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붓다를 만나다] 9. 불상 안에 담긴 그녀들의 마음: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과 발원문

‘나라 안녕’ 기원, ‘미남불’에 봉안하다

2025-04-28     이승혜 동아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금동약사여래좌상’, 고려 1346년, 높이 90.2 cm, 충청남도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국보. 사진제공=국가유산청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 기슭에 자리한 장곡사는 독특한 가람배치로 유명하다. 산골짜기라는 지형을 따라 위, 아래에 각각 대웅전이 배치되어 있다. 골짜기 위쪽 상대웅전에는 불상 3존이, 조선시대에 건축된 하대웅전에는 불상 1존이 모셔져 있다. 그중 하대웅전에 봉안된 불상은 고려후기인 14세기 중엽에 조성된 약그릇을 든 약사여래이다. 
균형감 있는 신체 비례와 단아한 상호, 눈 밝은 이들이 ‘한국 최고의 미남불상’이라고 부른 것이 절로 납득이 되는 불상이다. 어디 외모뿐이던가. 불상은 뛰어난 역량의 장인이 주조한 듯, 내외부에 주조과정에서 생기기 마련인 결함이 거의 없다. 바야흐로 외면과 내면이 모두 아름다운 미남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마련한 ‘복장(腹藏)’을 품고 있었다. 

복장은 불상을 만든 뒤에 사리와 불교적 상징이 담긴 여러 물건을 불상의 몸 안에 넣고 봉인하는 의례를 이른다. 장인이 만든 조각품을 살아 있는 부처로 탈바꿈하기 위한 의례이다. 이처럼 복장은 형상 안에 불성을 불어넣는 의식이다. 그렇지만 불상 안에 넣었던 모든 물건에 교리적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비단 조각, 향주머니, 누군가가 입었던 저고리와 같이 손때가 묻은 물건들도 왕왕 있다. 복장 안에 불상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사람들이 함께 적은 발원문도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빛을 본 이 물건들에는 시주자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금동약사여래좌상’의 손 세부. 사진제공=국가유산청

만월세계의 우리 약사부처님

장곡사의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은 1959년에 처음 조사되었다. 이때 붉은 비단에 백운(白雲) 스님이 쓴 발원문, 백지에 쓴 발원문, 천 조각에 이름이나 소망을 간략히 적은 것들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이 불상이 1346년에 백운 스님이 주도하고 승속의 제자들이 참여하여 제작되었고, 장곡사에 봉안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붉은 비단에 쓰인 발원문의 구성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길이가 약 10m나 되는 이 발원문에는 무려 1천 명이 넘는 이들의 이름이 남아 있다. 발원문은 붉은 비단의 오른쪽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장 앞부분의 115cm 정도에 해당하는 길이로 5cm 정도 되는 큰 글씨로 쓰였고 전체 630자에 달하는 긴 내용이다. 

먼저 발원문의 첫머리는 발원의 내용과 불상 조성의 권유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공덕의 회향이 주를 이룬다. 만월세계(滿月世界)에 계신 우리 대약사유리광 부처님은 “어두운 곳에서는 밝은 빛이 되어 비추시고 병으로 힘들어 할 때에는 뛰어난 의사가 되어 치료하시고 거친 바다에서는 커다란 배를 만들어 건너게 해주시고 춥고 배고플 때에는 옷과 음식을 만들어 주시고 가난으로 힘들어 할 때에는 여의보를 내어 원하는 것을 베풀어 주시고 처벌 받으려고 손발이 묶여 있을 때에는 모두 풀어주시고 죄를 지어 갇혀 있을 때에는 용서받게 해주시고 가뭄이 들 때에는 단비를 내려주시고 독약을 먹었을 때에는 해독약을 주시고 호랑이와 이리를 만났을 때는 사자로 나타나 쫓아 주시고 여러 새들이 괴롭힐 때에는 봉황이 되어 구해주시는 등 모든 곳에 구해주지 않으심이 없는” 그런 부처님이다. 인간이 맞닥뜨릴 수 있는 일체의 재난을 막아주는 부처인 것이다. 

이어서 백운 스님은 약사여래를 섬기는 이들은 복과 지혜를 얻고 여러 재난에서 벗어나며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며 구리로 약사여래상을 만들어 좋은 인연을 짓자고 제자들에게 권유한다. 발원문은 약사여래상 발원에서 오는 공덕을 황제, 임금, 문무백관에게 회향하고 나라가 안녕하기를 기원하는 바람으로 마무리된다. 발원문 마지막에는 ‘친전사 백운(親傳師 白雲)’이라는 이름과 수결(手決, 신분 확인을 위해 이름 혹은 직함 아래 자필로 쓴 부호)이 보인다. 

