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미의 심심톡톡] 타인을 적이 아닌 ‘부처님’으로 보세요
31 분노의 화살을 멈추게 한 부처님, 분노 시리즈 (4) 생존형 분노, 복합 트라우마가 원인 위협 상황 인지 구조 자비로 바꿔야
강하게 키우기 위해 때리는 아버지. 윤건(27·가명)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강하게 키우려 했다. 특히 윤건이가 말을 더듬거나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뺨을 후려치는 냉혹하고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형과 달리 작고 유약해 보인 윤건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버지는 “남자 새끼가 강하게 커야지!”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두 아들이 성장해도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온 날, 윤건이는 게임을 하다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방문을 벌컥 열고 “요즘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때리기 시작한 아버지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보였고 눈은 희번덕거렸다. 팔이 아파서 더이상 때릴 수 없다고 느낄 때까지 폭력은 이어질 태세였다.
윤건이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소리를 질렀다. 벽으로 밀쳐진 아버지는 윤건이를 향해 죽이겠다고 소리를 치며 욕을 퍼부었다. 아버지에게 달려든 이후, 윤건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피투성이가 된 채 움직이지 못했다.
17살 때 기억을 천천히 이야기하는 윤건이는 “자신이 너무나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윤건이가 상담실을 찾은 이유는 화가 나는 순간을 참지 못하는 자신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더 심해졌어요. 공격받는 느낌이 들면 적을 죽여야만 살 수 있는 것처럼 싸우는 제가 감당이 안되요. 제가 왜 이럴까요?”
윤건이의 경우는 전형적인 ‘생존성 분노’ 유형이다. 지난 연재에서 분노의 종류 가운데 ‘돌발성 분노’와 ‘잠재적 분노’에 대해 언급했었다. 세 번째 유형인 생존성 분노는 극심한 트라우마와 깊은 관련이 있다. 생존성 분노는 원시적인 본능과 연결되어 있으며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분노이다. 이 경우 대부분 오랜 기간 트라우마 환경에 놓인 경우가 많다. 위험에서 벗어나도 그들은 여전히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노한다.
혹시 윤건이와 비슷한 분노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 자세히 자신을 살펴보기를 바란다. 돌발성 분노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이들은 싸울 때 힘이 더 강해지는 느낌을 받거나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한다. 말싸움이지만 그들은 목숨을 걸듯 싸우며 살짝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려도 심하게 놀란다. 심하게는 주변인들이 자신을 해치려한다는 피해 망상에 사로잡힌다.
생존형 분노는 솔직히 고치기 쉽지 않다. 뇌에 대해 설명하자면, 편도체(amygdala)는 대뇌의 변연계(limbic system)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부위이다. 감정 조절과 공포, 불안에 대해 학습하고 기억한다. 평소 위험을 감지하면 비상 신호를 보내고 경계 태세를 갖추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부신 피질에 신호를 보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하도록 한다. 하지만 위험 상황이 아니라면 해마(hippocampus)가 부신피질에게 코르티솔을 그만 분비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우리의 뇌는 섬세한 균형 속에 작동하며 안전과 경계를 지켜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트라우마로 인해 심각한 생존 위험에 처했던 경험이 있고 장기간 고통을 겪은 사람은 섬세한 균형이 깨진다. 이유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부신피질이 과도하게 코르티솔을 분비해 해마를 손상하기 때문이다. 로널드 T. 포터는 책 <욱하는 성질 죽이기>에서 이런 경우 해마가 정상보다 1/6 크기로 줄어든다고 했다. 뇌가 상황을 잘못 이해하고 위험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치료가 된다.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
생존형 분노는 먼저 자신을 멈춰줄 단어나 간단한 문장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천천히’ ‘안전해’ ‘진정해’ ‘숨을 세 번 크게 쉬어보자’ 등 자신의 안전을 되새길 수 있는 문장이 도움이 된다. 안전함을 느끼도록 돕는 해마의 역할을 스스로 더해주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전문가의 치료가 사실 필요하다. 트라우마의 특징은 과거에 살도록 하고 꼼짝하지 못하게 한다. 트라우마 치료에 탁월한 전문가들이 많다. 그들의 도움을 꼭 받기를 추천한다.
세 번째는 위험과 공격에 대한 신호를 느낄 때 스스로 의심하고 숙고해야 한다. 자신의 판단과 추측을 의심해야 한다. 생존형 분노는 언제 어디서나 두려움을 느끼고 타인에게 위협을 느낀다. 그들은 세상이 위험하고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에게 화살을 겨눈 사냥꾼 꾹꾸따밋따를 기억하는가? 자신이 잡은 동물을 풀어준 사람을 찾기 위해 숲을 헤매고, 나무 아래 앉아 계신 부처님을 향해 분노의 화살을 겨눈 사람이다. 꾹꾸따밋따는 숲에서 맹수와 싸우는 사냥꾼이다. 맹수가 가득한 생존 현장에서 살아낸 그의 뇌 구조를 현대 과학으로 추측하자면, 그의 해마는 1/6 수준일 것이다. 꾹꾸따밋따는 적으로 생각한 대상을 ‘가족’이라고 생각한 순간 화가 풀렸다.
타인이 적으로 느껴질 때 “그는 적이 아니라 부처님이며, 나의 가족이다”라고 자비의 마음을 보내길 바란다. 뇌와 몸의 세포 전체를 자비의 손길로 안전하게 품는 것. 트라우마 독소를 해독하는 명약이 된다.
*사례는 내담자 보호를 위해 취지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재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