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과 출세간] 혁신은 수행이다 

변화 첫걸음 내딛는 일은 리더의 몫 조직 유기체 작동하게 숨 불어넣어야 흐름 조율하는 겸손·단단 리더십 필요  

2025-06-13     이화행 교수/ 동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혁신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낯섦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낳는다. 그것이 개인을 넘어 조직의 차원에 이를 때, 변화는 늘 긴장과 저항을 동반한다. 그래서 혁신은 새로운 기술이나 전략이 아니라, 조직 내부에 흐르는 ‘의식’의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늘날처럼 빠르게 재편되는 시대에서 혁신을 거부하는 조직은 곧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다.

리더십의 역할은 이 지점에서 중요해진다. 구성원 모두가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해도, 실제 변화의 첫걸음을 내딛는 일은 대개 리더의 몫이다. 리더가 앞서 걸으며 조직의 방향을 제시하며 저항을 껴안고 내부의 혼란을 통합할 수 있어야 변화는 비로소 현실이 된다. 특히 오늘날처럼 디지털 전환과 세대교체가 동시에 일어나는 환경에서는, 전통적인 지시나 통제 방식의 리더십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혁신은 언제나 낡은 관성을 부수는 일과 마주친다. 이때 리더는 충돌을 두려워하기보다, 충돌을 진단의 신호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변화에 대한 반발은 게으름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구성원의 말 뒤에 숨은 맥락을 읽고, 변화의 필요를 감정이 아닌 의미로 설득할 수 있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조직심리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변화의 단계별 수용’이라고 부른다. 처음엔 충격과 저항, 이어지는 혼란과 회의, 그리고 점진적인 수용과 내면화이다. 리더는 이 전 과정을 통과하며 조직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혁신은 불교 수행과 비슷하다. 만물만생은 고정됨이 없이, 찰나찰나 나투고 화하여 돌아간다. 혁신이란 고인 물을 흘려보내는 일이며, 스스로에게 익숙해진 것을 내려놓는 일이다. 그것은 늘 불편함을 동반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성장의 가능성이 움튼다. 혁신은 기존 구조의 균열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질서를 실험할 수 있는 전환기적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혁신은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물러섬 없는 인내의 시간 속에서 조용히 축적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리더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겸허함, 익숙한 방식에 매달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는 결단력. 이런 내면의 훈련이 선행되어야 조직을 이끌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수행을 정진이라 부른다.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행위로서 혁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진이다. 눈에 띄지 않더라도,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그렇게 우리는 변화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

조직의 리더란 단지 성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작동할 수 있도록 숨을 불어넣는 사람이다. 혁신의 리더는 앞서 걷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걸으며 흐름을 조율하는 존재다. 이 겸손하면서도 단단한 리더십이야말로, 우리가 불확실한 시대에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는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