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섭의 불교, K-드라마로 만나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9 ‘굿바이 솔로’(2006) 각자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미영 할머니 중심으로 소통하며 치유·공감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사랑하는 방법 배워
“푸른 꽃은 푸르러서 예쁘고, 붉은 꽃은 붉어서 예쁩니다. 가을은 알록져서 아름답고, 겨울은 빛이 바래 아름답죠. 자신에게 없는 모습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 당신은 충분히 아름다우니까요.”
10여 년 전쯤에 방송된 어느 대기업의 공익광고 문구이다. 지금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아름다우니 자신을 비하하거나 나에게 없는 모습을 찾아 헤매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에 부닥치면서 상처받는 우리는 스스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지거나 한껏 움츠러든 기분이 든다면, 드라마 ‘굿바이 솔로’를 권하고 싶다.
‘굿바이 솔로’는 한두 명의 주인공이 아닌 일곱 명의 등장인물들이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이야기를 펼치는데, 모두 각자의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자신이 어머니의 불륜으로 태어난 존재임을 알게 된 민호(배우 천정명)는 가족을 등지고 미영 할머니(배우 나문희)의 집 옥탑방에 세 들어 살고 있다. 민호와 형제같이 지내는 친구 지안(배우 김남길)은 부모와 여동생이 장애인이며 가난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산다. 지안의 연인 수희(배우 윤소이)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남자를 바꾸며 사는 어머니를 경멸한다.
조직폭력배 생활을 청산한 호철(배우 이재룡)은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처 때문에 결혼을 꺼리고, 그런 호철의 연인 마리(배우 김민희)는 전직 조직폭력배를 사귄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외면당한다. 마지막 인물인 영숙(배우 배종옥)은 학벌을 속인 것이 들통나 가족들과 따로 살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어린 시절, 암에 걸린 어머니의 약을 사기 위해 물건을 훔쳐 팔았다는 아픈 기억과 그럼에도 어머니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이 영숙을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결같이 상처받고 소외된 인간들이 미영 할머니의 식당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유사가족 관계를 형성하고 진정한 소통을 시작하는데, 예를 들자면 민호는 자신이 가족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미영 할머니에게 쏟아내면서 치유해가고, 남편과 자식에게 버림받은 영숙은 죽은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미영 할머니에게 털어놓으며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고 남편과 자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다. 이 외에도 ‘굿바이 솔로’의 등장인물들은 누가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고 치유받으며 감화와 공감의 가치를 드러내는데, 특히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은 미영 할머니이다.
젊은 시절, 전처가 낳은 딸 미자(배우 윤유선)를 키우며 살던 미영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을 친다. 그리고 얼마 후, 술에 취한 남편이 집에 불을 지르고 세상을 떠난다. 그런 와중 미자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던 미영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미자의 원망을 그대로 안은 채, 말을 듣지도 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평생 입과 귀를 닫고 자신에게 벌을 주며 살아온 것이다.
한편 미자는 미영이 자신을 계속 찾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미영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뺑소니 누명을 쓴 남편의 합의금을 미영에게 요구하기도 하고, 돈을 구하기 위해 아이를 납치해 미영의 식당에 숨겨놓기도 한다. 결국 미자의 죄를 모두 뒤집어쓰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데, 미영에겐 그것이 미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방법이었다.
등장인물들의 우여곡절을 담은 이 드라마의 핵심은 ‘사람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부제가 붙은 제16부에 있다. 민호와 수희는 어렵게 사랑을 이루고, 민호의 꿈인 남쪽 섬에 정착한다. 그리고 교도소에 있는 미영 할머니를 면회 온 영숙은 두 사람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어 올리며 미영에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민호와 수희의 얼굴이 화면 가득 비칠 때, 섬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 위로 민호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할머니 나, 매일 매일 기도해. 이 세상 모든 상처받고 힘든 사람들에게, 등 뒤에서 안아줄 사람, 단 한 사람이라도 있기를. 할머니, 나는 행복해. 할머니도, 행복해?”
민호의 내레이션에 응답이라도 하듯, 벅찬 표정으로 사진을 보던 미영 할머니의 입에서 탄식처럼 “이뻐”라는 말이 나온다. 드라마 전체에서 거의 유일한 미영의 대사이다. 어째서 미영의 대사는 “이뻐” 하나뿐일까?
사진을 보면서 미영 할머니가 “이뻐”라고 말할 때, 민호와 수희가 예쁘다는 1차적인 의미와 함께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예쁘다는 부차적인 의미를 갖는다. 부제인 ‘사람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에서 구체적으로 ‘두 사람이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로 확장되는 것이다. 또한 미영 할머니는 “민호 수희만? 나는?”이라고 묻는 영숙에게도 “이뻐”라고 답한다. 세상을 달관하듯 살아온 그녀에게는 민호도, 수희도, 영숙도 ‘이쁜’ 존재이고, 이는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찬탄이기도 한 것이다.
민호는 수희를 만나 사랑을 이루었기 때문에 ‘등 뒤에서 안아줄 단 한 사람’이 있다. 그래서 행복하다. 그런데 민호는 자신의 행복에 그치지 않고 “이 세상 모든 상처받고 힘든 사람들에게 등 뒤에서 안아줄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기를 매일매일 기도”하면서 늘 혼자였던 미영 할머니에게도 행복하냐고 묻는다. 그러므로 미영 할머니의 “이뻐”라는 대답은 “행복하다”는 대답과 같은 의미이다. 미영 할머니가 행복한 이유는 바로 앞에 영숙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삶에서는 각자가 외로운 ‘솔로’였을지라도 이제는 함께이기에 외롭지 않다. 이것이 드라마 제목인 ‘굿바이 솔로’의 의미이다.
드라마 ‘굿바이 솔로’는 “사람은 상처받고 상처 주는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누구나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가치를 전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드라마의 애초 제목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인 것도 그래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