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붓다를 만나다] 12. 세상의 모든 어머니께 바치는 노래
孝 담은 불경, 유교 국가 조선에 퍼지다 14세기 전후해 우리나라 유통 시작 15, 16세기 전국 사찰서 다량 간행 명빈김씨 발원본 인쇄 선명 최선본 어머니 은혜 등 도해 판화 21점 실려
유교를 국시로 삼았던 조선시대에 수십 차례 인쇄되고, 널리 읽힌 불교 경전이 있다. 바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하 〈부모은중경〉)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에 보답하는 경전’이란 제목과는 달리, 〈부모은중경〉은 중국에서 불교가 토착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성립된 위경(僞經)이다. 삭발과 출가, 그리고 왕과 부모에게 예경을 올리지 않는 불교의 모습은 효(孝)를 중시한 중국인들에게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의 불교도들은 효를 강조한 경전들을 한문으로 번역했고, 당나라 초기에 이르면 유교의 효(孝) 사상과 불교의 보은(報恩) 사상이 융합된 〈부모은중경〉을 찬술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후대에 만들어진 ‘가짜 경전’은 오히려 이러한 경전이 만들어지고 널리 믿어졌던 사회 구성원들이 중요시한 가치를 보여 주기에 가치가 있다.
유교 국가의 불교 경전
조선시대에 간행된 〈부모은중경〉 대부분에는 경전의 내용을 도해한 여러 점의 판화가 실려 있다. 이처럼 판화가 삽입된 〈부모은중경〉이 우리나라에 널리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14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짐작된다. 이후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부모은중경〉은 전례 없는 규모로 급격히 간행되었다. 고려 말에 대두한 신진사대부가 주축이 되어 건국한 조선은 성리학에 기반한 국가였다.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부모은중경〉은 불교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새 나라가 지향하는 이념에 걸맞았기에 서민 교화를 위해 다량으로 간행되었다.
조선시대의 〈부모은중경〉 판본 중 시대가 올라가는 것으로 명빈김씨(明嬪金氏, ?~1479)가 발원한 판본이 있다. 이 판본에는 간기(刊記)가 없어서 간행의 자세한 경위는 알기 어렵지만, 경전의 가장 끝머리에 수록된 발문(跋文)에서 1432(세종 14)년에 ‘대공덕주 명빈김씨’가 발원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이 〈부모은중경〉 판본에 대해서는 1416(태종 16)년에간행된 〈장수경(長壽經)〉 말미에 실린 발문(跋文)이 좋은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이에 의하면, 호월헌산인 첩봉(湖月軒山人 疊峯)은 〈법화경(法華經)〉과 〈은중경(恩重經)〉이 불법의 정수이며, 〈장수경(長壽經)〉은 진전(眞詮)의 묘결(妙訣)이기에 이 경전들을 시급히 간행하고자 원을 세웠다. 이에 여러 사람에게 시주를 받아 우선 1404(태종 4)년에 〈법화경〉과 〈은중경〉의 판각에 착수하여, 3년 후인 1407(태종 7)년에 이를 완간했다고 한다. 이 〈장수경〉과 1432년에 명빈김씨가 발원한 〈은중경〉은 제책 상태나 서체가 서로 흡사하다. 이로 미뤄보아 명빈김씨가 1432년에 발원한 〈부모은중경〉은 1407년에 개판된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궁실에서 간행한 것으로 짐작된다.
명빈김씨는 공식적인 간택 절차를 밟아 입궁한 태종(太宗, 재위 1400~1418)의 후궁이었다. 그녀는 태종의 재위 연간에 유일하게 정1품 빈(嬪)의 지위에 있었던 후궁이며, 그녀의 거처는 명빈전(明嬪殿)이라 불릴 만큼 격이 높았다. 천수를 누렸던 그녀는 태종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7대에 걸쳐 조선의 왕들을 보필했기에 내명부(內命婦)의 큰 어른으로서 존숭을 받았다. 불심이 깊었던 명빈김씨는 여러 경전을 개판하여 간행했고, 불상을 조성해 사찰에 봉헌하는 등 많은 불사에 대시주(大施主)로서 동참했다.
