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환경문제가 아니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 10년 만에 칼럼집 내고 ‘전환운동’ 역설 불교의 녹색화…‘무소유 마켓’ 제안
이름이 브랜드가 되는 사람이 있다. 유정길. 불교계에서 그의 이름은 곧 ‘환경운동’으로 읽힌다. 정토회에서 불교 공부와 수행을 시작한 그는 산하 환경기구인 에코붓다에서 ‘빈그릇운동’과 같은 생태적 대안 실천 운동을 전개해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전 세계 긴급구호 활동, 남북한 평화 활동을 거쳐 2015년부터 수경 스님의 요청으로 불교환경연대 비상대책위원장,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 녹색불교연구소장, 60+기후행동 운영위원, 생태전환지원재단 이사, 조계종 환경위원회 위원, 환경과미래포럼 공동대표 등 환경과 관련한 다양한 소임을 맡고 있다.
대형 재난은 기후위기의 증상
2013년 <생태사회와 녹색불교>를 통해 ‘생명·평화로의 전환’을 설파했던 유 대표가 10년 만에 펴낸 칼럼집 <거룩한 불편>은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생태사회’를 만들기 위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책에 담긴 44편의 글을 통해 그가 주장하는 바는 단 하나.
“기후위기는 환경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기후위기와 환경오염, 생물종 다양성의 위기는 그저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태도와 철학적 가치, 우주적인 각성을 요구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4월 2일 불교환경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유 대표는 근래 전 지구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불, 지진, 홍수 같은 대형 재난을 ‘기후위기의 증상’으로 꼽았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징후는 이미 차고 넘칩니다. 기후 문제, 탄소 중립 문제가 이토록 시급한 상황인데도 세계 지도자들은 유엔에서 만날 때만 위급하다고 주장할 뿐, 자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성장 우선의 정책을 취합니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지속가능한 성장’ 역시 허구라고 지적했다. 유 대표는 “본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은 ‘지속 불가능한 발전’을 해온 인류가 지금까지의 삶을 통렬하게 참회하고 반성한 뒤, 그러한 과거와 단절하고 전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은 용어”라며 “그런데 지금은 자연환경만 잘 고려하면 기후위기는 해결할 수 있고, 그러면 지금의 성장과 발전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다는 착시를 갖게 하는 용어로 그 뜻이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성장 위주 정책이 산불 피해 키워
최근 발생한 영남 지역 대형 산불도 성장 위주의 산림 정책이 피해를 키운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흔히 대형 산불의 원인으로 건조한 날씨와 강풍을 지목하지만, 세금을 들여 활엽수를 베어내고 도로를 만드는 산림청의 ‘숲 가꾸기’ 사업 또한 피해를 키운다는 주장이다.
“우리 산은 물이 많은 활엽수와 건조한 침엽수가 다양하게 자라는 혼합림입니다. 그런데 산불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사찰 주변의 활엽수를 베어내고 송진 성분으로 불이 쉽게 붙는 소나무만 남겨 놓으면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인간 중심, 성장 중심의 사고방식이 피해를 키운 셈이지요.”
자연과 이웃 살피는 ‘소욕지족’의 삶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으면 성장과 개발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환경문제의 진정한 해법은 성장이 아닌 성숙을 추구하는 ‘대사회적 전환운동’을 전개하는 데 있다고 유 대표는 말한다.
“기후위기는 일종의 증상입니다. 원인을 생각하지 않고 증상만 문제 삼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죠. 오늘날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무엇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속도와 경쟁이 아닌 자연과 생명과 이웃을 살피며 천천히 사는 여유로움, 편익과 편리가 아닌 거룩한 불편, 자발적인 ‘맑은 가난’의 삶이 필요합니다.”
‘물질적으로 청빈하게,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친환경적 삶을 당부하는 유 대표는 “청빈한 삶은 정신의 풍요로움, 마음의 넉넉함에서 나온다. 마음공부를 통해 항상 자신을 살피고, 욕망에 기초한 집착을 내려놓는 수행과 기도를 일상화해야 한다. 이러한 마음의 힘이 바로 생태적 삶의 기본 동력”이라고 말한다.
안 쓰는 물건 나누는 ‘사찰 무소유 마켓’
사찰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운동으로는 ‘무소유 마켓’을 제안했다.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사찰에 기부하고 서로 나누는 장터다. 이를 통해 자원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물건=돈’이라는 인식을 전환할 수 있다. 또 사찰이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빈그릇운동 실천하기, 한 끼 채식하기 등 다양한 환경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불교의 녹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당부했다.
“환경 실천은 불편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는 거룩한 불편입니다. 한 사람의 노력이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그렇게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모자이크 붓다’가 될 때 오늘날의 위기를 극복할 희망이 만들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