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24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드는 사회

3. 사회복지법인 연화원 서울 광림사 산하 복지법인 장애인 교육·복지, 전법 시설 신도 중심 장애인 활동 ‘활발’ 장애인 인식 개선 사업도 ↑ 〈점자 불교성전 6〉 발간 앞둬 “장애인 문화시설 설립하겠다”

2025-02-25     김가령 기자
사회복지법인 연화원은 매주 일요일, 시각장애인들이 동참하는 법회가 열린다. 제각기 읽을 수 있는 경전을 든 불자들은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현대불교 자료사진

“기자님, 등산 좋아하세요?”

“등산이요? 글쎄요….”

슬쩍 다가와 ‘등산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꺼낸 거사님. 대답을 뜸 들이는 모습을 보더니 자신의 핸드폰 사진첩을 보여줬다.

“제가 매주 등산을 다니거든요? 연화원 식구들끼리 가는 건데 전국 곳곳의 산이란 산은 다 찾아다녀요.”

신이 나 말하는 거사님의 핸드폰 사진첩에는 여러 사람이 산 정상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웃는 모습 등 여러 장면이 담겨 있었다. 그 사이 흥미로운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한 보살님이 거사님 등산 가방에 묶인 끈을 잡고 산을 오르는 사진이었다.

“가방에 끈을 달아두셨네요?”
“끈을 잡으신 분은 시각장애를 가진 불자님이세요! 비장애인 봉사자의 가방에 잡고 따를 수 있는 끈을 매서 안전한 길로 산을 오를 수 있는 거예요. 연화산악회는 장애인, 비장애인 분들 다 함께 산을 오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친밀해지는 모임이죠.”

조계종 광림사 산하 사회복지법인 연화원(이사장 해성 스님, 광림사 주지)의 원년봉사멤버 신광욱(74) 연화산악회 회장은 등산모임 홍보에 여념이 없었다. 7년째 이어온 연화산악회는 지리산, 태백산, 함백산 등 전국에서 안 가 본 산이 없을 정도. 더욱 놀라운 것은 회원 중 절반이 시각장애인으로 이들은 빠짐없이 등산에 참여하고 있었다. 비장애인 봉사자들이 이들의 눈과 발이 돼 함께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었다.

신 회장은 지체장애인들과 전국 사찰을 순례하는 ‘법륜회’를 만들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연화원 이사장 해성 스님의 지원이 뒷받침됐다. 모임 소식을 들은 해성 스님은 직접 이름을 지어주고 소정의 활동비까지 지원했다. 이 덕분에 불자, 비불자 지체장애인과 그 가족들 모두가 함께하는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종이 위 흰 점들은 이웃들이 불법을 읽을 수 있는 길을 밝히고 있었다.

함께 어우러져 취미 활동하는 모습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은 없었다. 단지 서로의 편의를 위한 배려와 도움만이 있을 뿐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묻자 해성 스님은 연화원에 있었던 한 사례를 이야기해줬다. 후천적 청각장애인과 그 가족의 이야기였다.

연화원에 열심히 출석하며 수화를 배우던 한 청각장애인 이용자가 어느 날부터 발길을 끊자 스님은 무슨 일인지 걱정했다. 가족에게 연락해 방문한 집에서 다시 만난 이용자는 다행히 건강했으나, 가족들이 그의 야외활동을 막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청각장애인은 후천성인 경우가 많아요. 그 가족들은 갑자기 청각장애인이 된 가족 일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거죠. 비장애인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면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큰 목소리로 말을 거는 행동을 반복했던 거예요. 결과적으로 청각장애인 분의 생활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가족이 장애를 얻어 예전과 다른 모습이 된다면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해성 스님은 “장애인은 장애인으로서 삶을 꾸려나갈 권리가 있다”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스님의 진심어린 설득에 감화된 가족들은 이용자를 다시 연화원에 데려다주기 시작했다. 

