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법일기] 낡은 승복 입고 경내 손수 관리 단단한 수행 삶 가슴 깊이 남아 

2025-06-13     조정희/ 국제포교사, 명상 전문 트레이너

눈이 많이 오는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은 눈 때문에 많이 막혀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었습니다. 그날은 미국 서미사 주지 스님(故 일면 스님)께서 통도사 부근의 토굴에서 용맹정진 수행을 마치시고 해제하신 날이자 곧장 미국으로 돌아가시는 날이라, 처음엔 공항 배웅을 정중히 거절하셨지만 여러 번 간청 드린 끝에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님께서는 마치 여름옷처럼 얇고 낡은 승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기온이 영하 10도를 넘는 매서운 날씨에 눈보라까지 몰아치는 날 그런 옷을 입고 계시다니, 깜짝 놀라 인사를 드린 후 어찌 된 일이냐고 여쭈니, 스님께서는 한국에 입국하실 때 입었던 승복은 이미 벗어 다른 스님께 드리고, 그 스님의 가장 낡은 승복을 대신 입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주지 스님은 칠십 중반의 연세셨지만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며,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제가 처음 주지 스님을 뵌 것은 2000년, 미국 시애틀에 머무르던 시절이었습니다. 한 미국인으로부터 서미사 이야기를 듣고, 여름방학을 맞아 뉴욕에서 온 딸과 함께 지도를 보며 사찰을 찾아갔습니다. 넓은 대지 위 작은 언덕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대웅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계사 대웅전만큼 크진 않았지만 한국 전통 사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 모습은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불보살님께 삼배를 올리고 법당 안을 둘러보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주지 스님께서 처음 보는 저희 모녀를 향해 공양을 하고 가라 하셨습니다. 공양간 절밥이 맛있다고 말씀드리자 스님께서는 젊을 적 통도사에서 공양주를 하셨다며 음식도 잘한다고 웃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고등학교 시절 쇼펜하우어의 철학 서적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출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젊은 시절 오대산 사자암 중대나 토굴에서 홀로 수행하며, 한 번 선정에 들면 마치 곰이 겨울잠을 자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오대산 백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셨다는 이야기를 오래 전부터 아는 분이 들려주신 적도 있습니다.


서미사 경내는 아주 넓었지만, 주지 스님께서 혼자 손수 관리하셨습니다. “절이 잘 유지되어야 신도들이 오래도록 불법을 들을 수 있는 터전이 된다”며 잔디도 직접 깎고, 건물 수리도 직접 하셨습니다. 신도들의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기시고, 특히 홀로 되신 연로한 분들을 찾아 병문안을 가시며 불법을 전하고 위로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1980년대 초 미국 땅에 한국 전통사찰을 우뚝 세우기 위해 온몸과 마음을 다 바치신 주지 스님께서는 2년 전 열반에 드시며 6과의 사리를 남기셨습니다.


눈보라 치던 겨울날 공항에서의 그 만남과 스님의 웃음, 얇은 승복 너머로 비쳐지던 단단한 수행자의 삶은 지금도 제 가슴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