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출 시간 없다…조세이탄광 희생자 반드시 고국으로"

관음종,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위령재 봉행 5월 24일, 우베시 남녀공동참화센터서 홍파‧법명 스님 등 사부대중 60명 동참 거센 비에도 ‘극락왕생-유골발굴’ 한마음

2025-05-24     김내영 기자
올해 창종 60년을 맞은 관음종이 5월 24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일제강점기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위령재'를 봉행했다. 2017년부터 위령재를 주관해오고 있는 관음종은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유해 발굴을 위해 한일 양국이 힘을 모아주길 촉구했다. 

그날도 갱도는 평소처럼 어둡고 숨 막혔다. 조선에서 끌려와 조세이(長生)해저탄광에서 채탄 작업을 하던 이들은 살기 위해 곡괭이를 들고 어둠 속을 헤맸다. 1942년 2월 3일, 예고된 비극은 현실이 됐다. 해저면과 가까워 누수가 반복되던 갱도는 끝내 무너졌고, 바다는 피할 틈조차 주지 않은 채 그들을 삼켰다. 사고로 조선인과 일본인 18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83년이 흘렀다. 그러나 갱도에 수장된 희생자들의 유골은 아직도 수습조차 되지 못한 채, 그날의 진실과 함께 바다 깊이 잠들어 있다. 다행히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행동에 나선 이들의 노력 덕분에 지난해 갱도 입구가 확인되고, 잠수 조사가 이뤄지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유해가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염원하며 관음종 사부대중은 올해도 사고 현장을 찾았다.

조세이탄광 갱구 앞에서 조계종 어산어장 동희 스님이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추모했다.

희생자 추모-한일 협력 발원하는 위령재

관음종(총무원장 법명 스님)은 5월 24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문화시설 남여공동참화센터에서 ‘일제강점기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위령재’를 봉행했다. 2017년부터 위령재를 주관하고 있는 관음종은 조세이탄광 유골 발굴과 한일 간 협력 촉구 활동에 앞장서 왔으며, 올해로 7번째 위령재를 맞았다. 특히 올해는 관음종 창종 60주년이자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로, 양국의 실질적인 협력을 기원하는 사부대중의 염원이 더욱 절실하게 담겼다.

위령재에는 관음종 종정 홍파 스님과 총무원장 법명 스님을 비롯해 중앙종회의장 혜산 스님, 교육원장 도선 스님, 조계종 어산어장 동희 스님, 부원장 도각 스님, 중앙종회부의장 법웅 스님, 총무부장 홍경 스님, 수교부장 도문 스님, 사서실장 법룡 스님, 영산작법연구회 소속 비호·해사·묘광·일구 스님과 불자 등 60여 명이 동참했다. 현지에서는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회(이하 새기는회) 이노우에 료코 공동대표와 회원들이 참석했다,

관음종 종정 홍파 스님이 헌화하며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끌려온 조선인들, 극한의 환경서 작업

조세이탄광은 시모노세키 남쪽 61km 지점 야마구찌현 우베시에 있는 해저 탄광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되었던 곳이다. 조선 각지에서 끌려온 이들은 감시와 통제 속에 하루 12시간 2교대의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고, 해저 갱도의 고온과 협소함이라는 최악의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해야 했다. 탄광회사는 더 많은 석탄을 캐기 위해 해저 채굴 제한구역까지 작업을 강행하고, 갱도를 지탱하는 갱목 일부를 제거하는 등 안전수칙을 무시했다.

결국 1942년 2월 3일 오전 9~10시경, 갱도는 붕괴돼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이 수몰됐다. 생존자는 단 두 명. 그러나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 발생한 참사였던 만큼, 일본 정부와 탄광회사는 국민 사기 저하를 우려해 사고를 은폐했다. 이후 1970년대 후반, 양심적인 역사학자 야마구치 다케노부 씨의 조사로 사건의 실상이 알려졌고, 1991년에는 일본 시민들을 중심으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회’가 발족돼 연구 및 유족 찾기, 추모비 조성 등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2013년 사고해역 500m 인근 가정집을 매입해 추모비와 광장을 조성했고 현재까지 유골 발굴을 위한 현장조사에 나서고 있다.

갱도 뒤로 환풍구 역할을 하던 피아가 보인다.

수몰사고의  은폐된 진실 찾는 양심의 소리

한국 불교계는 2015년 히로시마에서 열린 한중일불교우호교류회의를 계기로 조세이탄광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히로시마 총영사가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조세이탄광 희생자 위령재를 요청했고, 2016년 1월 현지에서 위령재를 봉행했다. 마침 창종 50주년을 맞은 관음종이 일제강점기 희생자 영골 환국사업을 종책사업으로 선포하면서 이를 계승해 나가고 있다.

이날 위령재는 당초 추모공원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150mm 이상의 폭우 예보로 인근 실내 문화시설로 장소가 변경됐다. 본 행사에 앞서 추모단은 빗속을 뚫고 조세이탄광 갱구 앞을 찾아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을 가졌다. 어산어장 동희 스님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며 위로했고, 종정 홍파 스님을 비롯한 추모단도 헌화로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후 추모단은 500m 떨어진 추모광장을 참배한 뒤, 위령재가 열리는 장소로 이동했다.

위령재는 영산작법연구회장 도문 스님의 집전으로 시작돼 법화의식과 도각 스님의 상축, 관음합창단의 음성공양과 살풀이·극락무 등 불교의례가 이어지며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일제강점기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위령재'는 폭우로 문화시설인 남여공동참화센터에서 봉행됐다.