해성 스님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행복하려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한 사람을 보고 ‘이상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판단이고 분별심”이라며 “판단분별을 버려야 남을 보는 내 마음에도 걸림이 없어 모두가 평화로워진다”고 설명했다.

연화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진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문을 열었다. 2003년 사회복지법인으로 출범하기 전인 1993년 2월부터 연화원은 장애인의 권익 향상을 위한 활동을 이어왔다. 장애인 배움터 ‘연화 복지학원’, 장애인 전법을 위한 ‘불교 수화 용어집’ 발간, ‘청각장애인 운전교육 비디오’ 제작….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미비했던 시절, 연화원은 장애인 복지의 선도기관이었다.

장애·비장애인이 상생하는 사회를 위한 인식 개선 사업을 펼치는 연화원은 장애인 스스로의 인식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사회의 부정적 시각들을 느낀 장애인들은 자신의 존재를 비하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연화원은 장애인 역시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권리를 갖는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자 했다.

장애인들이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는 ‘수어사랑음악회’는 그 대표적인 예다. 매년 연말 개최하는 음악회는 장애인들에게 불교문화 공연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과 함께 공연을 즐기며 하나됨을 느끼고, 장애인들은 다른 장애인들에게 또 다른 삶의 지평을 보여준다. 

연화원 책꽂이에는 점자 서적이 가득했다. 〈점자 불교성전〉은 올해 상반기 6권이 발간된다.

올해 연화원은 부처님오신날에 앞서 〈점자 불교성전〉 6권을 발간한다. 시각장애인들의 여법한 법회 참여를 위해 2013년부터 제작되어 온 점자 불교성전은 불자 뿐만 아니라 비불자 시각장애인들도 오매불망 기다리는 책이다. 

강태봉 한국시각장애인불자회 회장은 점자 불교성전이 시각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책 중 한 권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불자라면 기본적인 교리 교육을 받아야하는데, 장애인을 위한 교재나 교육이 미비한 상태에서 점자 불교성전은 크나큰 도움이 됐다”며 “비불자 시각장애인들도 점자 불교성전 발간을 반기며 ‘다음 권은 언제 나오냐’ 등 기대감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름없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연화원은 앞으로도 장애인 문화 증진과 신행 활동의 전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나의 건물을 장애인 문화시설로 만들고 싶다는 게 해성 스님의 바람.

“장애인들이 주체가 되는 문화시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 공간에 장애인 카페, 시각장애인 안마소 등 장애인들이 제공하고 누리는 서비스가 한 데 집약된다면 장애인 복지도 크게 증가하고 사회 평등도 실현될 겁니다. 장애인도 이웃처럼 생각하는 많은 분들의 동참이 이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해성 스님/ 사회복지법인 연화원 이사장

Q. 사회복지를 시작하신 계기가 있나요?
A. 수화를 배우면서 듣고, 말하고, 볼 수 있는 게 굉장히 감사한 일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 감사함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연화원의 주요 목표가 무엇인가요?
A. 장애인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할 기회를 제공하는 게 주요 목표예요. 이를 위해 연화원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거나, 장애인이 주인공이 되는 활동을 꾸려나가고 있어요.

Q. 복지현장에서 되새기는 부처님 가르침이 있으신지.
A. 〈잡보장경〉의 “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신을 낮추어라”라는 말을 언제나 되새기고 있어요. 나를 낮추는 ‘하심(下心)’이 있어야 자만심이 사라져 상대방과 화합할 수 있게 됩니다.

Q. 불교사회복지는 어디로 나아가야할까요?
A. 불교계가 장애인들의 신행 활동에 도움이 될 환경을 구축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30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나아갈 길은 열려있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법회, 장애인 템플스테이 등 사찰에서 장애인들이 즐길 수 있는 게 많아지면 불교에 대한 관심도 더더욱 커지지 않을까요?

Q. 사회복지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A. 사회가 선진화 될수록 집계되는 장애인 수가 늘어나는데, 이것은 장애인을 돌볼 인프라가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와 같아요. 장애인을 낯설게 생각하지 않고 평범한 이웃이자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함께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