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연의 수행 다이어리] 내 몸과 마음의 본향(本鄕)
2025-05-05 강소연/중앙승가대 교수
9. 바탕자리(1)
사마타 수행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한한 체험을 하였다. 다양한 삼매 체험(지난 연재⑤⑥⑦ 참조)이라는 지진 뒤에는 막강한 여진이 있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의식이 갑자기 허공과 하나가 되었다. 의식이 내 몸의 밖으로 나갔다고 해야 할지, 내 몸의 안팎 경계가 없이 확장되었다고 해야 할지. 뭐라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현상이다. 아무튼, 의식이 순식간에 확- 퍼지듯 ‘바탕자리’와 하나가 되었다. ‘바탕자리’란 광활한 ‘허공’을 말한다.
‘나와 세상’과 분리된 의식
나는 (사실 딱히 ‘나’라고 할 것이 없는) ‘허공’ 그 자체였다. 그리고 허공(바탕자리)에서 세상을 관조했다. 세상은 탁한 필터를 한 껍질 벗긴 듯 투명하고 영롱해 보였다. 세상 만물을 인식하기는 하는데, 세상 만물과 분리되어 있었다. 분리되어 있기에 반응하지 않는다. 반응하지 않기에 더럽혀지지 않는다. 반응 없이 그저 여여(如如)하게 알기만 한다.
아스라이 관조만 하는 의식 상태, 적멸(寂滅)의 상태이다. 그렇게 관조된 세상은 진정 평화롭다. 폭풍이 쳐도, 산사태가 나도, 대형 참사가 나도, 거대한 공간 속에 모두 무상할 뿐이다. 이 모든 것(나를 포함한 삼라만상)은 분리되어 인식된다. 분리되어 있으니 알기는 알지만 관여할 수 없다. 그리고 딱히 관여할 것이 없다. 이런 모순적 평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해를 돕기 위해,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보는 느낌에 비유해 본다. ‘동물의 왕국’에서 동물들을 관찰하는 카메라의 위치는 멀찌감치 설정된다. 조감도식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거나 수평 각도에서 볼 때도 충분한 거리를 둔다. 그리고 동물의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그저 관찰만 한다. 동물을 가까이서 보거나 감정이 이입되거나 하면, 그들의 먹고 먹히는 생존 현장은 비극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저 멀리서 관조하면 순간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또 ‘분주하지만 먹통인’ 모순적 풍경이 거대한 자연의 흐름과 함께 무상하게 지나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흔들리지 않는 절대 평화[적멸] 속에 있다.
바탕자리=바탕의식
허공에 의식이 있다는 사실! 바탕자리에는 바탕의식이 있다. 이것은 세상과 분리되어 있기에 반응하지 않고, 그렇기에 오염되지 않아서 청정하다. 이것을 다른 말로, 순수의식·우주의식·청정법신(淸淨法身)이라고도 한다. 이 투명한 순수의식의 성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반응 없는 부동심(不動心,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다. 그 무엇에도 깨어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동요되지 않는다. 그저 여여하게 알기만 한다. 세상과 함께 있으나 오묘하게 분리되어 있다.
이 분리 현상은 연잎 위의 물방울에 비유된다. 연잎 위에 떨어진 물방울은 퍼지거나 스며들거나 부서지지 않고, 제 모양새 그대로 또르르 굴러떨어진다. 바탕의식이 연잎에 해당하고, 물방울들이 세상 만물에 해당한다. 함께 있지만 섞일 수는 없다. 바탕의식의 경계(가장자리)를 파악하려는 순간, 그것은 끝도 없이 확장된다. 미립자의 안팎으로 있는 허공, 나의 안팎으로 있는 허공, 창문의 안팎으로 있는 허공, 하늘의 안팎으로 있는 허공, 지구의 안팎으로 있는 허공, 우주의 안팎으로 있는 허공. 끝 간데없는 하나의 허공 바탕이다. 그런데 이 바탕은 청정의식으로 충만하다. 공무변처(空無邊處)와 식무변처(識無邊處)가 뭔지 알 것도 같다.
그것도 잠시, 다시 진흙탕으로
자아의 감옥에 벗어나 광활한 바탕의식과 하나된 체험! 15년 전 당시, 그 첫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체험이었다. 몸에서 천근의 무게라도 빠져나간 듯, 자유롭게 하늘을 날았다. 개체(나) 의식에서 벗어나 초월의식으로 전환되니,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직관적으로 보이고 또 곧 일어날 일에 대한 예지몽(현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리 보여주는 꿈)도 기막히게 꾼다. 자잘한 일상과 골칫거리들은 문제도 안 된다. 한 번 포맷(format, 저장된 정보의 삭제) 또는 리셋(reset, 기억 장치의 초기화)되었기에, 세상에 갓 나온 아이처럼 천진하고 태평하다. 항상 ‘해야 할 일’에 허덕대다가 갑자기 ‘이제 뭘 해야 하지’하고 어리둥절하다.
그런데 이런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나락이다. 분명 내 몸과 마음의 본향(本鄕, 본래 고향)이 이곳(바탕자리)일텐데, 나는 세세생생의 습(習, 되풀이하여 익숙한 행行)대로, ‘무명(자아)’이라는 감옥에 어느새 돌아와 버렸다. 잠시 멈추었던 업행과 업력은 다시 가열차게 돌아간다. 사마타 수행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아 잠시 멈추었던 ‘나’라는 공장에는 다시 전원이 켜지고 재운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