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의 깨달음의 노래] 14. 경허 선사의 오도송
부처와 중생은 서로 다르지 않다
깨닫고 보니 세상이 내 집일세
홀연히 콧구멍이 없는 소가 있다는 말을 듣고 (忽聞人語無鼻孔)
문득 깨닫고 보니 온 세상이 내 집일세(頓覺三千是我家)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六月燕巖山下路)
일을 끝낸 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野人無事太平歌)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6~1912) 선사는 조선 후기 불교를 중흥시킨 불후의 선지식이다. 당시는 일본과 서구열강에 의해서 국권이 침탈되어 나라가 망해가고, 불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기진맥진하는 말법(末法) 시대였다.
이때 경허 선사는 혜성처럼 나타나 정혜결사(1899년)를 통해 조선불교를 새롭게 이끌었다.
불보살이 보우하여 1895년 조선 숭유억불정책의 상징인 ‘승려 도성 출입금지 해제령’이 발표돼 서울 한양에서 포교 전법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문하에서 기라성 같은 사자새끼들이 쏟아져 나와 오늘날 한국 불교의 핵심인 조계선종의 기틀을 세웠다.
1930년 선학원에서 개최된 조선불교수좌대회에서 그의 상족제자인 혜월, 만공, 한암 스님이 공동 종정으로 추대되었다. ‘경허 행장’을 쓴 한암 종정은 1948년 조선 조계종 제2대 교정(4번 종정에 추대)에 추대되어 현 조계종단의 초석을 세웠다.
경허 스님은 잠이 오면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고, 턱 밑에 죽창을 받치는 살신정진(殺身精進)을 했다. “게으른 중은 죽으면 시주자의 은혜를 갚기 위해 소로 태어나는데 코구멍이 없는 소가 된다”는 말을 듣고 그 동안 마음에 응어리진 의심이 확 풀리면서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1구 ‘콧구멍이 없는 소(無鼻孔)’는 선가의 언어로 논리나 이치에 맞지 않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是甚麽) 그 뜻을 집중하여 생각하고 의심하는 수행이 화두 공부이다.
1880년 6월 35세에 잃어버린 소(불성)를 찾던 경허는 고삐를 뚫을 콧구멍이 없는 깨달음을 얻은 성우(惺牛)가 되었다. 그리고 연암산 천장암에서 이 오도송을 토해내는 개당설법을 했다. 근대 한국 선불교의 새로운 출범을 알리는 웅장한 선언이다. 경허 선사는 한국선시사에서 최초로 심우송(尋牛頌) 20수를 오언절구로 읊은 시승(詩僧)이다. 한용운이 ‘심우장’으로 계승하였다.
경허 선사는 23세에 동학사 강원에서 만화 강백의 교편을 물려받은 대강사로 교학과 선, 양 검을 쥔 최고 선지식이 되었다. <경허집>에는 깨달음의 세계를 읊은 선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한시 259수와 한글 가사 3수가 있다.
그의 한시 칠언절구 ‘천장암에 붙여서(題天藏庵)’에서 “속세와 청산 어디가 더 좋은가 봄빛 내리는 성터 어디엔들 꽃이 피지 않으랴”고 하였는데, 오도송 2구에서도 “문득 깨닫고 보니 온 세상이 내 집일세”라고 하였다.
그의 선사상은 무애 자유와 중생과 함께 하는 화광동진(和光同塵) 그리고 승가와 세속이 하나인 승속(僧俗) 일여 사상이다. 부처와 중생이 하나로 서로 다르지 않다.
경허 선사는 생사를 초월했고, 세상사의 시비와 분별을 마음에서 놓아 버렸다. 할 일을 다 마친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는 절학(絶學), 일 없는 사람(無事人)이 되었다. 중국 당송시대 역대 조사와 벗하고 상대할 수 있는 격식을 뛰어 넘은 기이한 일화를 남긴 한국 선종사의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