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연의 수행 다이어리] 몸과 마음 청정해지면 청정한 세상으로…
5. 삼매의 현상들(1) 무량광 ‘나’ 라는 근본무명 깨야 오온의 실체 알면 ‘나’ 해방
모든 고통의 근원에는 ‘내가 있다’ 또는 ‘나는 존재한다’라는 기본 전제가 있다. 어떤 슬픔이건 어떤 분노이건 어떤 아픔이건 간에, 그것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에는 ‘내’가 있다. ‘내가 있다’고 착각하기에 모든 것은 비롯된다. 즉, 모든 생명에는 자의식(개체로서의 자기 인식)이 디폴트(default: 기본 설정) 값으로 깔려 있다. 이런 착각을 불교에서는 어리석음 또는 멍청함이라고 하여 ‘치(痴: 현상의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병든 마음, 사리분별을 못하는 번뇌)’라고 한다.
‘나’라는 덩어리, 산산이 분해되다
‘내가 있다〔치〕’라고 착각하면서, 그것을 유지하려는 갈애〔탐貪〕가 생기고, 그것이 뜻대로 안 될 때 분노〔진瞋〕가 생긴다. ‘치-탐-진’으로 반응하는 패턴이 고착화되어 있다. ‘나’라는 것의 발원지인 이것을 유신견(有身見: ‘내가 있다’라는 인식)이라 한다. 또는 ‘근원적 어둠’이라고 하여 ‘근본 무명’이라고도 한다. 과연 근본 무명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것과 저것이 만나) 홀연히 일어난 것이 스스로를 돌아보매 ‘있다’라고 착각한다”라는 구절을 <대승기신론>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의 세상·나의 인생·나의 고통·나의 윤회가 ‘있다’라는 잘못된 착각에서 비롯된 허상이라니!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유식(唯識) 사상이 이해가 간다. ‘유식’이란 ‘오직 식(識: 마음)만 있다’라는 뜻으로 일체 제법에는 오로지 마음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현상의 원리를 미립자에서 찾는 양자역학에서도 ‘의식(마음)에 따라 미립자가 생성되고 작용한다’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귀신이 있어서 두려운 게 아니고, 두려운 마음이 생기니까 귀신이 나타난다’라는 원리이다. 즉, 마음이 먼저이고 형상이 나중이다. ‘착각(근본 무명)’이 먼저이고 ‘나’가 나중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매 ‘덩어리’진 것이 ‘있다’고 착각하는 근본 무명(병든 마음, 오염된 마음)이 있는 반면에, 그 실체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반야의 마음(건강한 마음, 청정한 마음)이 있다. 그 실체란 덩어리가 만들어지는 과정, 즉 ‘이것과 저것이 만나 연기(緣起)’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일어나고 사라짐〔생멸生滅, 또는 연기緣起-연생緣生-연멸緣滅〕을 무상하게 반복하고 있다. 자칫 덩어리(오온: 몸과 마음, 느낌, 기억과 분별, 행위, 인식)로 다가와 나를 존재하게 하고 또 뒤흔들었던 그것의 실체. 그것은 ‘다양한 요소들의 이합집산’일 뿐이었다. 무상하게 파도치는 이합집산이라는 현실(또는 실상實相)을 알게 되면, ‘나’라는 감옥에서 해방된다.
‘나’라는 고질적인 착각(근본 무명)을 깨어버리는 방법을 발견하신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그 방법은 사마타와 위빠사나이다. 사마타 수행으로 ‘나’라는 ‘덩어리’로부터 분리가 일어나고, 위빠사나 수행으로 그 ‘덩어리(나)’를 산산이 분해한다. 그러면… , 남는 것은 없다. ‘무아(無我)’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어마어마한 빛 ‘무량광’의 출현
지난 연재에서 사마타 수행 과정 중에 일어나는 ‘몸의 정화’ 단계까지 기술했다. 하나의 대상(화두와 염불, 들숨날숨, 초기불교의 40가지 사마타 주제 등)에 오롯하게 의식을 집중하면, 내게 붙어있던 의식이 그 대상으로 전이되어 (‘나’로부터의) 분리가 일어난다. 6근과 6경의 만남으로 유발되는 6식(전5식+제6식)의 끊임없는 파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이를 통해 마음의 고요를 획득한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몸의 작용도 고요해진다. 그리고 이에 따른 몸의 정화가 일어난다. 몸과 마음이 일순 청정해지면, 청정한 세상〔극락〕으로 바로 넘어가게 된다. 그때 만나게 되는 풍경 중 하나가 찬란한 무량광(無量光, 한량없는 빛으로 아미타로 번역된다)이다.
여기까지 사마타의 과정을 정리하면 ‘하나의 대상에 계속 집중하면 희뿌연 구름과 같은 니밋따가 나타난다 → (계속 집중) 대상이 투명해진다 → (계속 집중) 강렬한 빛이 발생한다 → (계속 집중) 대상과 하나가 된다’이다. 이때 발생한 빛은 살아생전 보지 못했던 희한한 빛이다. 투명한 빛은 발광(發光)하지 않는다. 지상의 모든 빛은 피사체에 부딪혀 반사하는 발광의 형태를 띤다. 하지만, 이 오묘한 빛은 차원이 다르다. 월등한 크기와 청정도(맑음의 정도)를 자랑한다. 이러한 대상과 하나가 되었을 때는 ‘몸이 없다’고 느낀다. 오직 ‘무량광’만이 존재한다. 이것과 하나 된 삼매에서 나올 때는 (의식이 몸으로 돌아오는 순간) 몸이 뒤로 튕겨 나뒹구는 현상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