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인 붓다] 52. 경연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

투사로 길들여지지 않는 춤꾼들의 무대 순수 무용의 ‘춤’, 종교 의례·제례서 비롯돼 단련된 온몸으로 만든 간절한 몸짓들 ‘황홀’

2024-11-28     이안 영화평론가
엠넷 경연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 한 장면.

〈글래디에이터Ⅱ〉가 개봉되었다. 전편의 제작비 두 배를 웃도는 2억 1천만 달러를 들여 만든 〈글래디에이터Ⅱ〉는 박스오피스 1위이기는 하지만 전편의 흥행 기세만큼 대단하지는 않다. 대중들은 〈스파르타쿠스〉나 〈쿼바디스〉, 〈폼페이 최후의 날〉과 같은 헐리웃 영화들 덕분에 로마 제국 시대에 원형극장에서 목숨을 건 싸움판으로 대중들을 길들이는 정치를 보아왔다. 그 시절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를 상대하든,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든 싸움에 나서는 이들은 ‘검투사’였다. 그 검투사가 제국이 점령한 패전국의 전사였든, 시민의 자격을 얻지 못한 노예였든, 정치적 음모로 그 판에 끌려간 귀족이었든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중을 위해서 싸워야했다. 영화도, TV도, 인터넷도 없던 시대에 죽음의 스펙터클을 유흥의 쾌락으로 제시하는 것은 잔혹하지만 아주 효과적으로 군중들을 길들이는 제국의 통치 수단이었다.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적을 만들고, 편을 짓게 하고, 승부를 겨뤄 이긴 자만 살리는 토너먼트 방식은 ‘스포츠’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그러던 것이 미디어와 대중문화의 시대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싸움판을 만들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 미디어 제국의 통치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온갖 분야에서 싸움과 등수를 겨루게 한다. 살아남아야 다음이 있는 서바이벌 게임 방식은 미디어 채널을 타고 영역을 넓혀왔다. 음악이며 무용까지도. 대중의 참여를 승부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키울 수 있는 만큼 더 크게 판을 넓혀 가면서.

음악과 엔터테인먼트 전문 채널인 엠넷이 서바이벌 전투장으로 끌어들이면서 대중문화의  판도를 바꾼 영역 가운데 ‘춤’이 있다. 처음은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시리즈, 〈스트리트 맨 파이터〉처럼 같은 스타일 춤꾼들끼리 모여 ‘배틀’이라는 방식으로 춤 솜씨를 겨루는 프로그램이었다. 

스트리트 댄스는 미디어 시대가 된 1960년대 이후, 고전적 전통 무용이나발레,현대무용등 이른 바 ‘순수무용’계 바깥 다양한 대중문화 기반의 춤을 일컫는 말이 되었고, 그 춤이 대중음악, 특히 백댄서와 합을 맞추는 청소년을 겨냥한 아이돌 문화와 결합되며 무용계 바깥에 있는 대중적 춤의 유행을 이끌어 왔다.  대개 스트리트 댄서는 무대마다 있으면서도 주인공이 아니라 연예인인 아이돌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처럼 여겨져 왔고 이들의 춤은 ‘방송댄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라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스우파’ 이후 댄서들은 글로벌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걸 수 있게 되었으며, 춤을 추는 퍼포머로서 뿐 아니라 안무가로서의 창작 능력에 대한 존중도 받게 되었다. 물론 미디어와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까지도. 이들 안무가 겸 댄서의 존재는 특정 소절을 ‘와우 포인트’로 반복하는 노래를 대중이 몸짓까지 칼로 잰 듯 각 맞춰 춤추며 따라하게 하는 K-pop의 유행을 이끌어 왔고, ‘스우파’를 통해 당당하게 주인공이 되었다.

