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의 깨달음의 노래] 12. 장사 경잠 선사의 오도송
향상일로 마음으로 한 걸음 나아가자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
백 척 되는 장대 끝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
(百尺竿頭不動人)
비록 대단한 경지이긴 해도 아직 멀었네.
(雖然得入未爲眞)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百尺竿頭須進步)
온 누리 그대로 내 몸과 하나가 되네.
(十方世界是全身)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는 산기의 화두(공안)는 한자문화권에서 ‘천 길 낭떠러지에서 잡고 있는 손을 놓아라’는 뜻을 가진 ‘현애살수(懸崖撒手)’와 함께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하는 꽤 격조 있는 고사성어이다.
중국이나 유가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의미로 사용하고, 선가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 순간에서도 한 걸음 더 밀어붙이는 용기’를 뜻한다.
이 선시는 당나라 때 장사 경잠(長沙 景岑, ?~868) 선사의 오도송이다. 경잠 선사는 중국 호남성 장사에서 선풍을 드높였으며, 중국 선종사에서 최초로 천하를 통일하고 선의 황금시대를 연 마조(馬祖) 대사의 상족제자인 남전 보원(普願) 선사의 제자이다.
선가어록인 〈무문관〉 46칙에 다음과 같이 이 오도송의 전문이 소개되고 있다.
석상(石霜) 선사가 큰스님께 물었다. “백 척 되는 장대 끝에서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큰스님이 말했다. “백 척의 장대 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비록 도의 경지에 들어가긴 했으나 아직 멀었네.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온 세상이 그대로 내 몸과 하나가 되어 내 전신(全身)을 나타낼 수 있네.”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百尺竿頭進一步)’는 가르침은 서슬이 시퍼런 화두이다. 당송시대 선가에서는 부처를 먼 곳에서 찾지 않고 자신이 모시고 가르치는 스승인 큰스님을 부처님과 같은 존경과 귀의처인 생불 조사로 모셨다. 그 스승께서 백척간두에서 손을 놓으라고 명령한다. 그래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난감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슨 뜻일까? 이것이 ‘시심마(是甚, 이뭐꼬)’ 공안이다. 선사는 “생각을 놓아 버려라. 방하착(放下着)하라. 생각이 멈춰서 고정되고 집착하면 죽는다”고 설법한다.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수상 소감에서 “세상은 왜 이렇게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그러면서도 이토록 아름다운가”라고 하였다.
불교의 목적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것이다. 즉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성불하면 장대 끝에 올라앉은 것이다. 여기서 수행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부처의 임은 중생이다. 고통 받고 있는 중생 겉으로 다가가서 구제해야 한다. 수많은 중생을 구제하는 사람은 부처 겉에서 보좌하고 있는 보처보살(補處菩薩)이다.
중생이 사는 삶의 현장에서 선행 봉사자가 실제로 불보살의 화신이 되어 세상을 보살피고 있다. 이들이 있어 세상이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심우도〉의 수행 열 단계에서 마지막 열 번째 단계가 ‘입전수수(入廛垂手)’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시장에 나가 그들을 위해 설법하고, 함께 동고동락하는 보살행을 함으로써 불교 수행을 완성하는 것이다.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나라 일이 순조롭지 않다. 그래도 나라의 주인인 우리 국민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향상(向上) 일로(一路)의 마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