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의 깨달음의 노래] 13. 신찬 선사의 오도송
닫친 문 두드리는 어리석은 벌 되지 말라
열린 문은 마다하고 닫힌 문만 두드린다
벌아, 활짝 열린 공문(空門)을 마다하고
(空門不肯出)
굳게 막힌 창문만 두드리는구나
(投窓也大痴)
백 년 동안 옛 종이를 뚫으려 한들
(百年鑽古紙)
어느 때 벗어나길 기약하겠는가
(何日出頭期)
이 선시의 유래와 내용이 산사의 벽화에 더러 그려져 있는데, 서울 삼룡사 법화삼매당의 벽화 그림이 유명하다.
신찬(神贊) 선사의 오도송과 일화는 고려 때 백운(白雲) 선사가 저술한 <직지심경(直指心經)>(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에 수록되어 있다. 신찬 선사는 백장(百丈) 선사(720~814, 중국 선종 9대조사)의 제자이다. 그는 일찍이 중국 복주 고령사(古靈寺)에서 계현(戒賢) 스님의 제자가 되어 경전을 배우다가 당시에 최고 선지식인 백장 선사를 찾아가 참선 공부에 열심히 정진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이 부처(見性成佛)”인 것을 깨달았다.
오도(悟道) 후 다시 은사인 계현 스님에게 돌아와 시중을 들었다. 어느 날 은사스님이 창문을 반쯤 열어 놓고 경전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벌 한 마리가 들어와서 열려있는 문으로 나가지 않고 닫힌 창문에만 가서 부딪치는 모습을 보고 신찬 선사가 스승을 위하여 게송을 지어 읊은 것이 이 오도송이다.
1구의 ‘공문(空門)’은 현실세계에 나타난 물질 현상이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연화합으로 잠시 모여서 이루다가 사라지는 실체가 없는 무아(無我) 즉, 공의 세계임을 밝힌 진리의 세계이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 집착하는 일은 부질없다.
3구의 ‘옛 종이(古紙)’는 불교경전을 뜻한다. 원래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통해서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종파가 교종(敎宗)이고, 경전(손가락)을 부정하고 직접 명상 수행을 통해서 달(깨달음) 즉, 신령스런 마음의 본체를 발견하는 종파가 선종이다.
이 시는 자신의 마음을 직접 찾는 참선 수행을 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형적인 선종시이다. 평생 경전만 보는 교학승(敎學僧: 경전을 전문으로 공부하는 승려)인 스승의 잘못된 수행 방법을 “열린 문은 마다하고 닫친 문만 두드리는” 어리석고 고집스런 벌의 모습을 비유하여 일깨워주고 있다.
이 게송을 들은 계현 스님은 제자에게 자초지종을 묻고, 깨달음을 얻은 제자에게 대중을 모아 법문을 청하였다. 은사스님은 제자의 오도(悟道) 설법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내가 늙어서 상좌에게 최상의 법문을 들으니 부처님의 은혜로구나”라고 하였다. 제자의 수행 경지가 스승을 앞서는 청출어람(靑出於藍)하고, 지혜가 밝은 제자에게 불치하문(不恥下問)하고 가르침을 청하는 선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은 높은 산을 오르는 지도와 같다. 아무리 좋은 지도가 있어도 직접 산을 오르지 않으면 지도가 소용이 없다. 서산 대사는 <선가귀감>에서 “부처님 말씀은 교(敎)이고, 부처님 마음은 선(禪)이다.(敎是佛語 禪是佛心) 그러니 교와 선은 똑같은 것이니, 함께 수행하라(禪敎一致)”고 하였다.
불교는 참된 마음과 올바른 진리를 찾아서 부처로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종교이다. <유마경>에 “올바른 마음이 수행의 장소인 도량(直心是道場)”이라고 하였다. 임제 선사는 직심(直心)을 갖기 위해서는 편견과 우상을 버리라고 하였다. 올바른 마음과 투철한 수행만이 혼탁하고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린 사회와 대중을 바르게 이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