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불논단] 디지털 시대, ‘법재’가 진짜 자산

정보 유출, 디지털 사회 불안정성 드러내 정신적 자산 법재는 해커도 훔칠 수 없어 불자는 참된 내 것 알고 간직하며 살아가

2025-06-13     성제 박준석 정사/ 위덕대 불교문화학과 교수

지난 4월 국내 최대 통신기업인 SK텔레콤이 대규모 해킹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해킹으로 유출된 정보는 무려 2300만 명의 휴대폰 인증 정보로, 사실상 국민 절반 가까이의 실명 기반 디지털 신원이 노출된 셈이다. 

휴대폰 인증 정보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다. 오늘날 그것은 곧 개인의 삶을 입증하는 ‘디지털 주민등록증’이며, ‘전자 도장’이기도 하다. 그런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사실은 디지털 사회가 지닌 불안정성과 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번 사건은 단지 기업 보안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나의 것’이라 믿고 살아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외부에 노출될 수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재물과 명예, 권한과 정보는 평소엔 ‘내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잠시 머무는 것’에 불과하다.

진각성존 회당 대종사는 다음과 같이 법문한 바 있다.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인연이 다해 떠날 때는 나를 괴롭히지만, 법재(法財)는 영원불멸하여 조상에게는 복과를 주고 자손에게는 밑거름이 된다.”  <실행론>4-6-11(가)

이 말은 재산의 무상함을 경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물질은 소유하는 순간부터 책임과 위험을 동반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디지털 자산, 정보 자산 또한 그러한 무상의 영역에 속한다. 결국 해커 한 명이 한순간에 그것을 빼앗을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내 것’이라 할 수 없다.

반면, 해커도 훔칠 수 없고 죽음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법재’이다. 법재는 불법(佛法)을 배우고, 닦고, 실천하면서 쌓아가는 정신적 자산이다. 이 자산은 은행에 예치되지 않지만, 업(業)의 통장에는 분명히 기록된다. 누가 보지 않아도,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복덕이 되어 자신과 자손에게 선연을 만든다. 법재는 해킹될 위험도 없고,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죽음 이후를 밝히는 등불이 되고, 다음 생에서도 자비의 인연을 이끌어 주는 씨앗이 된다. 

세상은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다. 모든 것이 스마트폰 안에 들어 있고, 대부분의 삶은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물질의 허상을 다시 묻고 있다. 진짜 내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언제든 남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무엇이 진짜 내 것인가’를 다시 묻고,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진각성존의 말씀대로, 재물은 인연이 다하면 나를 괴롭힌다. 그러나 법재는 인연이 다해도 나를 살린다. 해커도 훔칠 수 없고, AI도 복제할 수 없으며, 죽음조차 빼앗아갈 수 없는 그 법재를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불자란 세상이 무언가를 빼앗아 가더라도 잃지 않는 ‘참된 나의 것’을 알고,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깨달음 속에서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안심(安心)과 해탈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