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배의 24번의 계절] 9. 입하 _ 홍제천 길을 걷다

뭇 생명 존재 드러내는 청량 계절 첫 발 떼다

2025-05-05     장보배 작가
겸재 정선의 ‘세검정도’를 바탕으로 새로 조성한 현재 세검정. 건물과 도로로 옛 운치를 찾기란 쉽지 않지만 여전히 비가 오는 날이면 물줄기가 바위 위로 넘실댄다. 

사월이라 한여름 되니 입하 소만 절기라네/비 온 끝에 볕이 나니 일기도 청화하다.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로 울고/보리 이삭 패어 나니 꾀꼬리 소리 난다.
- 농가월령가 中 ‘사월령’

농가월령가에 그려진 이른 여름의 모습은 더없이 맑고, 싱그럽다. 땅에는 푸른 보리에 알알이 이삭이 맺히고, 하늘에는 고운 새소리 가득한 이 계절을 어느 누가 마다할까. 

만개했던 봄이 저무는 대신 녹음이 더욱 짙어지는 5월. 바야흐로 여름을 알리는 입하(立夏)의 시작이다. 

오월의 입하를 시작으로 칠월의 대서까지, 이제 여름은 힘찬 말처럼 시절을 내달릴 것이다. 하지만 가혹하리만치 뜨겁게 타오르는 한여름과 달리, 봄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이 절기는 아직 청량한 모습으로 계절의 첫발을 뗀다.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뜻의 맥량(麥凉), ‘초여름’이란 뜻을 가진 맹하(孟夏), 그리고 이즈음 회화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해 괴하(槐夏)라고 불리기도 하는 입하.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과거 어느 월령가와 기록을 보아도 이 무렵의 풍경은 내내 분주하다. 

옛사람들은 입하 15일간을 5일씩 나누어 그 시절의 모습을 전한다. 첫 5일에는 청개구리가 울고, 다음 5일은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며, 마지막 5일에는 왕과(쥐참외)가 열린다. 그야말로 뭇 생명이 ‘나 여기 있소’ 하며 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산과 들에는 온갖 나물들이 돋아나고, 잡초와 해충도 많아져 그만큼 할 일도 늘어나는 때. 또 논에 못자리를 꾸리고, 물을 댈 준비를 하느라 ‘마을마다 남녀 모두 정신없이 바삐 뛰고, 집에 있을 틈도 없어졌다’(농가십이월속시 中 사월)는 시절이다. 

옥천암 전경.

도시의 초여름
산지에서야 자연의 변화를 보는 것이 일상이지만, 도시의 환경과 생태는 그와 달라 절기라는 것은 매번 잊히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조금만 욕심을 낸다면, 서울 한가운데서도 초여름의 정취를 즐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건 바로 옛사람들의 시절 풍경과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 수백 년 전에도 또 그 이전에도 절기란 매양 같은 철에 찾아오는 것이니, 오래전 이 계절의 하루를 함께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침 며칠 전부터 센 바람과 함께 비가 잔뜩 내린 참이었다. 이럴 때 떠오르는 곳이 서울 종로구의 홍제천(弘濟川)이다.

북한산의 문수봉·보현봉·형제봉에서 발원하여 한강까지 서울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홍제천. 그 물길을 따라 천년고찰 옥천암, 한양도성을 지키던 홍지문과 탕춘대성, 그리고 저 유명한 누각 세검정이 차례로 이어진다. 

오래전부터 도심 속 명승지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 변덕 심한 계곡은 조금이라도 비 내림이 과하면 길이 잠기고, 또 조금이라도 날이 가물면 바짝 마른 바위만 가득해져 멋을 잃고 만다. 그리하여 적절한 양의(?) 비가 내리는 때라면 망설이지 말고 이곳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230여 년 전. 같은 마음으로 비 내리는 세검정을 향해 내달린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을 대표하는 대학자 ‘다산 정약용’이다. 

‘보도각백불’로 불리는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다른 시간, 같은 계절
1791년 5월 어느 날. 맑았던 하늘에 우렁우렁 먹구름이 끼고 천둥소리와 함께 소낙비가 내리려는 찰나, 명례방(지금의 명동)에서 지인들과 만난 정약용은 벌떡 일어나 벗들을 재촉했다. 

