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일의 불모열전 시즌2] 3 .법령(法靈·法令·法玲) 스님

 전북 명찰 불상 조성…17세기 호남 僧匠 임란 이후 군산 은적사 등 전북 및 충청서 불상 조성 조각승 수연 등과 공동작업 17세기 조각승 혜희의 스승

2025-04-14     최선일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장
17세기 호남과 영서를 중심으로 활동한 조각승 법령 스님이 1629년 조성한 군산 은적사 목조석가여래좌상.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왜구에 의해 파괴된 사찰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전쟁이 끝난 후 많은 사찰에서 전각과 불상 및 불화 등을 새로 제작했다. 이와 같은 중건 과정에 대한 문헌기록이 거의 전하지 않기 때문에, 개별 조각승들의 활동 시기나 작업 환경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 따라서 전각과 불상의 조성 과정은 사찰 중창과 관련된 단편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문헌은 익산 관음사 목조문수보살입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이다. 이 조성발원문은 1605년에 완주 위봉사 북암에 4구의 보살상을 제작하면서 작성된 것으로, 위봉사가 위치한 추줄산(뜣뜉山)에 거주한 의암(儀庵) 스님이 정유재란 중에 소실된 북암을 중건하는 순서가 서술되어 있다. 

북암은 1601년 음력 1월 법당을 건립하기 시작하고, 1602년 목재를 구해 삼존상을 만들었으며, 1603년 영산회상도를 조성하면서 전각을 단청하였다. 1605년 음력 8월에 문수, 보현, 관음, 지장보살상 등을 조성하면서 약사도, 아미타도, 지장시왕도를 완성하여 11월에 법회를 마쳤다. 따라서 17세기 초반 사찰이나 암자의 중건 순서는 전각(殿閣)을 건립한 후, 규모에 맞게 불상과 불화를 조성하고 전각에 단청(丹靑)을 입히는 순서로 진행됐다. 

그리고 개별 조각승들이 1년에 몇 건의 불상을 조성했는지는 북암 보살상을 제작한 원오 스님을 통해 알 수 있다. 원오 스님은 1605년 음력 3월부터 7월까지 논산 쌍계사 대웅전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높이 190㎝)을 제작한 후, 음력 8월부터 11월까지 완주 위봉사 북암에서 충신(忠信), 청허(淸虛), 신현(信賢), 신일(神)과 높이 153㎝의 목조보살입상(4구)과 높이 51㎝의 목조여래좌상(1구)을 만들었다. 

따라서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개별 조각승은 최대한 1년에 봄과 가을로 나눠서 개별 전각에 불상을 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불상의 크기에 따라 제작 기간이나 참여 인원이 다르겠지만, 대략 3~4자(90~120㎝)의 중형 불상은 조각승 5~6명이 두 달이나 석 달 보름 정도 제작에 참여한 것을 알 수 있다. 

조각승 법령의  계보도

17세기 초반 호남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조각승 원오(元悟, 1599~1611·이하 활동시기)·응원(應元, 1613~1635)·수연(守衍, 1615~1639)·각민 스님(覺敏, 1605~1614) 등은 활동이나 조각승 계보 및 불상의 양식적 특징이 밝혀졌다. 이외 주목되는 조각승은 법령 스님(法靈·法令·法玲)이다.

법령 스님은 1615년 김제 금산사 독성상을 태전(太顚) 스님, 응원(應元) 스님, 수연(守衍) 스님, 인균(印均) 스님과 조성하고, 1622년 5월에 현진 스님과 한양에 있던 왕실 사찰인 자수사와 인수사에 목조비로자불좌상(2존), 석가여래삼존상, 노사나불(2존), 미타여래(2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등을 제작하였다. 그 후 법령 스님은 1624년 음력 3월 수화승으로 논산 쌍계사 북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1991년 옥천 가산사 화재 때 소실)을 각현(覺賢)과 함께 조성하고, 1629년에 수화승으로 태감(太甘), 천윤(天允), 각현(覺玄)과 함께 군산 은적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만들었다. 

또한 1640년 음력 2월부터 4월 1일까지 수화승으로 군산 불명사 아미타삼존(본존은 익산 숭림사 봉안), 석가삼존, 미타상, 독성상을 제작한 후, 1641년 음력 6월에 청헌이 수화승으로 제작한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을 부화승으로 참여하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법령의 활동 시기는 1615년부터 1641년 6월까지로, 주로 호남 북부와 영서 남부 지역 사찰에 불상을 조성하였다. 

