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13. 가장 큰 선물내적동기와 자존감

학위, 재물 등 외적동기가 아닌 ‘이 일을 통해 멋진 사람 되겠다’ 내적동기 있어야 자존감 고양돼

2025-02-28     김권태 동국대사범대부속중 교사
김권태 동국대사범대부속중 교사

아내가 외출한 주말 오후, 엄마가 금세 그리운 아기가 칭얼대기 시작한다. 자이언트 판다 같이 큰 32개월 된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팔베개를 하며 동화책을 읽어준다. 주인공 코알라가 조랑말을 타고 신나게 달리다, 갑자기 멈춰 선 조랑말을 어쩌지 못해 당황한다. 이때 그간 주인공이 조그맣다고 무시했던 햄스터가 당근으로 조랑말을 유도해내고, 그런 햄스터의 재치를 칭찬하며 둘이 신나게 조랑말을 타고 노는 이야기다.

매너리즘에 빠질 때마다 우리 아기가 사는 세상을 생각해 본다.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하나, 그런 고민이 학교현장에서의 수업이 된다. 나는 우리 아이가 내적으로 자존감이 튼실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는 자존감이란 삶의 모든 경험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말한다. 마치 고마움이라는 말처럼 자기가 받은 사랑을 발견해서 그것을 준 상대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또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존귀한 사람으로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 것 말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를 보며, “잎사귀야 고마워! 처음 보는 내게 반갑게 손짓을 해줘”라고 말할 수 있는 힘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자존감이란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식의 낙관이 아니다. 반만 남은 물과 그 위의 빈자리를 함께 보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물만 보는 낙관은 막연한 기대로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게 하고, 빈자리만 보는 비관은 문제를 크게 부풀려 희망 속에서 절망을 찾는 꼴이기 때문이다. 물과 빈자리를 함께 볼 때만 그 빈자리가 희망과 설렘이 될 수 있다. 물이 온전한 에너지가 되고, 빈자리가 온전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달리지 않는 조랑말을 당근으로 꼬시는 꼬마 햄스터를 생각한다. 당근은 이리로 오면 주겠다는 보상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동기 그 자체다. 당근이 외적동기가 될 때 우리는 당근의 노예가 되겠지만, 당근이 내적동기가 될 때는 그 자체로 그 사람의 품격이 된다. 학위, 자격증, 돈의 유무로 평가하는 외적동기가 아니라, ‘나는 이 일을 통해 더 멋진 사람이 될 거야, 나는 이 일을 통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람이 될 거야’하는 내적동기 말이다. 이 내적동기가 바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자존감이다.

학기 초 칠판에 크게 글씨를 쓰고 함께 외워보는 시가 있다.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에서 배우고,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며, 진짜 부자는 만족할 줄 알고, 품격 있는 사람은 밖으로 구함이 없다.(賢者好學 强者克己 富者知足 格者無求)”

현명한 사람은 아이큐가 높은 게 아니라 모든 것에서 배울 줄 아는 사람이고, 강한 사람은 남을 이기는 게 아니라 자기가 정한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는 사람이며, 진짜 부자는 수백억 자산가가 아니라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고, 품격 있는 사람은 어떤 문제에 대해 남 탓만 하는 게 아니라 먼저 자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현명하고, 강하고, 부자이고, 품격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부모로서, 교사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나의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