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야의 詩, 불교를 만나다] 3. 초심(初心),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마음

정채봉의 〈첫 마음〉 소원 성취, 초발심이 중요 실패는 쌓인 업(業)이 원인 힘들 때 쉬는 지혜 있어야 발심·휴업·정진으로 결실

2025-02-14     이일야 전북불교대학 학장

새해는 새로운 서원을 세우기 좋은 시기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원을 세운 가장 첫 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언제나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날마다 서원의 깊이는 깊어진다. 정채봉 시인은 ‘영롱한’ 첫 마음으로 늘 새로운 삶을 살길 권한다. 2025년 한해는 발심, 휴식, 정진의 균형이 갖춰진 한 해가 되길 바래본다.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는 새해. 소원을 빌었는지, 서원을 세웠는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해당 삽화는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했습니다. )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마지막 해넘이와 첫 해돋이를 보기 위해 명소를 찾아 떠난다. 지는 해를 보면서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는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술과 담배를 끊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보낸다. 이번에는 반드시 살을 빼겠다고 다짐하는 이들도 있다. 모두들 함성을 지르며 결기를 보이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웬만해서는 3일을 넘기기도 어렵다. 그럴 때마다 ‘역시 작심삼일인가!’ 하면서 고개를 푹 숙인다. 해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뜨는 해를 보면서 소원을 빌었는지, 서원을 세웠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원(所願)이 ‘~해주세요’라는 구조라면, 서원(誓願)은 ‘~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의미한다. ‘담배를 끊게 해주세요’와 ‘담배를 끊겠다’는 것은 질적으로 아주 다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원이 아니라 서원이다. 서원을 세웠다 해도 3일이면 무너지는 것이 현실인데, 소원을 빈다 해서 그 바람이 쉽게 이루어지겠는가. 어림없는 소리다. 삶의 변화는 서원을 세우고 꾸준히 실천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새로운 마음을 다졌는데도 몇 일만에 무너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업(業)의 에너지 때문이다. 오랜 시간 몸과 마음에 쌓인 습기(習氣)가 생활의 변화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과거의 업이 현재의 다짐을 압도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새해 첫날 금연을 결심하고도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십 년 동안 피워온 에너지가 금연의 기운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일이다. 금단 현상 때문에 고생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서는 어설픈 소망이 아니라 강력한 동기와 결심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악착같이 명소를 찾아 일출을 보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지’ 굳게 다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움이 될 만한 명언이나 시 등을 찾아 인터넷을 검색해본다. 이번에 소개할 시 역시 새로운 마음으로 한해를 시작하려는 이들이 좋아해서 많이 찾는 작품이다. 과연 정채봉 시인의 ‘첫 마음’을 읽으면 생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정채봉은 시인보다는 동화작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등단도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꽃다발〉이라는 동화가 당선되면서 이루어진다. 그는 〈샘터〉라는 잡지의 편집을 맡으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다. 참신한 기획과 아이디어가 돋보인 잡지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글들로 넘쳐났다. 특히 그가 직접 쓴 ‘생각하는 동화’는 〈샘터〉의 상징과도 같았다. 당시에는 서점에서 작은 크기의 잡지를 읽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는 1978년부터 2001년까지 20여 년을 이곳에서 보내게 된다.

