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초대석] 관음종 제9세 종정 영산 홍파 대종사
“세상은 나와 한 뿌리…보살의 삶을 사십시오” 기후위기 등 문제, 이기심 기반해 세상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어 항상 겸손하고 검박한 생활하길 권력에 빠진 정치인들 향한 조언 “영원한 것은 없으니 내려놓아라 새해엔 템플스테이라도 다녀오길” 2025년 관음종 창종 60주년 맞아 태허 조사 유훈 기리는 행사 마련 가사집 ‘인생탈춤’ 공연 제작 계획 “파고다 공원서 거리설법 설하신 태허조사 애민정신, 후학 상기해야”
“세상은 나와 한 뿌리…보살의 삶을 사십시오”
관음종은 올해로 창종 60주년을 맞는다.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환갑으로 다시 태어난 해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이제 새로운 출발선 상에 선 관음종의 중심에는 제9세 종정 영산 홍파 대종사가 있다.
관음종은 태허 조사가 개산한 이래 대중교화 종단으로 현대 한국불교의 한축을 담당했다. 홍파 스님에게 태허 조사는 불연(佛緣)으로는 개산조이자 은사이며, 세연(世緣)으로는 부친이다.
한국전쟁 직후 모든 사람이 궁핍했던 시기 태허 조사는 종로 파고다 공원(현 탑골 공원)에서 대중들에게 1958년부터 1960년까지 2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거리 설법을 했다. 거리 설법을 마친 이후에는 전국을 순회하며 대중을 만나 설법하고 포교했다. 1961년에는 동양방송 라디오에서 신행 강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스승 태허 조사의 원력을 홍파 스님도 제자로서 이어냈다. 홍파 스님은 고등학교 졸업 후인 1961년 5월 태허 조사를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학과 63학번으로 입학한 홍파 스님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이하 대불련) 창립 멤버를 시작으로, 1965년 대불련 제3대 회장을 맡아 캠퍼스 포교 진흥을 이끌었다. 대불련 군승촉진위원회 지도간사장을 맡아 군승제도 정착을 이끈 것도 홍파 스님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홍파 스님은 학승으로서 교직에 남아 후학 양성에 매진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를 되돌린 것이 태허 조사다. 태허 조사는 홍파 스님에게 “교수 생활하지 말고, 포교사의 삶을 살아라. 불교를 전법하고 홍포하는 일로 평생을 살아라”고 독려했다. 태허 조사의 권선은 홍파 스님의 지남(指南)이 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홍파 스님은 1980년대 들어서 자비야학-대불련-사찰 간의 결연을 맺는 ‘대불련 사원화’ 운동을 펼쳤다. 전국 규모의 야학운동을 전개했기에 스님은 좌경세력으로 몰려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200자 원고지 한 권에 자술서를 쓰라는 경찰의 말에 홍파 스님은 간략한 인생사를 적은 후 “쓸게 없다”며 ‘아리랑’ 가사를 적어내는 결기도 내보였다.
홍파 스님은 한국불교 국제 포교와 동북아 불교 연대 사업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을 1985년부터 2015년까지 맡아 한국불교 발전과 국제 포교 사업을 총괄했다. 특히 한중일불교교류협의회 출범에 있어 홍파 스님은 혁혁한 공로를 세우기도 했다.
태허 조사 열반 직후인 1979년 관음종 종무원장을 맡은 홍파 스님은 1988년 종단 총무원장(재단 이사장 겸임)에 취임해 2022년 종정 추대 전까지 종단 수장으로서 관음종 발전을 이끌었다. 총무원장 취임 당시 75개였던 종단 사찰은 현재는 300여 개로 늘어났고, 법인 소속 사찰도 전체 사찰의 10%에 달한다.
2022년 종단 제9세 종정으로 추대된 홍파 스님은 종로 낙산묘각사에 주석하며 후학들을 제접하고, 대중교화에 여념이 없다.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새해, 거리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며 바른길을 인도했던 태허 조사의 법을 이은 홍파 스님에게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다음은 홍파 스님과의 일문일답.
Q. 종정스님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A. 관음종 총무원장을 34년,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을 30년 간 지냈습니다. 종단의 성장과 발전, 한·중·일 불교 우호 사업 등 여러 사업을 많이 했습니다. 조계종을 중심으로 한 한국불교의 커다른 흐름을 함께하면서 미력하지만은 수행 행자 노릇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지금은 종단 종정이라는 직책을 맡았지만, 저는 늘 그랬듯이 초발심의 행자처럼 살아갑니다. 〈천수경〉 ‘도량찬’에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淨無瑕濊)’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량이 청정하면 티끌과 더러움이 없어진다’는 의미죠. 매일 새벽 예불을 드리고, 도량을 운력하며 지내고 있어요. 제가 잘해야 후학들도 잘하는 법이니까요.
Q. 지난해 9월 관음종 개산조 태허 조사 탄신 120주년 다례재가 봉행됐습니다. ‘백화산 도인’이라고도 불리셨던 태허 조사는 어떤 선지식이셨는지 술회해 주신다면.
A. 한국의 근현대는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일제강점기 36년에 이어 6·25한국전쟁까지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가난에 허덕였습니다. 이런 시기 태허 조사는 경북 백화산에서 대한민국의 안정과 국운융창을 발원하며 6년 동안 고행을 하셨습니다. 한국전쟁 중 서울이 수복되자 조사스님은 상경하셨고, 전쟁의 참상을 목도했습니다.