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과정은 검투사들 대결에 못지않게 치열했고, 회를 거듭하며 진행되는 배틀과 탈락의 과정은 안타까웠다. 그 처절한 서바이벌 과정을 겪어내는 동안 대중은 잘 추는 춤이 오히려 음악을 유행시키는 대중문화의 확대재생산을 보게 되었고, 미디어는 그 상품성의 가치와 이익을 더 넓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영역을 스트리트 댄스를 넘어 ‘순수 무용’에까지 펼치게 되었다. 이전에도 엠넷은 서바이벌 무용 대결 프로그램 〈댄싱9〉 시리즈를 제작해 왔으나, 그때는 장르 불문, 국적 불문 개인 자격인 참여자를 제작진이 임의로 두 팀으로 나눈 경쟁 형식이었기에 무용계 자체에 대한 영향력이나 관심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방송되고 있는 〈스테이지 파이터〉는 아예 장르적으로 대학 입시에서 가르듯 순수 무용계를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으로 나누고 참여자를 모았다. 스트리트 댄스 또는 방송댄스는 입시에서는 주로 ‘실용무용’으로 분류되며, 굳이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을 거치지 않더라도 ‘크루’를 통한 진입이 가능하지만 ‘순수 무용’은 다르다. 진입 자체가 좁은 문이다.

다른 장르나 계열에 대해 배타적이고, 입시 제도를 통하는 동안 서열이 나뉘며, 무대를 오를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콩쿠르와 오디션에서 숱하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재능이 있더라도 어릴 때부터 가족의 뒷받침 없이는 무용계 진입을 꿈꾸기 어렵다. 탄광촌 광부의 아들이 무용학교 들어가는 것이 존재를 걸고 세상을 뒤흔들어야 겨우 가능한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처럼. 

그뿐인가. 무용계에 발을 디디게 되더라도 주인공이 될 무대는 많지 않으며, 공연을 하게 되더라도 애호가 아닌 다수의 대중을 만날 기회가 없는 분야가 순수 무용이었다. 그런데 〈스테이지 파이터〉는 오직 남자 무용수들, 그것도 국내 무용수로서는 최고의 무대인 국립 무용단부터 해외에서 이름난 발레단과 발레 학교를 거친 무용수들부터 무용과가 있는 학교들의 유망주들까지 모아 대결을 펼치게 만들었다. 무용애호가는 애호가대로, 아니면 아닌대로 주목하게 만드는 방식인 서바이벌 방식의 이 프로그램은 참여한 무용수들을 글래디에이터처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출연자들 사이를 라이벌 구도로 연출하고, ‘계급’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갈고 닦았던 분야가 아닌 다른 장르까지 해내라고 하고, 심지어 춤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음악도 발레든 한국무용이든 현대무용이든 상관없이 K-pop에 맞추라고 한다. 프로그램 진행 방식을 보면 출연한 무용수들이 여태껏 몸과 몸짓을 단련하는데 쏟아왔던 모든 노력과 재능을 ‘파이터’라는 이름으로 서바이벌 자체의 눈요기와 K-pop 음원 시장, 그리고 조회수로 수익 내는 영상 콘텐츠 자원이 되도록 짜맞추려는 의도가 살벌하게 보인다. 

출연자들이 파이터가 아니고 춤꾼 그 자체로 보이는 장면들은 본방송을 통해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계급 이동과 평가를 보여주는 본방송이 아니라 출연자들의 진심과 관계, 그들이 만든 무대의 온전한 모습은 ‘풀버전’이나 ‘비공개’ 영상으로 이미 경쟁의 결과가 끝나고 나서야 보인다. 그 영상들에서 무용수들이 보이는 모습은 ‘춤’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원래 막춤의 몸짓 말고 순수 무용의 ‘춤’은 기원 자체가 의례와 제례에서 비롯되었다. 불교만 해도 바라춤, 작법무, 법고춤, 타주춤 같은 승무로 공양해왔다. 음악이 되는 범패로는 음성공양을, 몸짓이 되는 춤으로는 신업공양을 하는 불교의 의식은 참으로 장엄해서 한국 전통무용의 큰 바탕이 되어왔다. 〈스테이지 파이터〉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을 춤으로 겨루는 글래디에이터, 무대를 뺏고 뺏기는 파이터로 만들려 했으나 무용수들은 방송되지 않은 영상만 보아도 파이터로 길들여지지 않고 있다. 오직 여러 해 갈고 닦아야 해낼 수 있는 몸짓, 그 몸짓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단련해온 온몸으로 아름답고 간절한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의 신업공양이 K-pop 음원 말고도 무용 자체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무용을 보는 것이 K-pop 공연 하나, 영화 한 편 보는 것처럼 일상이 되는 바탕이 되기를. 그리고 한국무용수가 K-pop 안무곡 말고 제대로 된 궁중무용이나 승무를 보여주는 무대도 방송에서 만들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