불자들에게 정채봉은 〈오세암〉이라는 작품으로 많이 기억되고 있다. 설악산 오세암의 전설을 동화로 만든 이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이 밖에도 〈생각하는 동화〉를 비롯하여 〈물에서 나온 새〉 〈스무 살 어머니〉 등 많은 저서가 있다. 정채봉은 2001년 간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무척 안타까워하는 대목이다. 왜 좋은 사람들은 세상을 일찍 떠나는지 모르겠다는 누군가의 푸념이 떠오른다. 아쉬운 마음이 컸던지 2011년 그의 숭고한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정채봉 문학상이 제정되었다. 그를 기억하면서 오늘의 시 ‘첫 마음’을 읽어본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폐업인가, 휴업인가?
정채봉 시인의 ‘첫 마음’을 읽으면서, 우리가 초심을 잃지 않고 한해를 살 수만 있다면 세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 속에 등장하는 내용과 유사한 상황을 우리는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예컨대 스님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머리 깎던 날의 마음으로 수행한다면, 한국불교는 반석 위에 세워질 것이다. 군대 첫 휴가를 나와 부모님을 뵈었을 때의 마음이 계속 유지되고, 아이와 처음 마주했을 때 설레는 마음으로 자식을 대한다면 순간순간이 새롭고 깊어질 것이다.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 마음으로 손님을 대한다면, 문을 닫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첫 마음을 지속하는 일이 중요하면서도 어렵다는 뜻이다. 초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불교에서도 첫 마음을 매우 중시한다. 〈화엄경〉 전체를 210자로 압축한 의상 대사의 〈법성게(法性偈)〉에서는 ‘첫 마음을 내는 것이 곧 바른 깨달음(初發心是便正覺)’이라고 강조했다. 불교에서 목표로 삼는 깨달음이 바로 초심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출가(出家)와 가출(家出)의 기준을 여기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즉, 마음을 내고 머리를 깎으면 출가지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깎는다면 가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초발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첫 마음을 강조하는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마음을 새롭게 내지 않으면 과거의 업(業)에 이끌려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면 굳이 초심을 다시 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새롭게 살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발심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첫 마음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지난날의 삶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삶의 질적 전환을 위해 발심을 하고 서원을 세웠다 해도 그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거에 쌓은 업(業)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우리들 삶뿐만 아니라 자연의 이치 또한 그와 같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3월이 되면 사람들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즉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한다. 겨울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눈이 오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것이다. 이 역시 현재의 업(봄 기운)이 과거의 업(겨울 기운)을 압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봄이라는 새로운 상황이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법은 단순하다. 봄을 봄답게 느끼기 위해서는 따뜻한 기운이 차가운 기운을 압도하면 된다. 자연에서는 시간이 그 일을 담당하지만, 인간의 삶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간다고 해서 삶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살겠다는 강한 의지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불교에서 참회와 발원, 행원(行願)을 중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첫 마음을 내더라도 과거의 업 때문에 이를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때 사람들은 ‘난 역시 안 돼’ 하면서 쉽게 포기하고 만다. 새해 첫날 금연을 굳게 다짐하고 3일 만에 그만 두는 것이다. 이는 마치 제 2의 인생을 살겠다는 마음으로 가게를 차리고서 일이 힘들다고 문을 닫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가계를 완전히 닫는 폐업이 아니라 잠깐 동안의 휴업이다. 과거의 업이 현재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잠시 쉬는 것이다. 짧은 휴식을 취한 다음 마음을 다잡고 가게 문을 다시 열면 된다. 마음속에 ‘open’과 ‘closed’ 두 개의 팻말을 준비하고 지혜롭게 활용하자는 것이다. 우리에겐 첫 마음을 잃지 않는 임시휴업이 필요하다.

첫 마음을 잃지 않으면,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初心不忘 磨斧作針)’는 말이 있다. 공부에 싫증을 느낀 이태백이 산을 내려오다 시냇가에서 도끼를 갈고 있는 한 노파를 만났다. 왜 그렇게 열심히 도끼를 가느냐고 물었더니, 바늘을 만들기 위해서란다. 이태백이 웃으면서 그게 말이 되느냐고 하자, 첫 마음을 잊지 않으면 가능하다고 노파는 말한다. 천둥 같은 사자후에 이태백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매진한다. 초심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다.

정채봉 시인도 지적한 것처럼 초심만 잃지 않는다면 언제나 새 마음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매일 매일이 새롭고 깊어지며 넓어질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첫 마음을 낼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 초심을 잃고 폐업을 결심할 즈음 음력설이 찾아오는 것이다. 설 명절을 계기로 다시 마음을 내면 되는 일이다. 작심삼일도 백 번을 거듭하면 1년이 훌쩍 지나간다. 그렇게 발심과 휴업, 정진을 반복하면 마음의 근육도 단단해지고 현재의 에너지 역시 과거의 업을 압도하게 된다.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맛볼 것이다. 그 맛에 공부하고 수행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일야 학장

이일야 학장은...

보조사상연구원 연구위원과 사)부처님세상 이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13회 불교출판문화상 대상)와 〈철학자와 함께 읽는 동화〉(2020세종도서), 〈불교에 대해 꼭 알아야 할 100가지〉,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