법령 스님(1615~1641)의 계보는 철학(哲學, 1640~1654)각현(覺賢·覺玄, 1624~1640)혜희(惠熙·慧熙, 1640~1677)천윤(天允, 1629~1655)조능(祖能, 1640~1657)→마일(摩日, 1655~1701)금문(金文, 1655~1706)청윤(淸允, 1684~1716) 등으로 이어지는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계보이다. 

이런 문헌을 바탕으로 법령 스님은 최소한 1580년 전후에 태어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후, 1615년에 전북을 대표하는 사찰인 김제 금산사 불상과 1622년에 왕실 사찰에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조각승들과 공동으로 불상을 제작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스님은 수화승으로 1624년 논산 쌍계사 북암에 목조아미타여래좌상(옥천 가산사 봉안)과 1629년 군산 은적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제작하여 호남 북부와 영서 남부 지역을 대표하는 조각승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1640년 익산 숭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을 제작할 때 대화원(大畵員)으로 명성을 얻고, 1641년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조성 때에 부화승으로 참여하였다. 조각승 법령은 다른 조각승 계보와 달리 90㎝ 정도의 불상을 적은 인원인 1~3명의 보조화승과 함께 작업하였다. 
 

17세기 호남과 영서를 중심으로 활동한 조각승 법령 스님이 조성한 1624년 옥천 가산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소실)

법령 스님이 제작한 대표적인 불상은 1629년 군산 은적사에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삼존상으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다. 석가여래의 높이는 111㎝, 협시보살의 높이는 112㎝이다. 

석가여래는 상반신을 앞으로 살짝 숙인 모습으로 시선은 정면보다 조금 아래를 향한다. 전체적으로 긴 상반신에 비해 하반신의 높이가 낮고 양 무릎 사이가 긴 편이다. 

얼굴과 앉은키의 비례가 인체에 가깝고, 어깨가 넓어 당당한 모습이다. 머리는 육계와 구분이 불분명한 형태로 굵은 나발(螺髮)로 이루어져 있고, 정수리에 원통형의 정상계주(頂上珠)와 이마 위쪽 중앙에 반원형의 중간계주(中間珠)가 있다. 타원형의 얼굴은 뺨과 턱의 살집이 올라 부드러우면서 양감이 있다. 가늘게 뜬 긴 눈, 콧대가 높은 코, 미소를 머금은 작은 입, 목에 삼도(三道)와 더불어 하나의 선이 들어간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착의 형식은 대의 안쪽에 부견의를 입지 않고, 오른쪽 어깨에 걸친 두꺼운 대의(大衣) 안쪽 자락의 끝단이 U자형으로 짧게 늘어져 있다. 그 옆으로 4가닥의 옷주름이 자연스럽게 접혀 있고, 나머지 대의 자락은 팔꿈치와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반대편 대의는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수직으로 내려와 복부에서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펼쳐져 있다. 하반신 중앙에는 윗부분이 좁고 아랫부분이 넓게 펼쳐진 대의자락이 길게 늘어지고, 좌우로 2가닥의 대의 자락이 넓게 펼쳐져 있다. 왼쪽 무릎 위에는 짧게 소맷자락이 걸쳐 있고, 등 뒤에는 앞에서 넘어온 대의 자락이 엉덩이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가슴을 덮은 승각기는 단순하게 수평으로 접혀 있다. 오른손은 다섯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뻗어 무릎 밑으로 내린 촉지인을, 엄지와 중지를 맞댄 왼손은 따로 만들어 손목에 끼워 넣었다. 

협시보살은 석가여래상과 얼굴이나 신체 비례가 유사하지만, 수인, 지물, 착의법 등이 다르다. 문수보살은 대의와 부견의를 모두 착용하였고, 석가여래상과 달리 오른팔에 부견의 자락이 걸쳐 있다. 귓불에는 꽃모양 귀걸이를, 양 손목에는 팔찌를 착용하고 있다. 보살상의 머리 앞에 상투를 감싸는 넓적한 판재와 보관은 근래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보현보살상은 부견의와 대의를 착용한 문수보살상과 달리 천의(天衣)를 착용하고 있다. 상반신은 짧은 숄 형태의 겉옷을 걸쳤는데, 옷 사이로 위 팔뚝에 착용한 띠 형태의 장신구와 함께 양팔이 훤히 드러나 있다. 보현보살상 배 중앙에 이중 화형복갑(花形腹甲) 장식이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조각승 법령 스님은 6건의 문헌 기록만 남아 있지만, 최소한 26년 활동기간 중 1년에 1~2건의 불상을 제작했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더 많은 기년명 불상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제작연대를 알 수 없는 청양 정혜사 목조석가여래삼존불좌상은 이목구비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대의를 걸친 착의법 등에서 1620~1630년대 법령 스님이나 그 계보에 속한 조각승이 조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