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마나의 시절인연] 묵은 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을사년(乙巳年) 새해, 〈맹자(孟子)〉를 읽는다. ‘이루상(離婁上)’편에 나오는 ‘칠년지병 구삼년지애(七年之病 求三年之艾)’란 문구에 눈길이 머물렀다.
옛날에 한 아버지가 오랜 병을 앓고 있었다. 효심이 돈독한 아들이 지극정성으로 아버지를 병간호하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때 지나가던 스님이 “3년 묵은 쑥을 다려 드리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아들은 3년 묵은 쑥을 찾아 나섰다. 어디에서나 자라는 것이 쑥이요. 며칠만 지나면 곧 마르는 풀이 쑥이다.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이 쑥이기에 사람들은 구태여 3년씩이나 말려둘 필요가 없었다.
아들은 온 천하를 뒤졌으나 3년 묵은 쑥을 찾을 수 없었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7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들이 스님의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쑥을 뜯어 말렸다면 아버지의 병을 고쳤을 것이다.
지난해는 겨울로 들어서자 흰 눈이 내렸다. 100여 년 만에 쏟아진 폭설은 세상을 뒤덮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물기를 머금은 폭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져 땅 위로 널브러졌다. 소나무들의 어깻죽지가 쩍쩍 벌어져 떨어져 나간 붉은 속살에서 고통스러운 솔 향이 진동했다.
자연은 세상의 표상이라 했던가. 갑진년(甲辰年) 겨울은 천간(甲)과 지지(辰)가 제 강건함만 믿고 우쭐댔던 것일까. 폭설이 그치자 우리 사회는 권력 집단들이 각각 제 목소리만 높여 민초들은 어둠의 혼란으로 울분의 붉은 피를 흘렸다. 백성을 이끌어가는 수뇌부들은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느라 화합이란 단어는 사라져 버렸다. 평소에 웃음을 짓고 악수를 하며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상대를 온 마음으로 껴안을 수 있겠는가.
묵은 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약쑥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3년 묵은 쑥이 필요할 때는 즉시 베어 매달아야 한다. 어찌 그것을 밖에서 오랜 세월 찾아 헤매는가. 내 집안에서, 내 마음에서 바로 쑥을 잘라 말려야 한다. 자기가 베어 말린 쑥을 달이는 것은 자신의 성찰과 미루지 않은 실행이다. 그 탕약이 아버지를 살리고 이웃을 구한다.
슬픔이 가득할 때는 기쁨의 씨를 뿌리고, 불화가 넘쳐흐를 때는 화합의 씨를 뿌리고, 억울한 일이 많을 때는 감사의 씨를 뿌려야 한다. 산에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심어 푸른 산이 되듯, 내 마음의 밭에도 기쁨과 감사와 예불(禮佛)의 씨를 뿌리면 언젠가 나도 모르게 부처가 되어 있을 것이다.
담장 밑에 심은 작은 나무가 자라서 길 가는 사람에게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마당에 심은 작은 꽃 한 포기가 자라 탐스러운 열매를 맺듯, 내 안에서 서서히 피어오른 불성은 세상을 환하게 밝혀 준다. 평소 미래를 향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필요할 때 어떻게 구할 것인가.
을사년(乙巳年)에는 소박한 민초들이 따뜻한 기운으로 아름다운 꽃 피우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그 온기를 밖에서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마음 속 자등명(自燈明)에 불부터 밝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