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야의 詩, 불교를 만나다] 4. 연기(緣起)적 시점으로 세상을 노래하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국화꽃은 그냥 피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고의 세월 이겨낸 결과 무언가 이루기 위해 풍파 넘어야 국화, 소쩍새 등 서로 존재 이유 인간과 자연 둘이 아님을 알아야

2025-02-28     이일야 전북불교대학장
해당 삽화는 생성형 AI로 제작됐습니다.

연기의 진리가 작동하는 세계
그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좀 더 쉽게 전하겠다는 작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나름 노력해온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대부분 한자로 되어있어서 처음 접하는 이들에겐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사찰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좋지만 교리는 이해가 안 된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부처님은 가장 쉬운 언어로 대중에서 전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어려운 불교로 변질된 것 같다. 오늘날 사람들은 쉬우면서도 삶의 의미를 담은 불교를 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철학이나 문화, 종교 등 인문학과의 관계 속에서 불교를 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해왔다. 불교의 외연을 넓히는 일이 불교와 대중의 거리를 좁히고 전법에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 포교 현장에서 적용해보니 효과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관념 속에 빠져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불교의 중요한 사상들을 공부하고 전하면서 모르는 사이에 일상과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 전 벗이 운영하는 딸기 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얗게 핀 딸기 꽃과 빨간 색의 열매는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비닐하우스 안에는 여러 마리의 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 벌에 쏘인 기억 때문인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왔다. 나오면서 입구에 놓인 벌통이 눈에 들어왔다. 딸기밭에서 양봉도 하고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 언제 꿀을 먹을 수 있냐고 친구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다름 아닌 ‘무식한 놈!’이란 핀잔이었다. 벌이 있어야 딸기가 수정하는 이치도 모르냐는 것이었다.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농장 방문이 처음이라지만, 벌과 딸기의 관계를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저 벌은 우리에게 꿀을 가져다주는 곤충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연기(緣起)의 진리가 바로 이곳에서 작동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놓치고 있었다. 그동안 수업 시간에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더불어 존재한다는 연기에 대해 얼마나 많이 말해왔던가. 그런데 정작 연기의 현장에 있으면서 그것을 몰랐으니, 결국 부처님의 가르침을 관념으로만 알고 있었던 셈이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우리들 일상에서 불교적 의미를 찾으려 좀 더 애썼던 것 같다. 관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현장이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연기에 대해 설명하거나 글을 쓸 때면 딸기밭에서의 경험을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역시 그때의 경험이 떠올라 선택한 것이다. 경우만 다를 뿐 농장에서 본 딸기와 벌, 그리고 시에 등장하는 국화와 소쩍새는 연기적 관계 속에서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서정주는 김소월, 한용운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갈리는 편이다. 천재적인 시적 감성을 지닌 인물이라는 평가와 함께 시류에 편승한 작가, 친일문학에 근거를 둔 작가라는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일제강점기의 친일 행적과 해방 이후 독재정권에 부역했던 모습에서 나온 평가라 할 것이다. 이는 시인이 감내해야 할 과보다. 그래서 역사가 무섭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국화 옆에서’는 서정주라는 시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다. 1947년 <경향신문>을 통해 처음 발표되었으며 1956년 발간된 <서정주시선>에 실려 있다. 아름답게 피어난 한 송이 국화꽃에는 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연이 담겨있다는 시인의 통찰이 돋보이는 시다.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읽어본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인제는 돌아와 겨울 앞에 선 /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에 담긴 소쩍새와 천둥, 무서리
이 시는 교과서에 실려 있고 시험문제에도 여러 번 출제되었기 때문에 기성세대에겐 익숙한 작품이다. 한 송이 아름다운 국화꽃은 그냥 피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결과물이다. 무섭게 울어대던 천둥과 하늘을 새까맣게 뒤엎고 있는 먹구름, 그리고 간밤에 내린 무서리는 꽃이 피기까지 인내해야 했던 인고의 상징이었다. 우리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상의 온갖 풍파와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한 송이 국화꽃에서 인간의 삶이 조명되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불교라는 렌즈를 통하면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국화 옆에서’는 연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노래한 작품이다.

연기는 불교의 세계관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此起故彼起)’는 연기의 공식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보통 국화꽃과 소쩍새, 천둥, 먹구름, 무서리 등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벌과 딸기를 독립적인 존재로 여긴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홀로가 아니라 수많은 인연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 천둥과 먹구름이 있으므로 국화꽃이 존재하며, 벌이 있으므로 맛있는 딸기를 먹을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서로가 서로의 존재 이유이자 근거가 되는 셈이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의 행동 하나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를 인드라망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물마다 종이 매달려있어서 하나의 종을 쳐도 모든 종에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시, 공간적으로 서로 얽히고 얽히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오늘날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로 기후위기와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지 않은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는 평가와 함께 인류의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에 몰려있다.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니라는(不二) 연기적 세계관을 등진 결과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내란 상황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계엄령 발동이라는 위험한 상황에서 어떤 시민은 슬리퍼를 신은 채 여의도로 달려왔다. 국가의 위기가 곧 나의 위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엄은 정치와 경제, 문화, 외교 등 모든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은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 마음들이 거리로 모이고 모여 결국 계엄군을 막아냈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보살심이 작동한 것이다. 문득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열사 역을 맡은 강동원의 대사가 생각났다. 아무리 학생들이 시위를 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주인공을 향해 강동원이 답한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마음이 아파서 잘 안 돼.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울컥해진 순간이었다. 모른 채 하면서 살고 싶은데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마음이 아프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연기적 사유가 작동했기 때문에 시대의 아픔에 공감했던 것이다.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12·3 사태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뛰쳐나왔던 이유다. 어쩌면 그 희생의 역사가 연기적으로 이어져 그날의 위기를 막아냈는지 모를 일이다. 차마 모른 채 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이 유학에서 강조하는 불인지심(不忍之心)이자 천성(天性)이다. 달리 표현하면 불성(佛性)과 양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와 천둥이 울어대고 간밤엔 무서리가 내리며 잠도 오지 않았다고 노래했다. 사람 사는 세상 역시 자연의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소쩍새와 천둥, 무서리의 마음이 되어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울어댔던 것이다. 한강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했다고 했다. 작가의 지적처럼 부산과 마산, 광주에서 죽어간 이들과 민주화를 이룬 과거의 역사가 오늘의 우리를 지켜준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적지 않은 이들이 서정주를 천재적 감성을 지닌 시인이라고 평가한다. ‘국화 옆에서’ 역시 연기적 세계관을 관통하고 있는 아름다운 시다. 하지만 시와 시인의 삶 사이에 간극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님같이 생긴 꽃이 피려고 잠도 오지 않았다고 표현한 것처럼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삶이었다면, 이 시는 훨씬 감동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러한 간극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써왔던 적지 않은 글과 일상 사이에 존재하는 실존적 간극을. 이를 줄이기 위한 성찰을 게을리 하면 안 될 것 같다. 그 일환으로 블로그나 카카오톡 대문 창에 이런 글을 써놓고 자주 쳐다보곤 한다.

‘앎과 삶,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오늘도 난 산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