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배의 24번의 계절] 5. 경칩 _ 용인 길을 걷다
범종 소리, 새 봄 뭇 생명 일깨울 ‘법음’ 봄의 천둥…뭇생명 흔드는 계절 산속에 감춰둔 듯한 용덕사에서 산을 지키는 주인들과 마주하다
저 멀리 산 높은 곳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순식간에 적막했던 산길과 숲을 채우고,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거대한 소리의 물결.
하늘에서 땅으로, 사람으로, 이제 막 돋아나는 저 새잎까지 공명하며 흩어지는 청아한 소리.
어느새 숲은 다시 고요해지지만, 종소리가 퍼지기 전과 후의 세상은 다르다. 이제 천둥 같은 저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을 향해 떠나야 할 때. 다시, 빛으로 나아갈 시간이다.
다시 일어날 시간, 경칩
3월이다.
한 해의 세 번째 달에 접어들면 24절기의 세 번째 절기도 함께 시작된다. 바야흐로 천둥소리에 잠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
〈예기(禮記)〉 ‘월령(月令)’ 편은 “만물은 우레 소리를 듣고 나오는데, 우레는 곧 천둥이다. (중략) 잠자던 동물들이 놀라서 기어 나온다”는 말로 경칩을 풀어 전한다.
경칩 무렵 봄비가 내리는데, 이때 처음 천둥이 치면서 땅속에 있던 벌레를 비롯한 만물이 땅 밖으로 나온다는 것. 그래서 중국 후한 시대에 쓰인 ‘한서’에 따르면 경칩의 원래 이름은 ‘열 계(啓)’자를 쓴 ‘계칩(啓蟄)’이라 불리기도 했다.
전국 어디서나 이즈음에는 자그마한 새싹이 고개를 들이밀고, 녹은 얼음물은 흙을 보드랍게 만든다. 옛사람들은 경칩 때 흙일을 하면 탈이 안 난다는 속설과 함께, 이날 흙을 바르면 빈대가 없다고 하여 흙벽을 바르거나 담장을 쌓았다.
또 새싹의 성장 정도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그해 작황을 점치는 것. 따뜻한 기운에 깨어난 동식물들을 죽이지 않도록 땅에 불을 놓는 화전 행위에 임금이 직접 금지령을 내린 것도 이 절기의 풍경이다.
어디 그뿐일까. 하늘도, 땅도 들썩들썩 일어나는 시기, 잠자는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 꼭 천둥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과거 경칩에는 젊은 남녀가 은행 씨앗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은행이 암·수 나무로 서로 떨어져 있어도 함께 열매를 맺고, 겉은 쓰고 단단해도 한번 땅에 자리 잡으면 천년을 가기 때문.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들은 해가 저물면 동네 은행나무를 돌며 애틋한 시간을 보냈다니, 이보다 달콤한 봄의 풍정이 또 있을까.
청나라 우이(尤怡)의 〈잡감(雜感)〉에는 “봄이 오니 양기가 움직이고, 경뢰가 북처럼 울린다. 개인 강물에는 아침 빛이 가득한데, 풀과 나무는 새로 내린 비에 머리를 감았다”고 경칩을 이야기했다. 여름의 그것과 달리 소리가 작아 춘뢰 혹은 경뢰라 부르는 봄의 천둥.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날 여린 생명을 위해 천둥도 제 목소리를 줄였는지 모를 일. 풀도 나무도, 사람의 마음도. 이 계절은 이다지도 부드럽게 뭇 생명을 흔든다.
용덕사를 찾아서
용인시 이동읍. 경기도 외곽의 호젓한 마을인 이곳에는 용덕 저수지와 묵리계곡, 길게 흐르는 용덕사천까지 도심에선 쉬이 볼 수 없는 다양한 물길이 제법 이어진다. 마침 길을 나선 것은 3월의 첫날. 오래전 이 땅의 독립을 기원하며 만세를 외쳤던 선열들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진 날이다. 새봄을 기다리던 그 날의 간절함을 되새기며 느린 걸음으로 땅을 밟는다.
자박자박 물길을 따라 국도변을 걷다 보면 마주치는 표지판 하나.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 말사인 ‘용덕사’를 알리는 표식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알았던 이가 아니라면 쉬이 지나치기 쉬운, 왜인지 산속 어딘가에 살며시 감춰둔 듯한 작은 사찰. 하지만 이곳을 한 번이라도 찾는다면 용덕사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이름이 될 것이다.