태종은 불교에 호의적이지 않았고, 조선 초기의 신료들 역시 왕실 여성의 불사가 지나치다고 비판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불경을 펴내는 일은 먼저 세상을 떠난 왕과 왕비, 그리고 부모의 명복을 빈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비판을 피해 갈 수 있었다. 또한 첩봉의 발문이 말해 주듯이 조선 초기 〈부모은중경〉은 〈법화경〉과 함께 ‘불법의 정수’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중시되고 있었다. 명빈김씨가 발원한 〈부모은중경〉은 15, 16세기에 걸쳐 전국 각지의 사찰에서 여러 차례 복각·모각되어 간행되었다. 다량으로 간행된 불경은 불교의 가르침이 많은 이들에게 확산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글과 그림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 새롭게 판목을 만들어 인쇄한 〈부모은중경〉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었을까. 명빈김씨 발원본 〈부모은중경〉은 고려시대에 간행된 〈부모은중경〉과 비교할 때 여러 가지 차이점을 보여준다. 이 판본은 경전 앞뒤의 표지가 떨어져 있는 상태로 보아 불상의 복장(腹藏) 안에 공양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판화의 새김이 선명하고 인쇄된 상태가 선명한 최선본(最善本)이다.
경전의 첫머리는 ‘佛說大報父母恩重經(불설대보부모은중경)’이란 경의 제목으로 시작되며, 다음 행에는 ‘姚秦三藏沙門鳩摩羅什奉 詔譯(요진의 삼장법사 구마라습이 황제의 명을 받들어 번역했다)’라 하여 역자를 밝혔다. 쿠차왕국 출신의 구마라습(344~413)은 중국 후진(後秦)의 황제 요흥의 명에 따라 장안에서 불경 번역 사업을 총괄하며, 수많은 인도의 불교 경전을 정확하고 문학적인 한문으로 옮긴 불세출의 역경승이다. 중국에서 성립된 위경의 판본 중에 이렇게 구마라습을 역자로 제시한 경우는 드물다. 이 〈부모은중경〉을 만든 이들은 ‘구마라습’의 이름을 빌려 경전의 권위를 높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 판본에는 경전의 내용을 도해한 모두 21점의 판화가 실려 있다. 경전은 부처가 길을 가다가 오래된 해골에 예배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며, 아이를 배고 성인이 될 때까지 길러 준 어머니의 열 가지 은혜를 도해한 10점의 판화, 어머니의 막중한 은혜를 8가지 비유를 통해 도해한 8점의 판화로 이어진다. 경전의 후반부는 은혜를 갚기 위해 참회하고 삼보에 공양하는 장면, 그리고 불효자는 아비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효자는 그 공덕으로 인해 부모가 하늘에 태어나 쾌락을 누린다는 내용을 도해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21점의 판화 중 가장 핵심은 어머니의 은혜를 열 가지로 정리하여 글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열 가지 은혜는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몸가짐을 조심하는 은혜, 산고를 감내하는 은혜, 산고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보며 근심을 잊는 은혜, 쓴 음식은 삼키고 단 음식을 뱉어서 먹여 키우는 은혜, 아기에게 마른자리를 내주며 키우는 은혜, 젖을 먹여 양육하는 은혜, 깨끗이 씻겨 가며 키워 주는 은혜, 자식이 장성하여 길을 떠날 때 걱정해 주는 은혜, 자식을 위해 악업도 마다치 않는 은혜, 항상 자식을 애처롭게 여기고 위하는 은혜를 말한다.
이 판본은 화면의 우측에 게송을 배치하고, 좌측에 그림을 배치한 구성을 보여준다. 각 장면에는 지붕과 기둥을 묘사하여, 전근대시기 여성의 주된 생활공간이었던 실내 전경을 나타내었다. 대부분의 장면에는 어머니와 시녀 혹은 어머니와 자식 등으로 구성된 2, 3인의 인물이 등장할 뿐이다. 비록 표현이 세밀하거나 풍부한 것은 아니지만 불교미술 속에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흔치 않은 예이다.
여기서 다시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이란 경전의 제목으로 돌아와 본다. 경전의 제목에서는 ‘부모’라고 되어 있지만, 경전의 본문에서는 ‘어머니’의 은혜에 초점을 맞춰 칭송하고 있다. 이 점은 아버지의 은혜를 강조한 유교의 〈효경(孝經)〉과 크게 대비되는 점이기도 하다.
▶한줄 요약
효를 강조하는 <부모은중경>은 불교 경전임에도 새 나라가 지향하는 이념에 걸맞았기에 서민 교화를 위해 다량으로 간행되었다. 14세기 전후로 우리나라에 널리 유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