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원의 불교미학산책] 11. 정각원 주련-나옹 선사 선시와 '화엄경' 게송 사이 세 구절

나옹 선사 선시와 ‘화엄경’ 게송 사이 세 구절 전각 앞·옆면 기둥에 16개 주련 출처 모르는 ‘동국상방대광명’ 등  여래현상품·현수품 사이 배치 의문

2025-06-06     서정원 박사
동국대학교 돌계단 중간에서 바라본 정각원.

돌계단을 오른 우리는 돈점의 스텝으로 정각원에 도착했다. 정각원은 동국대학교의 주법당으로 우리가 지나온 대각전을 비롯해 학교 전체의 신앙생활을 총괄하는 곳이다. 앞면 다섯 칸, 옆면은 세 칸의 거대한 법당으로 옛날 조선시대의 궁궐을 뜯어 만든 굴곡이 있는 건축물이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각원의 주련을 보기로 하자.

우리는 앞서 대각전을 산책하며, 학문 분야가 다양해졌음에도 천여 년 이상 한자에만 매달렸던 조선에 대한 백용성 스님의 한탄을 들은 바 있다. 오늘날 학문의 다양성은 얼마나 넓어졌으며 한자는 얼마나 시대에 뒤쳐졌는가 생각해 보면, 백용성 스님의 혜안에 감복할 따름이다. 불교도 이제는 한자에서 많이 탈피한 것 같다. 한글 세대를 위한 경전 시리즈가 나와 각광을 받은 게 벌써 30년 전이다.

특히 동국대학교는 한문 경전의 우리말 번역을 통해 불교가 고리타분한 한자에서 벗어나고자 한 백용성 스님의 발원을 실현한 곳이다. 동국대학교 역경원이 한글 대장경을 완역한 것이 25년 전이고, 이를 전산화해 공개한 것이 20년 전 일이다. 그런데 불교의 한글화와 우리말로 된 불교의 산실인 동국대학교 대표 법당인 정각원은 한자로 된 주련으로 둘러싸여 있다. 필자 또한 이를 이번 산책을 통해 알게 된 것으로, 불교 한글화의 주역인 동국대학교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한자에 약한 것도 아니면서, 맨날 들리는 정각원 주련을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없었음을 고백해야겠다. 그저 ‘東國常放大光明(동국상방대광명)’이라는 한 줄만 외우고 다녔을 뿐이다. 이번 기회에 정각원 주련을 한 번 읽어보고자 한다. 그런데 보통 사찰의 주련이란 네 줄의 사구게나 전각 앞 기둥의 개수에 맞춰서 많아야 두세 구절을 더 추가하는 정도인데, 정각원은 전각 앞면 기둥 뿐만 아니라 옆면 기둥에도 모두 주련을 걸어놨다. 총 주련의 개수가 16개이다. 단일 전각에 이렇게 많은 주련이 걸려 있는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동국대학교 정각원만의 특징일 것이다. 전문을 게재하면 다음과 같다.

