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의  깨달음의 노래] 15. 성철 스님의 오도송

본질 함께 봐야 깨달음의 눈 얻는다

2025-04-18     김형중 문화평론가

 청산은 여전히 흰 구름 속에 있네

황하가 서쪽으로 거슬러 올라 곤륜산 정상 오르니 (黃河西流崑崙山)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졌네(日月無光大地沈)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리니(遽然一笑回首立)
청산은 여전히 흰 구름 속에 있네(靑山依舊白雲中)

성철(1912~1993) 스님은 동아시아 근현대불교사의 거성(巨星)이다. 팔공산 성전암에서 수행할 때는 철조망으로 암자를 둘러치고 10년을 두문불출하며, 투철하게 눕지 않고 장좌불와(長坐不臥) 정진래 수행의 전범을 보여 구도자의 표상이 되었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해인사를 참배했을 때 영접하지 않고 “산에 사는 중이 뭐 할라고 대통령을 만나노”라고 하였다. 권력에 아부하고 굴종하는 것은 출가 수행자의 본분이 아니라고 당당한 모습을 보인 일화는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선가의 귀감(龜鑑)이다.  

한국 현대불교는 성철 스님에 의해서 국가와 일반 대중으로부터 현재와 같은 존중과 귀의의 종교적 위상을 회복하였다. 스님을 찾아오는 모든 신도에게 평등하게 돈 보따리와 계급장은 일주문에 걸어놓고 들어오라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께 3000배를 시켰다. 

1981년 조계종 제6대 종정에 추대돼 취임식을 대신하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법어를 내렸는데, ‘이 법어의 뜻이 무엇일까’라는 문제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상세계는 눈으로 보면 그냥 “산은 산이다.” 그런데 공(空)의 이치를 깨닫고 보면, “산은 산이 아니다.” 현생계의 사물(色)은 실체가 없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연화합으로 잠시 모습을 만들고 있는 허망한 환상(空)과 같은 것이다. 즉,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현상계와 본체계의 세계를 확실히 깨닫고 보면 “산은 역시 그대로 산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가 역시 진리의 세계이다. 현실의 세계를 볼 때 본질의 세계를 함께 봐야 변화하는 현실의 세계에 집착하지 않는 참된 지혜의 눈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성철 스님은 1·2구에서 “황하의 물이 서쪽으로 거슬러 올라 곤륜산 정상에 오르니”라고 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언어도단이다. 현상계의 존재(有)를 부정하는 공(空, 본체계)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깨달음의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중국은 서쪽이 높아 대체로 물이 동쪽으로 흐른다. 가장 높은 곤륜산은 서쪽에 있고, 여기에 황하의 발원지가 있다. 황하가 동쪽으로 흐르는 데서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겼다. “황하는 일만 번을 꺾어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는 뜻이다.

원나라 고봉(高峰) 선사는 선의 요체를 밝힌 설법집인 〈선요〉에서 이런 깨달음의 경계를 “그 순간 온 우주가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고, 땅 전체가 푹 꺼지는 걸 느꼈다”라고 하였는데, 성철 스님도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졌네”라고 하였다.
 

김형중 문학평론가

3구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리니”는 선가에서 어리석은 마음을 돌이켜서 머리를 돌리는 깨달음을 표현한 용어이다. ‘전심(轉心) 회수(回首)’이다. 4구 깨닫고 나니 “청산은 여전히 흰 구름 속에 있네”라고 했다. ‘촉목청산(觸目靑山)’이다. 깨달음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 일상생활과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청산’은 깨달음, ‘흰 구름’은 일상의 세계’를 상징한다.

성철 스님은 〈본지풍광〉 〈선문정로〉 〈한국불교의 법맥〉 등 걸출한 선서(禪書)를 남겨 선학과 참선 실수를 통한 오도(悟道)의 경계를 겸수한 우리 곁에 함께 했던 큰 바위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