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섭의 불교, K-드라마로 만나다] 곁에 있는 파트너가 선우요, 선지식
3 ‘ 굿파트너’(2024) 파트너가 내 부족함 채워주길 바라지만 기대 못 미치면 곧장 실망·갈등하게 해 함께 진리 구하는 ‘도반’, 또 다른 ‘부처’
불교 의식은 ‘삼귀의’로 시작한다. 불자라면 세 가지 보배에 의지해야 하며, 그 세 가지 보배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불법승(佛法僧)이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불자라면 누구나 귀의해야 하는 것이다. 삼보 중에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法)은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고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얻게 하는 가르침이라는 뜻에서 진리나 법칙 등의 의미를 갖는다. 나아가 그런 법칙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불교는 ‘법’의 종교라고도 할 수 있다.
법은 공정해야 한다. 서양에서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리고 양손에 각각 저울과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법과 정의의 공정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법(法)이라는 한자의 원래 글자에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수()’와 ‘거(去)’ 이외에 옳고 그름을 가려낸다는 해치()를 뜻하는 글자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해치는 동양에서 정의의 여신이고 물은 저울, 제거[去]는 칼인 셈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법의 가치는 역시나 잘못된 것을 공평무사[水]하게 바로잡는[去] 데에 있는 것이다. 때문에 ‘법’은 드라마 소재로도 매력적이어서 그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법정드라마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말, 주인공 장나라 배우에게 데뷔 23년 만의 ‘연기대상’을 안겨준 드라마 ‘굿파트너’(2024)는 독특하게도 이혼 문제에 집중한 법정드라마다. 법무법인 대정의 이혼 전문 변호사 차은경(배우 장나라)과 신입 변호사 한유리(배우 남지현)가 여러 부부의 이혼소송을 맡아서 해결해나가는 이야기인데 실제 이혼 전문 변호사가 집필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다.
‘굿파트너’라는 제목의 ‘파트너’에는 몇 가지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우선 법무법인 대정 내에서 ‘파트너(partner, 구성원변호사, 시니어)’라는 말은, 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이익을 배당받는 변호사의 직급을 가리킨다. 이혼1팀의 차은경이나 이혼2팀의 정우진(배우 김준한)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대략 10년차 미만에 배당금이 아닌 급여를 받는 변호사를 ‘어소시에이트(associate, 소속변호사, 주니어)’라고 하는데 한유리나 전은호(배우 표지훈)의 경우이다. 이들에게 적용되는 ‘굿파트너’는 회사와 의뢰인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변호사’라는 의미이다.
두 번째는 이혼1팀의 차은경과 한유리를 가리킨다. 오고 싶지 않던 이혼팀에 억지로 오게 된 신입 변호사 한유리가 베테랑 이혼 전문 변호사 차은경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점차 어엿한 변호사가 되어가고, 차은경 역시 감성적인 면이 강한 한유리를 통해 점차 인간적인 변호사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 더 널리 보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차은경을 지지해주는 이혼2팀의 파트너 변호사 정우진도 차은경의 훌륭한 파트너이고, 서로 사랑의 싹을 키워가는 한유리와 전은호도 서로의 굿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아마도 드라마가 강조하려는 의미일 텐데, 이혼 사건에 등장하는 부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던 온갖 파트너들이 이혼을 둘러싸고 원수처럼 법정에서 다투는 모습이 주로 나오기 때문에, 사랑하던 ‘굿 파트너’가 어떻게 원수 같은 ‘배드 파트너’가 되는지를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혹 다시 ‘굿 파트너’가 될 수는 없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드라마의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 차은경과 내과의사인 남편 김지상(배우 지승현)의 이혼 사건을 보자. 먼저 둘은 서로의 어떤 점에 이끌려 결혼한 것일까? 지상은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성격이어서 늘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목표의식이 분명하고 진취적인 은경에게 반했다. 제일 빨리 나온다는 이유로 일반 김밥만 먹을 정도로 시간을 따지는 은경은 결혼까지도 효율을 따지듯이 짧은 연애 끝에 빠르게 해치웠다. 그럼에도 지상의 사진을 보면 행복하고 지상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마음은 진심이었다.
둘 사이에 딸 재희(배우 유나)가 태어나고, 마냥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던 두 사람이지만, 은경이 승승장구할수록 서로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어지면서 지상은 은경의 미래와 자신의 미래에 한없는 격차가 있을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욕망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은경의 비서 최사라(배우 한재이)와 불륜을 저지르고 만다. 어릴 때부터 서울 생활에 대한 동경과 안정된 가족에 대한 로망이 있던 사라는 은경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 점차 질투와 열등감으로 바뀌며 은경의 모든 것을 차지하려 한다. 은경은 진작부터 남편 지상의 불륜을 알고 있었지만, 이혼이 자신에게 큰 이득이 없다는 생각에 애써 외면하던 중, 최사라가 지상과 신혼부부처럼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결국 이혼을 청구한다.
이혼소송이 시작되자 딸 재희의 양육권을 누가 갖는가가 최대 관건이 되는데 딸의 선택을 받기 위해 은경과 지상은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은경과 지상은 물론 시청자들도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은경과 지상이 서로의 다른 점을 보고 끌렸던 것처럼, 상대에게 부족한 것을 나라면 메워줄 수 있겠다는 결심이나 또는 나에게 부족한 면을 저 사람이 채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파트너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끊임없이 상대와 나의 부족한 점을 자각하며 사는 일은 행복할 수 없고, 행여나 그렇게 나를 완성시킬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았다고 생각하더라도 내 기대만큼 나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지 못하면 곧장 실망과 갈등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 훔쳐간 갈비뼈 되찾듯이 잃어버린 내 영혼의 단짝을 찾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온전하지 못한 내가 영혼의 단짝을 찾아 완성되었다면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은 무엇인가? 또한 내가 찾은 영혼의 단짝에게도 내가 과연 영혼의 단짝인가?
어떤 사람이라면 우리 인생의 굿 파트너가 될까? 불교에서는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도반(道伴)이라고 하거나 선우(善友)라고 한다. 함께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 선지식(善知識)이라고도 한다. 이보다 더 훌륭하게 부부를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내가 내 아내, 혹은 내 남편을 존중하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나보다 훌륭한 점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성숙한 만큼 그 사람도 충분히 완성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미 성별이 다르고 살아온 세월이 다르고 경험이 다른데 다른 것을 또 이야기할 것이 뭐 있을까? 그 다름 그대로가 완전한 사람임을 알고 그대로 존중하면 될 일이다. 그저 본래부터 부처인 내가 또 다른 부처를 만나 부처로 예경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내 곁에 있는 파트너가 굿 파트너, 즉 선우가 되는 것을 온 몸으로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