발원문을 쓴 백운 스님은 고려 충목왕대에 활약했던 백운경한(白雲景閑, 1298~1374)으로 추정된다. 백운경한은 충목왕 2년(1346)에 왕명으로 기우(祈雨) 의식을 주관할 정도로 기도에 뛰어난 스님이었다. 백운경한 스님은 1351년에 중국에 유학하여 간화선을 수학했고, 이듬해 고려에 돌아온 후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고려에 돌아온 이후에 <직지심체요절>이란 책을 엮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백운 스님은 탁월한 간화선사 중 한 분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중국에 유학하기 전의 행적에 대해서는 그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상의 발원문은 1350년대 이전 스님의 행적에 대해 알려주기에도 소중하다. 

‘발원문’ 세부, 고려, 충청남도 청양 장곡사, 불교중앙박물관 기탁. 사진제공=국가유산청

발원문에 남긴 부처님 안에 봉인한 마음들

백운 스님의 발원문의 왼편으로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어지럽게 이어진다. 발원자들의 명단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참여자들의 이름을 쓸 자리가 9m도 넘게 있는 데도 백운 스님의 발원문 행간 사이 사이의 여백과 뒷면에까지 동참한 발원자들의 이름이 촘촘하게 쓰여 있다. 이 같은 이름이 발원문을 쓴 백운을 빼고도 무려 1078개에 달한다고 한다. 인장과 수결만 남긴 경우는 헤아리지 않은 숫자라고 하니 실제 발원자는 이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수명이 길기를 바라는 ‘장명(長命)’과 같은 간단한 기원이 기재된 예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름만 적혀 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잘 쓴 글씨, 서툰 글씨가 규칙 없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여러 이름이 같은 글씨체로 쓰인 예도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복장의례에 동참한 경우 한 사람이 대표로 이름을 적어넣을 것으로 생각된다. 부부가 함께 참여하거나 남편이 부인과 어머니와 같이 이름을 남기기도 하고 강녕군부인 홍씨처럼 아들 3명과 같이 이름을 올린 예도 있다. ‘고씨 여성과 한 집안 권속[高氏女與一門眷屬]’이란 표현에서 보이듯이 한 집안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기도 했다. 거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발원문의 가장 끝에는 발원자의 이름과 발원의 내용을 간략하게 먹으로 적어 넣은 비단 조각 4매가 발원문의 바탕 위에 꿰매어져 있다. 각각의 발원문을 오른쪽부터 차례대로 살펴보면 ‘전의군부인 이씨가 발원합니다[全義郡夫人李 氏/發願]’ ‘금산군부인 전씨의 여동생은 나고 나는 생마다 중생을 구제하여 나이가 찬 여성이 남성의 몸을 받기를 기원합니다[金山郡夫人全氏妹/生生世廣度/衆生丁女成男]’ ‘두 살배기 어울진의 몸이 장수하기를 기원하며 화가이의 장명을 위해 발원합니다[年二歲於乙寶體長命以/發願/火加伊長命]’ ‘해주군부인최씨와 윤씨부인이 발원하는 글[海州郡夫人崔氏/尹氏夫人/發願文]’이란 내용이 적혀 있다. 

여기에 보이는 ‘군부인’은 고려시대에 나라가 외명부의 고위층 여성들에게 봉작한 정4품의 칭호이다. 남편이나 아들의 신분에 따라 그 어머니와 부인에게 내려준 것이다.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의 조성에는 여기에 보이는 3명의 군부인 외에도 25명가량의 군부인이 더 참여했다. 군부인은 원나라가 고려를 침탈했던 시기, 여러 불사의 주요 후원자로서 활발히 참여했던 계층 중 하나이다. 이들 대부분은 전쟁과 약탈로 얼룩졌던 시대, 먼저 떠나간 이들의 명복과 정토왕생을 빌고 산 자들의 수명장수를 빌면서 이 불사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에 의하면 출산하는 여인이 극심한 고통을 겪을 때 온 마음을 모아 약사여래의 이름을 부르고 예찬하면 고통에서 해방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난다고 한다. 화가이가 두 살배기 아들과 본인의 장수를 빌며 이 불사에 동참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약사여래는 여성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부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에는 약사유리광여래가 중생을 위해 세운 12가지 대원이 나온다. 약사여래는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남성으로 변하여 장부의 형상을 갖추고 보리를 증득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약사여래의 8번째 대원이다. 금산군부인 전씨의 여동생처럼 성불을 꿈꿨던 여성들이 약사여래에게 귀의한 이유이다. 

▶한줄 요약 
‘한국 최고의 미남불상’으로 불리는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금동약사 여래불은 외면과 내면이 모두 아름다운 미남불이다. 여기에 고려시대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마련한 복장(腹藏)을 품고 있다.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빛을 본 이 물건들에는 시주자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발원문’ 세부, 고려, 충청남도 청양 장곡사, 불교중앙박물관 기탁.사진제공=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