"양국 협력으로 희생자 원한-유가족 고통 해소"

관음종 총무원장 법명 스님은 추모사에서 “오랜 시간 한일 양국의 대립과 갈등 사이에 1942년 2월 3일 억울하게 희생된 노동자들의 원한과 울분 그리고 그 유가족들의 고통과 탄식은 83년간 묻혀 있다”고 탄식했다.

이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은 올해 한일 양국 정부이 희생자 유골 발굴에 적극 협력해주길 기대했다. 법명 스님은 “2024년 7월 새기는 회가 개최한 ‘갱구를 열자’ 집회를 통해 탄광 노동자들의 생존의 마지막 문이었던 갱구가 열렸고, 희생자들의 유골 발굴의 향방에 관십이 집중되고 있다”며 “양국 정부는 희생자 유골 발굴을 위해 협의하고 ‘정치적 문제’가 아닌 ‘인도적 문제’로 다뤄줄 것”을 요청했다.

관음종 종정 홍파 스님도 합장한 채 “차가운 바다 속에 가라앉은 183명 영가를 떠올리며 자비심으로 발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며 “올해는 유해 발굴이 꼭 이뤄져, 영가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가길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종회의장 혜산 스님은 일제의 강제로 해저 갱도에서 고된 노동을 감내했던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애도했다. 혜산 스님은 “그 깊고 어두운 바다 속에 잠들어 계신 영령들이 부디 고통과 원한을 내려놓고, 부처님의 자비 속에서 왕생극락 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조계종 어산어장 동희 스님도 “억울하게 희생된 희생자들의 고통은 바닷물의 무게와 뻘의 무게가 더해져 그 고통의 강도가 금강석을 능가할 것”이라며 “이제 한일 양국 정부와 뜻있는 사람들이 나서 희생자들의 원한을 풀고, 유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할 때”라고 역설했다.

관음종 종정 홍파 스님은 이날 위령재에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발굴조사를 위한 지원금 100만엔을 이노우에 료코 새기는회 공동대표에게 전달했다.

갱구 발견으로 조사 시작, 재정 문제로 난항

이노우에 료코 새기는회 공동대표는 지난해 2월 3일 개최된 82주기 추도식에서 시민의 힘으로 갱도 입구를 열겠다고 약속한 뒤 9월 25일 실제 갱구를 발견했다며, 1년간의 유의미한 변화를 공유했다. 10월 26일에는 갱구 앞에서 추도식을 올렸고, 올해 4월 1일에는 “유골을 슬프게 내버려 둘 수 없다”며 잠수 조사를 제안한 이사지 요시타카 다이버와 한국인 다이버 2명이 한일 합동 잠수 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당시 피아 안에는 수많은 철관과 목재가 엉켜 있어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수심 25m 지점에 남아 있는 4개 철관은 인력으로 인양이 불가능해 크레인 작업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노우에 공동대표는 “하루 작업비만 200만엔에 이르러 재정적 지원이 절실하다”며 유골 발굴을 위해 잠수조사를 시도할 때마다 새로운 난관에 봉착하고 있지만 하나 하나 헤쳐나가며 포기하지 않고 유골발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한국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가 가장 중요한 해다. 일본 내에 방치된 이 유골을 그대로 둔 채 ‘미래 지향’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며 “한일 양국이 ‘조세이탄광 유골 수습’을 공동 사업으로 선언할 것”을 촉구했다. 새기는회는 6월 6일 갱구 보강 공사, 6월 18~19일 4차 잠수조사를 계획 중이다.

강호증 주히로시마 총영사, 이헌승 국회정각회장, 주호영 한일의원연맹 회장, 양현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대한민국 유족회장, 후지타 류조 일한불교교류협의회장도 조사를 보내 “사고 유골 수습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한일 양국 시민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뜻을 모았다.

관음종 총무원장 법명 스님이 헌화를 하고 있다.

유골 수습에 시민의 관심과 지원 절실

역사의 현장들 함께한 불자들도 마음을 보탰다.

“처음 위령재 참여했는데, 갱도 입구를 보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제는 관음종을 넘어 양국이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길 간절히 바란다.”(김기순 씨)

“좁고 답답한 곳으로 끌려와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이들이 같은 국민으로서 내 가족처럼 안타깝다.”(자비행 묘각사 불자)

“지금껏 역사도 모르고 편하게 살아 죄송하다. 지난해 갱도 입구를 찾아 조사의 첫발을 내딛었다는 소식에 참 반가웠다. 다함께 문제 해결에 힘을 모아야 한다.”(이판옥 남원 심경암 불자)

“11살인데 학교에서 조세이탄광 문제를 배운 적이 없다. 오늘을 기점으로 우리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추모단 최연소 참가자 황서현 씨)

한편 추모단은 위령재에 앞서 5월 22일 일본 고야산 금강봉사를 찾아 위령재 원만회향을 기원하는 법회를 봉행했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김내영 기자

참가자들은 위령재에 앞서 고야산 금강봉사를 참배하고 위령재의 원만 회향을 기원했다.

 

추모단은 조세이탄광 갱구 앞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식을 봉행했다.
관음종 부원장 도각 스님의 헌화 모습.
추모 의식을 하고 있는 스님들.
추모 의식 중 눈물을 보이는 불자.
위령재는 폭우로 실내시설인 남여공동참화센터에서 봉행됐다.

 

영산작법연구회 소속 스님들이 천도의식을 진행하는 모습.
관음종 총무원장 법명 스님.
이노우에 료코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회 공동대표.
새기는회 회원이 위령재 현장을 일본어로 기록하고 있다.
살풀이
음성공양
추모단은 이날 위령재를 통해 마련한 성금을 새기는회에 전달했다.
위령재 봉행 후 촬영한 단체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