우승하는 장면을 보고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옇던 마음속 안개가 어느 정도 걷혔기 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오래전 내가 사는 시골 동네에 작은 라이브 카페가 있었다. 손님에게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들려주는 곳이었다. 언젠가 이 노래를 신청했더니, 가수의 말이 1년에 한 번 정도 부르는 곡이라고 한다. 널리 알려진 곡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후의 명곡’을 비롯한 각종 경연 프로그램에서 여러 가수가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김광석뿐만 아니라 가사를 쓴 류근 시인 또한 주목받게 되었다. 도대체 시인은 무슨 이유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 것일까?

‘글 써 먹고사는 괜찮은 사람’
노래를 부른 김광석이 어느 게시판에서 류근 시인을 두고 한 말이다. 가수의 지적처럼 시인은 대학 시절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하룻밤 사이에 노랫말을 수십 편씩 썼다고 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역시 그때 쓴 작품이다. 그러니 글 써 먹고사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빈말은 아닌 셈이다. 그래도 방점은 역시 가수의 눈에 비친 ‘괜찮은 사람’에 있다고 할 것이다.

류근 시인은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게 된다. 하지만 대기업을 다니다 그만두고 휴대전화 벨 소리 다운로드 회사를 차리는 등 시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보를 보인다. 모든 것을 정리한 그는 2010년 첫 시집인 <상처적 체질>을 출간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 시집은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후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진지하면 반칙이다> 등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자신의 시에 대해 ‘삼류 통속 트로트 연애 시’라고 평가한다. 엄숙함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지붕 낮은 연애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시는 삼류가 아니다. 문장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시인의 지적처럼 세상이 항상 엄숙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통속적인 감성이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요즘 시인은 어느 유튜브 방송의 ‘The 살롱’이라는 코너에 출연해 여러 시인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덕분에 시와 함께하는 그 순간만은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이 조금은 맑아지는 것 같다.

시인을 유명하게 만든 이 시는 정작 그의 시집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상처적 체질>에 ‘너무 아픈 사랑’이란 작품이 실려 있는데, 마지막 문장이 이렇게 되어 있다.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는 걸 너는 모른다.”
시인의 사랑이 참으로 아프긴 아팠던 것 같다. 그 유행가를 김광석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배우 박상원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부른다. 그가 살아있을 때 부른 마지막 노래인 것이다. 영화 ‘클래식’의 OST로 삽입되어 주인공의 가슴 아픈 사랑을 지켜보는 관중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직접 들어 보기로 하자.

“그대 보내고 멀리 / 가을 새와 작별하듯 / 그대 떠나보내고 /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 눈물 나누나 / 그대 보내고 아주 / 지는 별빛 바라볼 때 / 눈에 흘러내리는 /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 지울 수 있을까 /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 흩날리는 거리에서 / 쓸쓸한 사랑 되어 고개 숙이면 / 그대 목소리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어느 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 스치며 지나가고 /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 그대 미워져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 세상에 오지 말기 / 그립던 말들도 묻어 버리기 / 못다 한 사랑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사랑일까, 집착일까?
누군가 불교 전체를 관통하는 한 단어를 뽑으라고 한다면, 별다른 망설임 없이 ‘집착’이라 말하고 싶다. 흔히 불교를 이고득락(離苦得樂), 즉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는 가르침이라고 하는데, 우리 삶을 고통으로 이끄는 원인이 바로 집착에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실천 체계인 사성제(四聖諦) 역시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 가르침이다. 사성제는 삶을 고통이라 진단하는 고성제(苦聖蹄)와 그 원인을 밝힌 집성제(集聖蹄), 괴로움이 소멸한 멸성제(滅聖蹄), 그리고 열반에 이르기 위한 길을 제시한 도성제(道聖蹄)로 이루어졌다.

특히 집성제에서는 괴로움의 원인을 갈애(渴愛), 혹은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갈애란 목이 말랐을 때 간절히 물을 찾는 것과 같은 타오르는 욕망을 가리킨다. 삼독은 무언가를 가지려고 욕심을 냈는데[貪],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화[瞋]를 내고 어리석은[痴] 중생의 모습을 의미한다. 갈애와 삼독 역시 표현만 다를 뿐, 내용은 집착과 다르지 않다. 결국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 집착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집착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주로 마음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주식에 투자했다가 많은 돈을 잃었다고 해 보자. 이런 경우 현실에는 돈이 없지만, 마음에는 잔상이 진하게 남아 있어 아무리 잊자고 다짐해도 자꾸만 잃은 돈이 생각난다.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연인은 내 곁을 떠났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마음과 현실 사이의 엄청난 간극이 집착을 낳고 고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군대 시절 함께 근무했던 선임이 정기 휴가를 갔다가 복귀하지 않는 바람에 부대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사정을 들어 보니, 휴가 때 사랑에 빠진 여인과 헤어지기 싫어 귀대하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헌병대에 붙잡혀 영창에 다녀왔는데, 선임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이 경우에도 집착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군대라는 현실에 그녀는 없지만,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그를 애타게 부른 것이다. 이때 속절없이 몸이 마음을 향해 질주하면 사고로 이어지고 만다. 군대에서 여자 친구와 헤어진 장병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시인 역시 사랑하는 연인과 작별하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아 홀로 울고 있다. 몸으로는 보냈으나 마음으로는 보내지 못한 것이다. 지는 별빛을 바라볼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자문하면서 말이다. 마음과 현실 사이에 너무 먼 괴리가 생긴 것이다. 다시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오지 말자고 노래할 정도로 아팠던 것 같다. 결국 시인은 스스로 고백하고 만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픈 사랑을 노래한 김광석은 이렇게 딴지를 건다.

“아픈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우기고 싶겠지만 사실은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부정하고 싶은 심정이지요.”

앞서 소개한 게시판에 있던 글이다. 가수의 지적처럼 그녀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시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아픈 사랑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성찰을 한 것 같다. 아주 먼 전생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쓴 유서는 실은 집착일지 모른다고. 그녀가 떠났다는 현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웠던 것이라고. 그러므로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마음에서 그녀를 보내 주는 것이라고. 그것이 집착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랑과 집착 모두 마음의 에너지가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다만 집착이 과거에 방점이 찍힌다면, 사랑은 현재에 집중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바로 지금 정성을 다해 마음껏 사랑하고 이별할 때 ‘쿨’ 하게 보내 주면 아픈 사랑 노래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시인도 ‘독작(獨酌)’에서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사람은 / 진실로 사랑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노래하지 않았는가. 진실한 사랑 에너지는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작동하니 말이다. 앞서 소개한 수안 스님이 노래를 부르기 전 관객들에게 전한 말을 끝으로 마치려 한다. 

“여러분, 오늘 이 노래를 듣고 고통의 원인인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진정한 사랑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한줄 요약 
시인은 아픈 사랑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성찰을 한 것 같다. 마음에서 그녀를 보내 주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집착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