山河大地眼前花(산하대지안전화) 
산하와 대지가 눈앞의 꽃이요
萬象森羅亦復然(만상삼라역부연) 
삼라만상도 또한 그러하네
自性方知元淸淨(자성방지원청정) 
바야흐로 자성이 원래 청정한 줄을 알았으니
塵塵刹刹法王身(진진찰찰법왕신) 
온 세계 티끌마다 부처의 몸이로다
無量劫中修行滿(무량겁중수행만) 
한량없는 겁 동안에 수행이 차서
菩提樹下成正覺(보리수하성정각) 
보리나무 아래서 정각 이루고
爲度衆生普現身(위도중생보현신) 
중생을 제도하려 몸을 나타내
如雲充遍盡未來(여운충편진미래) 
구름처럼 미래세가 다하도록 충만하다
東國常放大光明(동국상방대광명) 
동국대학교에 항상 부처님 대광명이 비추고
法輪常轉於法界(법륜상전어법계) 
부처님의 법이 더욱 빛나 온 누리에 쉼 없이 구르며
自他一時成佛道(자타일시성불도) 
나와 네가 모두 함께 성불하리라
信爲道元功德母(신위도원공덕모)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라
長養一切諸善法(장양일체제선법) 
일체 모든 선법을 길러내며
斷除疑網出愛流(단제의망출애류)
의심의 그물 끊고 애정의 흐름 벗어나
開示涅槃無上道(개시열반무상도) 
열반의 위 없는 도를 열어 보인다.
摩訶般若波羅密(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정각원 주련에는 작지만 친절하게 한글 설명이 있지만(위의 번역문도 이를 따랐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기에 정각원은 아직도 한자에 사로잡힌 불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본래 정각원 주련이 〈화엄경〉 현수품의 내용이라고 어렴풋이 학부 화엄학 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는 마지막 ‘마하반야바라밀’을 제외한 네 구절일 뿐, 나머지 내용이 더 있다는 것이다.

먼저 처음의 ‘산하대지안전화’로부터 ‘진진찰찰법왕신’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나옹 선사 혜근 스님(1320~1376)의 선시(禪詩)이다. ‘무량겁중수행만’으로부터 ‘여운충편진미래’는 〈화엄경〉 여래현상품의 게송이다. ‘신위도원공덕모’로부터 ‘개시열반무상도’가 아까 말한 〈화엄경〉 현수품의 내용이며, 마지막 ‘마하반야바라밀’은 보통 종결하는 어구로 많이 사용된다. 이렇게 보면, 정각원 주련의 출처와 내용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중간의 세 구절이다. ‘동국상방대광명’, ‘법륜상전어법계’, ‘자타일시성불도’ 세 구절은 그 출처를 알 수 없다. ‘자타일시성불도’야 많이 들어봤겠지만 정각원 주련의 순서상 왜 지금 나타나는지 알기 어렵다. 이것도 ‘마하반야바라밀’처럼 종결하는 어구라 생각하면 편하겠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바로 〈화엄경〉 현수품의 게송이 시작되어서 이상하다. ‘동국상방대광명’과 ‘법륜상전어법계’는 전혀 출처를 알기가 어렵다. 물론 동국대학교 주법당이니 동국의 빛이 당연하겠고 법륜이 항상 구른다는 것도 불교도에게 이해하기 어려울 바는 없다.

문제는 왜 나옹 선사 선시와 〈화엄경〉 여래현상품의 다음에 저 구절이 위치하며, 또 그 다음에 〈화엄경〉 현수품의 게송이 이어지느냐이다. 나옹 스님의 선시는 온 세계의 두두물물에 법신이 아니 계신 곳이 없음으로 이 세계가 부처님으로 가득하다는 선의 총지를 노래하고 있다. 〈화엄경〉 여래현상품의 사구게는 우리를 구제하러 보리수 아래로 현상하신, 즉 가현하신 부처님을 찬탄한다.

다시 정리하자면, 나옹 스님의 선시와 〈화엄경〉 여래현상품의 연결은 우주만물에 편재하신 부처님으로부터 우리가 아는 석가모니 1불로 모아지는 다즉일(多卽一)의 구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하나의 점으로 모인 부처님 다음에 동국에 빛이 비추고 법륜은 멈추지 않으며 모두가 동시에 깨닫는다고 설해진다. 그러고서는 갑자기 믿음이 곧 열반에 이른다는 〈화엄경〉 현수품의 내용을 붙이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은 ‘부처님으로의 집약’, ‘믿음에서 열반’이라는 이 구조 사이의 내용이다. 이제야 문제를 명확히 했음으로 답을 보이고자 하는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산책자의 발걸음이 너무 쳐져 약속된 지면을 다 채워버렸다. 다음의 만남에서 이 해답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