소나기가 내릴 징조이니 함께 세검정으로 가자고, 만약 가지 않겠다는 이에게는 벌주 열 병을 내리겠다는 엄포와 함께. 이는 ‘유세검정기(游洗劍亭記)’라는 산문을 통해 그날의 모습을 기록한 정약용 본인의 이야기다.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오직 소낙비에 폭포를 볼 때뿐이다. 그러나 막 비가 내릴 때는 사람들이 옷을 적셔 가며 말에 안장을 얹고 성문 밖으로 나서기를 내켜 하지 않는다. 비가 개고 나면 산골 물도 수그러들어 버린다. 이 때문에 정자가 저편 푸른 숲 사이에 있는데도 성중의 사대부 중에 능히 이 정자의 빼어난 풍광을 다 맛본 자가 드물다.”

그렇게 마부를 재촉해 만난 세검정은 ‘수문 좌우 계곡에서 고래 한 쌍이 물을 뿜어내듯 이미 물줄기가 솟구쳐 오르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고 전한다. 

옷이 다 젖도록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조선의 문인들. 몇 순배의 술이 함께 돌고, 어느새 지는 해가 나무에 걸릴 즈음 그날의 정약용과 벗들은 서로를 베고 누워 시를 읊조렸다. 

비록 지금의 세검정은 과거 화재로 소실된 것을 겸재 정선의 ‘세검정도’를 바탕으로 새로이 조성한 것. 또 켜켜이 솟아난 건물과 도로에 싸여 그 시절의 운치를 모두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비가 오는 날이면 조선의 낭만 가객들이 감탄하던 그날의 물줄기가 바위 위로 넘실댄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가슴 뛰는 추억이 머무는 곳, 세검정에서 그날의 다산과 마주해 보는 것도 좋을 계절이다. 

홍지문과 오간대수문.

모두가 새로워라
세검정에서 상류를 향해 발길을 옮기면, 어느새 홍제천 물길을 조절하는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이 눈에 띈다. 저 멀리 산을 타고 이어진 탕춘대성의 다부진 성벽과 그 시작을 알리는 홍지문의 모습도. 

하지만 지금의 홍지문과 오간대수문은 일제강점기에 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 이렇게 저버리고 다시 태어난 것들처럼 홍제천 물길 속에는 새 삶을 꿈꾸던 이들의 기원이 가득하다. 

과거 병자호란과 함께 청나라로 끌려간 우리 백성의 수가 60만 명. 온갖 고초를 겪고 다시 돌아온 조선의 여성들에게 이 땅은 ‘환향녀’라는 칼을 채워버리고 만다. 사회적 압박과 억울함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여성들의 수가 많아지자, 조정이 내놓은 궁여지책이 바로 ‘홍제천에서 몸을 씻은 여인은 모든 과거를 불문에 붙인다’는 명이었다. 이른바 절개가 회복되는 ‘회절강(回節江)’ 제도다. 숱한 여인들이 이곳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며 닦아낸 것은 그들의 죄가 아닌 서러운 생이었을 터. 무심한 물길에 과거도, 눈물도 흘려보내며 그네들은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이를 지켜보며 어루만져준 또 다른 존재. 바로 거대한 암석에 새겨진 저 백색의 마애불, 천년고찰 옥천암의 부처님이 있다(옥천암 마애보살좌상, 2014년 보물 지정).

이성계가 도읍을 정할 때 기도를 했고, 또 조선 후기 고종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복을 빌었다는 이곳. 현재는 북한산으로 향하는 자락길과 홍제천 산책로까지 더해져,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오가며 자신들의 기원을 하나둘 내려놓고 길을 떠난다. 

묵묵히 자리한 마애불도 때로 저 흐르는 물줄기에 모든 것을 씻어내고 다시 천년을 지킬 힘을 얻는지 모른다. 

올해는 부처님오신날과 함께 시작되는 입하. 저 무구한 물길 속에 연등 불이 환히 떠오르는 날, 이 여름도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한줄 요약 
산과 들에 온갖 나물들이 돋아나고, 잡초와 해충도 많아져 그만큼 할 일도 늘어나는 때. 올해는 부처님오신날과 함께 시작되는 입하. 연등 불이 환히 떠오르는 날, 여름도 그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