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미의 심심톡톡] 천천히 크는 마음에 햇살을
39. 불가촉천민 니디를 바꾸신 부처님, 부모 교육 ‘자존감’ (4) 아이마다 다른 자존감, 기질로 이해하기 내성적인 아이에게 꼭 필요한 다섯 가지
“요즘 아이가 자꾸 혼자 있으려 해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어 하는데, 말을 못 걸고 속상해하네요.”
상담실을 찾은 어머니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지만, 눈빛에는 깊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는 말수가 적고 조심스러운 성격이지만, 또래와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컸다. 몇 번이나 용기 내어 친구에게 다가갔지만 아이들은 금세 다른 무리로 흩어졌고, 아이는 그때마다 위축돼 집에서 짜증을 내거나 울먹였다. 처음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믿었던 어머니도 점점 움츠러드는 아이를 보며 불안해졌고, 결국 자신도 아이에게 소리를 쳤다며 울먹였다.
많은 부모가 이런 아이를 두고 “내성적이다” 혹은 “너무 소극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단어 하나로 아이의 내면을 설명하긴 어렵다. 내성적인 아이는 단순히 조용한 것이 아니라, 감정이 섬세하고 생각이 많으며 관계에 신중하다. 그들은 쉽게 상처받기 때문에 다가가기 전부터 마음속에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거절당했을 때는 자책부터 한다. ‘내가 이상한가 봐.’, ‘나랑은 안 놀고 싶나 봐.’ 이런 생각은 자존감을 갉아먹고, 결국 자기 존재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내성적인 아이는 말수가 적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크고 깊기 때문에 더 말을 아낀다. ‘말을 해도 안 알아줄 것 같아서’, ‘괜히 오해를 살까봐’, ‘더 마음이 상할까봐’ 혼자 마음을 감춘다. 그럴수록 표현은 줄고, 관계는 더 어려워진다. 내성적인 아이에게 자존감은 스스로를 믿는 힘이기도 하지만 ‘내가 이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이기도 하다.
모든 아이는 저마다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누구는 조용하고 신중하며, 누구는 충동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또 어떤 아이는 걱정이 많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에 앞서 수많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똑같이 ‘자존감’이라는 말로 설명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이마다 전혀 다른 모습과 이유가 있다.
그래서 앞으로 ‘자존감’을 주제로 아이의 성향에 맞춘 시리즈를 소개하려 한다. 내성적인 아이, 충동적인 아이, 불안이 많은 아이, 완벽한 성향의 아이 등 서로 다른 기질에 따라 자존감의 모습도 다르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조용하고 감정이 깊은 내성적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내성적인 아이에게 “왜 말을 안 하니?”, “조금 활발하게 해봐”와 같은 말은 상처가 된다. 그보다는 “천천히 해도 돼”라며 기다려주고, “그 친구와 친해지고 싶었구나”라는 마음 알아주기가 도움이 된다. 자존감은 아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사랑하고 소중히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부처님께서는 어느 날 길가에서 똥지기 불가촉천민 니디를 보셨다. 사람들은 그를 피해 지나갔지만, 부처님은 다가가 손수 씻기고 옷을 입혀주셨다. 그리고 니디를 스님으로 출가시켜 제자로 삼으셨다.
사람들은 놀랐지만 부처님은 출신이 아니라 마음과 가능성으로 사람을 본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니디는 존중받는 경험을 통해 존재의 존엄을 회복했고 마침내 스스로를 수행자로 살아가게 되었다.
내성적인 아이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안전한 공간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아이를 더 잘되게 하려는 마음으로 아이를 더 작게 만든다. 자존감은 “잘해냈다”는 평가가 아니라, “그 자체로 괜찮다”는 인정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내성적인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 부모가 갖춰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첫째, 성급하지 않은 기다림이다.
내성적인 아이는 머릿속에서 생각을 충분히 정리한 뒤에야 말을 꺼내기 때문에 부모는 “말 좀 해봐”와 같은 재촉 대신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라는 말로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둘째, 감정을 대신 짚어주는 민감성이다.
말보다 눈빛과 행동에 감정을 담는 아이에게 “속상했지?”, “그 말 듣고 마음 아팠겠다”처럼 감정을 대신 짚어주는 말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라는 안도감과 함께 자존감을 지켜주는 힘이 된다.
셋째, 비교하지 않는 시선이다.
“그 애처럼 활발하게 해 봐” 같은 말은 아이를 위축시키므로, 부모는 신중함과 배려심 같은 아이의 기질적 강점을 인정하며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경험을 쌓게 해 줘야 한다.
넷째, 부모 자신의 불안을 자각하고 다스리는 힘이다.
‘이러다 친구 못 사귀면 어쩌지’ 같은 부모의 조급한 걱정은 아이에게 압박이 되므로 부모 스스로 자신의 불안을 인식하고 내려놓을 때 자존감이 자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다섯째, 작은 시도를 응원하는 지지다.
내성적인 아이의 조심스러운 표현과 시도는 자존감의 씨앗이므로 “대단해!”보다 “해보려고 한 것이 멋졌어”라는 말로 결과보다 태도와 마음을 먼저 읽고 응원해 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자존감은 크고 화려한 성공에서 자라지 않는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너는 충분해”라는 말에서 자라난다. 그렇게 조용히 자란 자존감은 어느 날 아이가 조용히 세상으로 나아가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