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연의 수행 다이어리] 장미꽃이 ‘나쁜 놈’?

2025-06-06     강소연/중앙승가대 교수
존재가 분해되어 보일 때,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난다. ⓒ강소연

11. 마음이 일어나는 과정 보기

어느 날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잠시 ‘아는 마음’이 바탕 자리(허공)와 하나가 되어 머물렀다. 버스에서 내리니 길가에 장미꽃이 피어 있었다. 장미꽃을 보는 순간 “나쁜 놈”이라고 중얼거렸다. 이게 뭐지? 장미꽃이 왜 나쁜 놈일까? 바로 그 순간 반야(통찰지)가 발사되어 마음이 일어나는 전개 과정이 낱낱이 ‘분해’되어 보였다. 무고한 장미꽃이 결국 나쁜 놈이 되는 과정을 보도록 하자.  

(1)장미꽃을 보다(6근과 6경 중 안근眼根과 색경色境이 만나다. 촉觸이 일어남). → (2)‘예쁘다’라고 느낀다(수受가 일어남). → (3)‘저걸 찍어야 하는데’라는 인식이 일어남(필자는 불교 유물을 약 30년 넘게 촬영하고 다녔기에 예쁜 것을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촬영을 해야 하는 습관적 소유욕이 발동한다). → (4)‘아, 참! 그런데 못 찍어. 결혼하고 나서는 육아에 가사일에 카메라를 아예 들고 다닐 수가 없어.’ → (5)‘남편이 조금만 도와주면 좋을 텐데.(그러면 예전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텐데)’ → (6)‘너무 가정일에 무심한 거 아니야? 정말 힘들다.’ → (7) ‘(남편) 나쁜 놈.’(분노의 행行이 일어남)

아! 이게 ‘반야’구나!
장미꽃을 보자마자 나의 인식 작용은 이처럼 번개같이 일어나 나쁜 놈이란 결론과 함께 분심이 올라온다. 이것이 바로 ‘오온’이구나! ‘색(色)-촉(觸)-수(受)-상(想)-행(行)-식(識)’이 빛의 속도로 전개된 것이다. 만약 이 과정이 생겨나는 것을 반야로 통찰하지 못했다면, 떠오른 상(想: 인식, 분별, 이미지)으로서의 남편이 실재인 줄 알고 분노로 반응(행行)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다시 내 업장이 되어 무의식은 오염일로였을 것이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운영되는 과정,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실상(實相: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통찰하는 것. 아! 이것이 ‘반야’의 힘이구나! 오온이 연기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또 사라지는 과정을 보니, 더 이상 그것에 속을 일은 없다. 실체 없는 허상이었다. 우리의 뇌는 바보라서 ‘생각으로 떠오른 남편(이미지)’과 현재 소파에서 뒹굴고 있는 ‘실재하는 남편’을 구분하지 못한다. 

‘생각만 해도 부아가 난다’라는 말이 있다. 그저 ‘생각’일 뿐인데, 그것에 반응하여 ‘화’를 내는 우리의 습관적 메커니즘을 표현한 말이다. 이러한 존재의 메커니즘을 불교에서는 ‘오온(五蘊)’이라고 한다. 오온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하지만 이것이 오온이 아니라 ‘오취온(五取蘊)’이 되어 스스로를 오염시키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생각’은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무상과 무아라는 본성을 드러내며 허깨비처럼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는 일어난 생각에 반응하여 감정적인 고락(苦樂)을 스스로 자초한다. 반야(통찰지)로 관(觀)하지 못하면, 우리는 탐(貪)·진(瞋)·치(痴)에 계속 놀아날 수밖에 없다. 

마음이 ‘반응하는 과정’을 낱낱이 보다
일어나는 순서는 ‘치→탐→진’으로 전개된다. 일단 ‘내가 있다’라는 ‘치(무명, 어리석음)’는 디폴트값이다. 연기(緣起)되어 일어난 현상이 ‘있다’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내 몸도 내 마음도 모두 조건 따라 일어났다가 조건 따라 사라진다. 하지만 이것을 고정불변의 무엇으로 착각하고 ‘있다’라는 유신견(有身見)을 낸다. ‘있다’라고 착각(치)하면서 그것을 소유하여 유지하기 위해 ‘탐(갈애, 취착)’이 생겨난다. 예를 들면 ‘내 몸이 있다’ 또는 ‘내가 있다’라고 착각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리고 그것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는 ‘진(분노, 성냄)’을 일으킨다. 

위에 예시로 든 마음의 전개 과정은 ‘오온’이 어떻게 ‘오취온’이 되어, ‘치-탐-진’으로 반응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2)번의 (장미꽃이) ‘예쁘다’라고 느낀 ‘수(受)’의 단계에서 이미 에고(자의식)가 개입되어 호불호(好不好)의 느낌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에고는 더욱 기승을 부려 무의식 저장고 속의 기억과 느낌, 억압과 집착을 건드려 끄집어낸다(유식唯識 사상에서는 에고를 말라식이라 하고, 그 이면의 무의식을 아뢰야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의식으로 표현화된 내 기억 속 요소들[상想]이, 마치 실재하는 양 나는 감정적으로 반응[행行]하게 된다. 만약 이것이 순간적으로 일어난 오온의 전개임을 알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에게 화를 냈을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남편은 ‘또 왜 그래?’라고 했을 것이다. 장미꽃이 부른 참사이다. 

장미꽃은 죄가 없다. 그것을 보고 반응한 나의 반응체계가 오염되어 있던 것이다. 이러한 오염된 반응체계의 발동을 <대승기신론>에서는 ‘염법연기(染法緣起)’라고 한다. 이는 ‘청정한 진여의 마음에서 무명의 마음이 일어나 어떻게 점점 거칠고 어둡게 변화해 가는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