용덕사는 신라 문성왕 대에 염거화상이 창건하고 도선국사가 3층 석탑과 철인(鐵人) 3구를 조성했다는 천년 고찰. 용덕 저수지를 비롯해 이 근방 일대를 잇는 용덕사천, 그리고 용덕사가 자리한 산의 지명 또한 성륜산(聖輪山)임을 미루어 보아 과거 이 지역에서 용덕사의 불교적 상징성과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비록 과거의 세와 다르다 해도, 용덕사는 여전히 경기 일대의 사찰 중에서도 그 사적의 중요성과 의미가 남다르다.
신비로운 설화와 고유한 문화재, 3.1운동과 의병항쟁의 거점이었던 호국사찰의 의미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옛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저 가파른 산등성이의 고적한 도량이 그렇다.
용이 머물던 사찰
오래전 용덕사의 처음은 ‘굴암사(窟巖寺)’로 시작한다. 이는 이 산에 굴암, 용덕사의 창건 설화로 알려진 용굴 설화의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신라 시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용에게 여의주를 소원했던 한 처녀와 그녀에게 여의주를 주려다가 목숨을 잃은 용의 설화가 바로 그것. 이후 한 노스님이 용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용덕사라는 이름으로 절을 짓고, 지금도 용이 머물던 그 굴암은 이 산을 지킨다는 이야기다.
용이 머물던 산중인 만큼 길은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일주문을 넘어 꽤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나면, 산의 경사를 따라 자리한 용덕사의 대웅보전, 미륵전, 범종각의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대웅보전 앞으로는 오래된 두 개의 석탑이, 뒤로는 부처님 진신 사리탑이 이 천년고찰의 긴 역사를 말없이 전하는 모습. 그리고 그 곁의 미륵전에는 신라 시대의 석조여래입상과 나한상이 모셔져 있는데, 문이 열리는 순간 그 단아하고도 서늘한 석불의 자태에 압도되고 만다. 반면 그 뒤에 자리한 오십여 개 나한상들은 금방이라도 장난을 칠 것처럼 해학적인 표정으로 낯선 이를 반겨주는 것이다. 하지만 용덕사의 숨겨진 백미는 역시 저 깊은 숲 너머, 다시 산길을 오를 때 다시 드러난다.
멈추지 않는 종소리
용덕사 대웅보전과 미륵전 사이로 난 작은 숲길. 이 길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누구라도 잠시간 각오를 해야 한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꽤 가파른 돌길을 올라야 하기 때문.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뻐근해지는 찰나 저 멀리 하늘 위에서 고고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현실적일 만큼 청아한 소리가 금세 온 산을 메우는 순간,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니 일대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눈과 발이 닿는 그 모든 곳마다 의병장 옥여 임경재와 의병들이 일본군 토벌대와 치열한 교전을 치른 곳. 그리고 용덕사의 스님들이 3.1 운동의 시작과 함께 용인 최초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전개했다는 현장이다. 걷는 것조차 힘든 산 고개를 넘나들며 새 세상을 향해 싸운 처연함, 잠시 가빠졌던 숨도 부끄러움에 가만히 가라앉는다.
마침내 산 중턱에 오르면 세 갈래로 나누어진 가파른 계단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위로 당당히 선 세 개의 전각. 각각 중앙은 극락보전, 우측은 삼성각, 그리고 좌측에는 용굴(관음누각)이다. 마치 숲속에 감춰진 신비로운 궁전이 모습을 드러내듯, 이 산을 지키는 주인들과 마주한 것이다.
문득 다시 울려 퍼지는 종소리. 저 멀리 용굴 앞 누각 위 누군가가 울리는 범종 소리가 산을 가득 메운다. 오래전 저 기암절벽의 작은 굴에서 잠들었던 용. 그는 영생을 향한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 제 목숨 같은 여의주를 전해주었다고 했다.
이제는 목숨을 다하고 사라진 의병도, 이 깊은 굴에서 불법을 전한 옛 선사들도 영원한 잠에든 시간. 하지만 범종의 울림은 천지 만물을 어둠 속에서 깨우는 법음이라고 하지 않던가.
긴긴 겨울밤을 지나 잠에서 깨어날 뭇 생명도, 새로운 세상을 바라며 눈감은 이들도 다시 저 종소리와 함께 깨어날 것이다. 다가올 새봄, 빛으로 향할 저 우레 소리와 함께.
▶한줄 요약
〈예기〉 ‘월령’ 편은 “만물은 우레 소리를 듣고 나오는데, 우레는 곧 천둥이다. 잠자던 동물들이 놀라서 기어 나온다”는 말로 경핍을 풀어 전한다. 경칩 무렵 봄비가 내리는데, 이때 처음 천둥이 치면 땅 속에 있던 벌레를 비롯한 만물이 따 밖으로 나온다는 것. 그래서 경칩의 원래 이름은 ‘열 계(啓)’를 쓴 ‘계칩(啓蟄)’이라 불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