수행자로서 선방에만 앉아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조사스님은 후학들에게 “우리 수행자는 일반 신도나 속인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설파하며 대중교화에 나섰습니다. 1958년부터 2년 동안 매일 오전 10시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종로3가 파고다 공원에서 거리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 이후에는 전국 오일장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부처님 법을 전하셨습니다. 태허 조사는 부처님 법을 전하겠다는 신념을 수행하는 ‘행자’로서 삶을 사신 선지식이십니다.
Q. 태허 조사의 전법 원력은 지금 한국불교에도 던지는 메시지가 클 것 같습니다. 태허 조사의 전법행에 대해 후학들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A. 태허 조사께서 하신 설법의 중심에는 보국(保國)과 애민(愛民)에 있습니다. 태허 조사는 불자들에게 “나라를 위해서는 등불이 되고 길잡이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밝은 눈(지혜)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또한 후학들에게는 자나깨나 부처님을 생각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조사스님은 늘 “스님들은 항상 부처를 생각하고, 불법을 말하며, 이 사회와 대중을 위해 행동하라”며 사람들의 눈이 되고 길잡이가 되어주는 행자로 살아갈 것을 독려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게 불자들이 할 일”이라고 강조하신 태허 조사의 유훈을 우리 후학들은 잊지 말고 새겨야 합니다.
Q. 관음종의 소의경전은 〈법화경〉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법화경〉을 어려운 경전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화경〉이 어떤 경전인지 불자들에 소개해주신다면.
A. 팔만대장경 중에 3대 대승경전이 있습니다. 바로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입니다. 〈금강경〉의 자수(字數)는 5000여 자 정도고, 〈화엄경〉은 10조9만5048자이며, 〈법화경〉은 6만9384자입니다. 방대한 분량의 〈화엄경〉은 총체적인 부처님 사상을 담았고, 〈금강경〉은 반야지혜를 닦는 수행경전이죠. 〈법화경〉은 쉽게 이야기하자면, 팔만대장경을 한군데 모아 절구로 찧어서 채로 건져 먹기 좋게 만든 경전입니다.
〈법화경〉은 보살불교를 대중에 권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일대사인연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바를 열어서 중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오셨다고 〈법화경〉 방편품2에 나와있어요. 중생들에게 지혜로운 것을 보여주고 깨달음에 이르러 훗날 부처의 세계로 함께 가자는 것을 〈법화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가섭존자를 비롯한 10대 제자들, 그밖의 제자들까지 모두 부처의 수기를 내립니다. 〈법화경〉은 깨달음의 경전입니다.
Q. 불자들이 새해를 맞아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어떤 부분을 주의 깊게 살피며 독송해야 할까요.
A. 〈법화경〉에 나오는 석가모니 부처님은 ‘구원실성(久遠實成)’ 사문, 즉 오랜 옛날에 깨달으신 부처님입니다. 이는 부처님의 열반은 중생을 위한 방편에 불과할 뿐, 참된 깨달음은 이미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존재한다는 깨달음입니다. 이 같은 구원실성의 법신불은 누구나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는 여래장 사상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음을 〈법화경〉은 일깨워 줍니다.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기에 깨달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 것이죠. 새해,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며 깨달음의 가능성을 열어볼 것을 권선드립니다.
Q. 2025년(불기 2569년)은 관음종 창종 60주년을 맞는 해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 진행되는 기념사업 계획들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태허 조사의 사상과 정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여러 사업들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우선 조사스님 관련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있습니다.
조사스님이 저술한 가사집 〈인생탈춤〉을 작품으로 만들어보려 합니다. 10월 중 중국, 일본, 베트남 불교 지도자를 초청해서 공연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현재 국립극장에 대관 요청해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Q. 세계적으로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한국사회 역시 각계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새해를 맞는 국민과 불자를 위한 부처님 말씀 하나를 소개해주십시오.
A. 〈벽암록〉에는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과 나는 한 뿌리이며, 모든 존재는 나와 하나됨을 의미하는 경구입니다. 내가 없으면 대한민국이 없고, 대한민국이 없으면 내 자신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며, 자연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 불자들은 겸손하고 검박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반야지혜와 자비심을 갖고 이웃과 함께 사는 보살의 삶, 대승불교 불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Q. 위정자들에게도 경책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A.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들이 욕심을 좀 내려놨으면 합니다. 이는 모두 탐친치 삼독에 매몰돼 나타난 결과입니다. 권력이라는 늪에 빠져있다 보니 주변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이죠. 스님을 비롯한 종교인들이 정치인들을 만나면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조언하지만, 결과를 보면 잘 의식을 안하는 것 같아요.
새해에는 정치인들이 제행무상, 제법무아임을 알고 스스로를 좀 내려놨으면 합니다. 산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것을 권합니다.
Q. 현대불교신문 독자를 위한 짧은 법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대한민국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현대불교신문 지면을 통해서 만난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인연입니까? 이러한 인연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아주 순고하고 고귀하게 받아들여서 더더욱 열심히 주어진 사찰이나 주어진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또한 부처님의 가피를 받으실 수 있도록 모두 열심히 수행정진합시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