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일의 불모열전 시즌2] 7. 무염(無染) 스님
행사 스님 계보 계승한 17세기 중반 대표 조각승 고창 선운사·영광 불갑사 불상 제작 주도 해심·성수 스님 스승으로 호남 중심 활동
17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조각승 무염(無染) 스님은 1633년 2월부터 7월까지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비로자나약사아미타불)을 제작한 후, 1634년 4월 법당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이 불상은 수화승 무염이 도우(道祐)·성수(性修)·해심(海心) 스님 등과 만든 1630년대를 대표하는 대형불상이다. 그 후에도 스님은 수화승으로 1635년 영광 불갑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1649년 남양주 불암사 목조보살좌상(완주 대둔산 묘련암 조성) 및 1650년 8월 무주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제작하였다.
그런데 무주 관음사 관음보살상과 함께 만든 대전 비래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완주 대둔산 안심사 심검당 조성)의 바닥에 적힌 묵서에는 수법화원(受法畵員) 무염·양사(養師) 성수(性修)·덕명(德明)·천유(天游)·수화(首畵) 경성(敬聖)·설엄(雪嚴) 스님이 제작했다고 적혀 있다. 이제까지 대전 비래사 목조불상 제작의 수화승을 무염 스님으로 보았지만, 이 불상을 주도한 스님은 경성(敬性) 스님으로, 경성 스님이 무염 스님과 성수 스님의 조각승 계보를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해남 도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1648년)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사옹(師翁) 행사(幸思) 스님, 양사(養師) 무염(無染) 스님, 수화원(首畵員) 해심(海心) 스님 등으로 적혀 있어 행사 스님→무염 스님→ 해심 스님성수 스님→경성 스님으로 조각승 계보가 이어졌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이후 무염 스님은 1651년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과 목조지장보살삼존상, 1652년 완주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등을 제작하였다.
지금까지 공개된 불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조각승 무염 스님은 1590년 전후에 태어나 1610년대에서 1620년대까지 보조화승으로 참여한 후, 1630년대 전중반에 수화승으로 고창 선운사와 영광 불갑사 불상 제작을 주도하였다. 그 후 스님은 남양주 불암사(1649년), 무주 관음사(1650년), 속초 신흥사(1651년), 완주 정수사(1652년) 불상 등을 조성하고 1633년부터 1656년까지 전북 고창과 완주, 전남 영광, 강원 속초 등에서 불상을 조성하였다. 이외 1634년 승일 스님과 도우 스님이 만든 밀양 표충사(구 영전사) 삼전패 제작에 화주로 참여한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조각승 무염 스님의 계보는 석준(1599~1610, 이하 활동기간)·원오(1599~1611)·각민(1605~1614)·각심(1606~1614)→행사(1604~1655)→무염(1633~1656)·응매(1614~1650)→해심(1633~1654)성수(1633~1653)→경성(1648~1653) 스님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무염 스님이 수화승으로 만든 가장 이른 불상이 봉안된 선운사(禪雲寺)는 전북 고창 도솔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本寺)이다. 선운사는 1597년 정유재란 때 거의 타 버렸는데, 1613년 일관 스님과 원준 스님이 송석조(宋碩祚)의 도움을 받아 재건을 시작해서 1619년에 중수되었다.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은 중앙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앉아 있다. 비로자나불은 보통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이고, 약사여래는 중생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는 부처이며, 아미타불은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세상인 서방 극락정토에 상주하는 부처이다. 비로자나불은 전체 높이가 294㎝로, 장방형의 얼굴, 당당한 어깨에 유난히 긴 허리, 넓고 낮은 무릎에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여 장대하고 웅장한 형태미를 보여 준다. 얼굴에 이목구비가 중앙으로 몰렸고, 긴 눈에 유난히 작은 입이 특징이다.
비로자나불은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펴고 왼손 검지가 오른손 검지 끝을 살짝 누른 모습이며 나머지 손가락은 구부린 채 왼손이 오른손을 감싼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있다. 대의자락 끝단은 오른쪽 어깨에서 거의 수직으로 가슴까지 길게 늘어져 있고 나머지 대의자락이 팔꿈치와 배 부분을 지나 반대쪽 어깨로 넘어가고 있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배 부분에서 한 가닥의 주름이 직선으로 내려와 끝부분이 U자형으로 마무리되었다.
약사와 아미타불은 변형통견식으로 양어깨 위에 대의를 입고 안에 부견의를 갖추었으며, 왼쪽 무릎에 흘러내린 옷자락이나 가슴에 입은 승각기 표현이 약간 차이가 난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 끝부분은 아미타불이 역삼각형이고, 약사여래는 반원형을 이룬다. 수인은 한 손을 가슴 위로 올리고, 다른 손은 무릎 위에 두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은 조선 후기에 몇 점 제작되지 않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약사불와 아미타여래를 배치한 불상으로 16세기 제작된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을 계승한 작품이다. 이 불상은 종교적으로 매우 완성도가 높고, 새로워진 불교계의 위상을 한껏 드러낸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