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법사의 안심뜰] 울타리 사라지면 온 우주가 ‘나’

22 너를 이롭게 하는 게 나를 이롭게 하는 길 나와 너가 연결됨을 깨달으면 삶의 방향 놓치지 않게 될 것

2024-11-15     김영애 문사수법회 법사
김영애 문사수법회 법사

지난 주에 법당을 처음 찾은 20대 청년분들과 하루 종일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서 그들의 소구점과 눈높이에 맞추어 공간에 대한 이름을 지어보았다. 20대들의 힙한 놀이터 ‘템플스카!’. 스카는 ‘스터디카페’의 줄임말이다. 부처님 계신 공간에서 예불도 모시고 공양도 하고 책도 보고 글도 쓰며 편안한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일주일 만에 다시 이곳을 찾은 스물다섯 살의 청년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비단 이 청년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일과 사업, 나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 나아간다고 말할 때, 공통분모인 ‘나’에 대해 우리는 얼만큼 알고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 뭐를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그에 맞는 나의 일과 사업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칫 부모님의 기대나 주변의 권유에 따라, 혹은 성공한 누군가의 말에 따라 시작하다 보면, 중간에 어려움이 닥치거나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내가 과연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회의가 들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는다. 열심히 노력해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지속력이 떨어지고, 일의 목적과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좌절하게 된다. 거기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원인을 남에게서 찾고 원망까지 하게 되면 상황은 더 힘들어진다. 

우리는 흔히 내 힘으로 살아간다고 착각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우리를 ‘무한히 살려지는 존재’라고 알려주신다. 목숨이 호흡지간에 달려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숨을 들이쉰 후에 내쉬지 못한다면, 그리고 내 쉰 후에 숨을 들이마시지 못하다면 우리의 육신 활동은 정지된다. 숨이 막히면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코를 통해 들어온 공기는 내 몸을 돌고 나가고, 태양의 빛이 없다면 캄캄한 암흑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을 텐데 햇빛 덕분에 세상을 볼 수 있고 안온함을 느낀다.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공기와 햇빛만으로도 온 우주가 나를 살려주고 계심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무한한 살려짐의 은혜 속에 있는 소중한 존재가 나인데, 이 사실을 간과하니 스스로를 모자라고 부족한 존재라 착각한다. 부처님께서는 깨치신 후에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지혜와 복덕이 구족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부족감에서 출발하지 말고, 이미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에서 출발해보자. 어떤 능력을 더 갖추든 못 갖추든 우리의 참생명은 이대로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니 세상을 이롭게 하는 생명력을 드러냄에 있어 나의 개성과 인연에 맞게 배우고 익혀, 아직 발현되지 못한 참생명의 능력을 꺼내쓰는 기회로 삼아보자. 그렇게 관점을 바꾸게 되면 설령 진척이 더디고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남과의 비교심에 힘들거나 조급한 마음으로 인해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뭇생명의 이익을 위해 사는 보살은 ‘for me(나를 위함)’에 초점을 두지 않고 ‘for you(너를 위함)’에 초점을 둔다. 너는 나를 비추어주는 거울이요, 너라는 이름의 또 다른 나이다.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얽힌 그물망처럼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물코 하나를 잡아 올리면 그물망이 다 딸려오듯이, 하나의 그물코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따로 나뉠 수 없는 그물망 전체인 것이다. 나 따로 너 따로가 아니며, 우리는 동시적 존재이고 연기적인 존재이다. 그렇기에 너를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길이다. 

우리가 어떤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그것이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한 길이 되려면 나만의 만족이나 나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나와 남이 동시에 이롭고 행복한 것이어야 한다. 나와 네가 따로가 아니기에 너만을 위해 내가 희생되어서도, 나만을 위해 네가 희생되어서도 조화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너와 내가 함께 잘 되는 Win Win(윈윈)이야말로 진정한 조화다. 사업을 하더라도 내 이익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네가 이롭고 편안할 수 있을까를 앞에 두어보자. 나를 위한 수단으로 너[고객]를 보는 게 아니라, 너를 잘되게 하고 행복하게 하려다 보니, 나의 이익과 행복이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원리로 임해보자. 

대표법사이신 여여법사님께서는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결과를 두려워한다’는 법문을 늘 강조하신다. 어떤 원인을 짓느냐에 따라 결과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기에, 바라는 결과가 있다면 원인에 집중하여 부지런히 원인을 지어보자. 복을 받기 원한다면 복을 지으라는 말씀처럼 지금 현재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그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은 없으니 미리 포기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를 때, 내가 왜 사는지 모를 때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그 일을 하는 나는 누구인지, 삶을 살아가는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나와 너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나를 중심으로 한 틀 속에서 남과의 경계와 울타리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울타리가 사라지면 온 우주는 곧 내가 된다. 어려움이 닥쳐와도 너 때문에 힘들다가 아니라 네 덕분에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언제나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의 방향을 놓치지 않게 될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금강경법문 온라인 공부문의 bowon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