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마나의 시절인연] 그날 태평호엔 하늘이 내려 앉았다
11월은 가을빛을 밀어내고 겨울 곁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단풍마저 떨어진 헐벗음으로 일찍 적멸에 드려는 것인가. 추수를 끝낸 들판은 메마른 들꽃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마저 바람에 날려 보낸다.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던 첫 해에 중국 황산을 찾아 나섰다.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시골의 논두렁 밭두렁은 원초의 자연으로 기쁨이 넘쳐흘렀다. 굽은 길을 돌아서니 아스라이 바다가 보였다. 운전하는 기사님이 바다가 아니라 태평호(太平湖)라고 알려주셨다. 호수에 안개가 드리웠다. 드넓은 호수 건너편으로 야트막한 산들이 수평선처럼 아스라이 가물거렸다. 잔잔한 물 위에는 고기잡이 조각배 한 척이 떠있었다. 나는 자동차를 멈추게 하고 산수를 바라보았다. 그림으로만 보았던 동양의 수묵화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무채색 풍경은 먹물의 흑백 농담으로, 그나마 물로 희석되어 연하게 그려졌다. 멀리 있는 산들의 형태는 분명하지 않다. 산의 뾰쪽한 봉우리가 강물 속으로 깎아내린 것 같다. 소나무로 태어나려면 황산의 소나무로 태어나라고 했던가, 기기묘묘한 자태를 뽐냈던 소나무들도 물속으로 무너져 내렸을 게다. 원근법이 더는 의미가 없었다. 먼 것과 가까운 것이 하나 되어 펼쳐졌다. 안과 밖의 분별은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태평호에 하늘이 내려앉았다. 하늘과 바다를 구분할 수 없는 광대무변한 호수 중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떠 있는 작은 배 한 척이 허허롭다. 고기잡이배는 위치를 고정화하거나 개인화하지 않고 물결 따라 흘러간다. 두 발로 디디고 선 땅의 물리적 위치와 넓이를 탐하는 인간의 욕심이 하찮게 느껴졌다.
배 안에 언뜻 사람 하나가 보이는 듯하다. 그 사람은 얼굴 내밀기를 저어하며 풍경의 주인 노릇을 하려 들지 않는 것 같다. 그물을 던지고 물고기가 잡히도록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빈 낚싯대를 드리우고 산수 속에서 노닐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세계의 비밀을 다 알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혼란한 세상에서 벗어나 산과 하늘이 삼투하는 강물 속으로 스며들어 한 폭의 자연으로 흘러가는 것인지. 견자(見者)의 마음은 이 세계보다 클 테지만 화폭 속에서는 가물가물 왜소하다.
밋밋한 수묵화는 도무지 사람의 눈길을 끄는 것이라고는 없다. 다채로운 빛들은 산수의 내면으로 잠기고, 기하학적인 선이나 감각을 자극하는 그 무엇도 없다. 견고함을 걷어내고 무거움에서 벗어난 담담한 풍경이 오히려 마음을 그윽하고 충만하게 한다. 강렬한 맛은 우리를 매혹하고 흥분시키지만 곧 물을 찾게 한다. 밍밍한 맛은 처음에는 자극적이지 않지만 차츰 변화하여 진정한 맛을 드러낸다. 무미(無味) 한 맛과 같은 풍경은 일시적인 강렬함이나 허탄함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이윽고 그 무위(無爲)의 풍경은 우리의 눈을 밝혀 자연의 안쪽으로 이끌어 간다.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차츰 열렸다. 산과 강 전체가 보였다. 태평호에 떠 있는 고깃배의 사공이 물이 되고 산이 된다. 산수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사라지고 풍경 자체가 된다. 조각배에 몸을 싣고 가뭇없이 흘러간다. 인간의 마음이 자연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 바로 법열(法悅)의 세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