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불논단] 자연은 지금 법문 중
현 기후위기, 우리 業의 산물 자연 순환 끊은 구조적 업보 욕망 식을 때 지구도 식는다
요즘 들어 뉴스에서 산불 소식을 자주 접한다. 한국은 물론, 미국과 캐나다, 유럽, 아시아 곳곳이 불타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올해 봄이 너무 일찍 왔다”, “날씨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이건 단지 계절 탓이 아니다. 기후학자들은 이미 경고해 왔다.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기온이 1.2도 상승했고, 지금 같은 속도라면 2030년엔 1.5도를 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구는 회복력을 잃고,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의 문턱을 넘게 된다.
이건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그 징조를 겪고 있다. 폭염, 홍수, 가뭄, 산불 등 기상이변은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서울 절반 크기의 산림이 불탔고, 수만 명이 대피했다. 자연의 고통은 우연이 아니라, 인간의 업에 따른 과보이다.
모든 현상은 법문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이 기후위기 또한 부처님의 설법이다. 책 속 말씀이 아니라, 현실 속의 ‘당체법문(當體法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고통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첫째, 인간은 탐욕으로 자원을 과도하게 사용해 왔다. 석탄과 석유, 가스를 마구 써 온실가스를 넘치게 했고, 이는 지구를 가둬 뜨겁게 만들었다. 불교적으로 보면 이는 ‘투도’, 곧 도둑질이다. 자연의 허락 없이 가져다 쓴 업이다.
둘째, 우리는 숲을 밀어 공장을 짓고 도시를 세우며 탄소 흡수원을 제거했다. 이 또한 공동의 무지, 곧 공업(共業)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의 순환을 인간 스스로 끊어버린 것이다.
셋째, 우리는 다음 세대가 쓸 자원까지 앞당겨 써버렸다. 그 결과 미래 세대는 우리가 지은 업의 과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이것은 세대 간의 ‘투도’이며, 구조적인 업보이다.
이러한 탐욕과 무지, 투도는 결국 오늘의 지옥을 만들었다. 지옥은 꼭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이 곧 현세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불교는 회피하는 종교가 아니다. 고통을 똑바로 자각하는 데서부터 업의 정화가 시작된다. ‘이건 내 업이 아니다’라며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업을 짓는다. 하지만 ‘이건 내가 지은 업이다’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그러니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삶을 바꿔야 한다. 에너지와 소비를 줄이고, 고기 섭취를 줄이며, 환경운동에 동참하는 것도 수행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탐욕을 멈추는 마음공부이다. 절제와 자비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선업을 쌓는 길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에는 마법 같은
해답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업을 멈추고 선업을 짓기 시작한다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 부처님은 지금도 불길 속에서 설법하고 계신다. 그 말씀을 듣고도 외면한다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망각이다.
불길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속 욕망이 만든 불길이다. 그 마음이 식을 때, 지구도 식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