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섭의 불교, K-드라마로 만나다] 세상에 ‘어쩌다’ 마주친 것은 없다
2. ‘어쩌다 마주친, 그대’(2023)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욕망이 이뤄낸 시간여행 자기 의지·노력만이 ‘자리이타’적 변화 이끌어
인생이 긴 듯하지만 지나고 보면 짧고 그 와중에 누구나 한두 가지 아쉬움은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꽤 많다.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86-1946)가 쓴 〈타임머신〉(1895)을 바탕으로 한 영화 〈타임머신〉(1960)을 시작으로, 〈터미네이터〉(1984)와 〈빽투더퓨처〉(1985), 2000년대에는 〈데자뷰〉(2006)가 먼저 떠오른다.
외국영화에서나 보던 시간여행을 우리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은 2010년대에 들어서다. 〈옥탑방 왕세자〉(2012), 〈신의〉(2012), 〈인현왕후의 남자〉(2012), 〈나인〉(2013), 〈미래의 선택〉(2013), 〈신의 선물 : 14일〉(2014), 〈고백부부〉(2017) 같은 드라마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는 최근까지 이어져서 〈반짝이는 워터멜론〉(2023)이나 〈어쩌다 마주친, 그대〉(2023)도 만났다. 2020년대에는 단순히 시간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죽임을 당한 주인공이 그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과거로 가는 ‘회귀물’이라는 것이 새롭게 나타나기도 했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2022), 〈재벌집 막내아들〉(2022), 〈내 남편과 결혼해줘〉(2024) 같은 드라마들이다.
우리는 왜 시간여행을 하고 싶어 할까? 시간여행 드라마를 분석한 어느 문화비평가의 말(이영미, 「타임슬립과 현재를 바꾸고 싶은 욕망」, 『황해문화』 83, 2014.6)을 빌리면, 과거를 바꿈으로써 현재를 바꾸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과거로 날아가고 싶을 만큼 현재의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그 고통은 단순히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도 있지만, 부모나 자식이 죽음을 맞는 극단적인 고통도 있다.
시간여행 드라마들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종교적이다.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진단 아래 안락하고 평화로운 이상향을 제시하는 것이 종교 아닌가. 그래서 불교는 현실이 세 가지 특성(三法印)을 지니고 있음을 분명히 보라고 한다. 현실 상황은 변화하고(諸行無常) 그 어떤 것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으며(一切皆苦) 실체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諸法無我)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타개해 특성의 제약을 벗어나는 것을 불교의 목적(열반)이라고 가르친다.
오늘 소개하는 드라마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2023)이다. 방송국 사회부 기자 출신 앵커 윤해준(배우 김동욱)은 우연히(!) 타임머신 자동차를 얻어 재미 삼아 시간여행을 하다가 2037년에 자신이 살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을 죽인 사람은 1987년 우정리 연쇄살인사건의 진범. 하지만 당시에는 다른 사람이 범인으로 체포됐다. 2021년 현재, 윤해준은 34년 만에 출소한 그를 만나 과거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1987년으로 가서 진범을 찾으려고 한다.
한편 베스트셀러 소설가 고미숙(배우 김혜은)을 전담하는 출판사 편집자 백윤영(배우 진기주)은 어머니 이순애(배우 이지현)가 신발과 유서를 남기고 주검으로 발견되자 평소 가족에 무심했던 아버지 백희섭(배우 이규회)을 저주하며 ‘과거로 갈 수만 있다면 어머니가 아버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막겠다’는 다짐을 한다.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각자의 사연을 안고 1987년으로 함께 돌아간 윤해준과 백윤영이 소망을 이루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1년에서 1987년으로 34년을 거슬러 갔으니, 두 사람은 당연하게도 젊은 시절의 가족들을 만난다. 특히 어머니의 삶을 바꾸고 싶어하는 윤영은 1993년생으로 1987년에 열아홉 살이던 어머니 순애(배우 서지혜)보다 무려 아홉 살이나 많은 상황, 윤영이 순애를 언니처럼 돌보며 우정을 쌓는 모습이 그려진다.
세상을 떠나버린 사람을 과거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시간여행의 큰 매력이다. 그러니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애절함을 느끼는 것 또한 시간여행 드라마를 보는 맛이기도 하다. 열아홉 살 어머니를 만난 윤영의 반가움, 바쁘게 사는 자신에게 한가한 이야기나 하는 아줌마인 줄 알았던 어머니가 사실은 문학소녀였음을 알고 느끼는 미안함, 어머니의 친구였던 고미숙이 빼앗아간 소설을 되찾아주며 느끼는 통쾌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현실에서 ‘어머니가 살아서’ 소설가로 성공해 화목한 가정을 이룬 모습을 보고 느끼는 안도감이 사실은 윤영의 것만이 아니라 드라마 시청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이, ‘하늘의 뜻’이라는 말이나 ‘시련에는 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격려로는 채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진정한 위안은 오롯이 내가 현실을 마주하고 고통의 원인을 해결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다. 2021년과 1987년이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해준과 윤영이 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도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의지를 통해 진정한 자유로움을 얻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드라마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정말 타임머신이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스스로 헤쳐나갈 수밖에. 시간여행이라는 경험은 오로지 나의 의지와 행동으로 내가 만들어낸 나의 세계이지 다른 그 어떤 존재가 대신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시간여행 드라마는 상상이긴 해도 우리의 노력으로 지금 눈앞에 놓인 힘든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 세상에 ‘어쩌다(!)’ 마주친 것은 없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에서 주목해볼 또 하나는, 해준과 윤영의 소망이 이루어짐으로써 그들 개인의 문제만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주변에서 살아가던 1987년과 2021년의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1987년 사고로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뻔한 학생들을 해준이 구해주었더니 이들이 순애의 첫 팬이 되고, 우정리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음으로써 해준은 할아버지와 처음으로 가족애를 나눈다.
보살은 자신을 위한 일과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두고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고도 한다. 원효 스님은 일심의 근본으로 되돌아가고 중생에게 이익을 준다고 표현했다. 드라마는 2037년에 누군가에게 죽임당하지 않기 위해 1987년의 진범을 잡으려는 해준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처음 학생들을 구하면서 “앞으로 이 마을, 살려야 될 사람투성이라고” 하는 그의 대사에서 우리는 뜻밖에 보살의 삶을 본다. 자리가 곧 이타가 되고, 이타가 곧 자리가 되는 보살의 삶이야말로 2025년을 헛되게 보내지 않기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