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의 미디어 인 붓다] 50. 영화 〈전, 란(戰亂,Uprising)〉
밥에 평등할 때 법도 평등하다 그때도 지금도 불평등은 여전한 세상이기에 범동의 도리깨가 내리는 불이법문은 매섭다
절에 가서 본존불 앞에 닿으려면 여러 문을 지나게 된다. 그 문들은 속세에서 불국정토로 이르는 공간적 이동을 한 걸음 한 걸음 몸으로 먼저 느끼도록 이끈다. 문마다 뜻을 담은 현판이 걸려 있고, 그 문에서 넘어서야할 가르침이 형상화되어 글을 몰라도 보면서 깨닫게 한다.
여러 문을 지나 본당에 들어가는 마지막 문이 불이문(不二門)이다. 이곳을 통과해야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갈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불이문은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으며, 생과 사, 만남과 이별처럼 다르다고 여겼던 모든 것이 하나라는 불이(不二)를 깨우쳐야 비로소 부처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불이는 분별도 떠났고, 언어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절대의 경지를 상징하는데 이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전하는 경전이 〈유마경〉이다.
여러 불교경전 가운데 지양교(止揚敎) 경전으로 분류되는 〈유마경〉은 가장 독특하고 파격적인 경전으로 꼽힌다. 지양교란 외도, 소승불교, 대승불교 가리지 않고 비판하는 교리다. 〈유마경〉은 부처님의 법문을 담은 경전이 아니라 석가모니 시대에 재가신자였던 ‘비말라키르티’를 음역한 유마힐 거사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경전인 것부터가 파격인데다, 부처님의 십대제자부터 당대 이름 높은 대승의 보살까지 가리지 않고 가차 없이 비판하기에 더욱 파격적이다. 〈유마경〉의 핵심사상인 불이법은 세상의 모든 존재는 본래부터 상대와 대립을 초월하여 평등하다는 사상이다. 이 세상은 너와 나, 높고 낮음, 태어남과 죽음, 옳고 그름, 귀함과 천함, 사랑과 미움 같은 상대되고 맞서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 갈라치기를 벗어나면 부처와 중생, 번뇌와 보리, 유위와 무위, 정토와 지옥, 생사와 열반 등이 다르지 않다는 깨우침은 귀하다.
석가모니 시대나 지금이나 카스트 제도가 엄연한 인도든, 반상귀천을 따지던 조선시대든, 금수저·흙수저 나누는 지금 우리 사회든 세상은 늘 제도로서든 의식으로서든 ‘계급’을 가르고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왔다. 계급의 구별이 〈전, 란〉의 배경이 되는 조선시대에는 또 오죽했던가. 영화 〈전, 란〉은 임진왜란을 겪기 전의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전(戰)’과 ‘란(亂)’은 나뉘어 있다. 그냥 붙여서 ‘전란’ 이었으면 조선과 일본 사이 벌어진 전쟁 때문에 벌어지는 난리일 것이고, 그렇다면 그 전쟁은 임진왜란이겠거니 하겠지만, 굳이 쉼표로 나누었으니 앞의 ‘전’이 꼭 전쟁이 아니라 모든 ‘싸움’이라고 여겨도 좋을 것이고, 뒤의 ‘란’을 어지럽다는 뜻이 아니라 ‘반란’으로 새겨도 좋을 것이다.
사실 우리 역사책은 늘 임진왜란이라고 했지 조선 대 일본의 전쟁으로 부르는 일이 없었다. 왜란이고, 호란이고, 민란이고 그저 왕권을 위협하는 어지러운 사태라고 다 같은 심급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있을까? 심지어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동시에 방영되는 〈전, 란〉의 영어 제목 ‘Uprising’은 ‘반역, 폭동’이라는 뜻이다. 영화에서 다루는 싸움과 난리의 실체가 ‘왜란’ 말고 달리 있다는 뜻이다.
영화는 턱에서 머리까지 화살로 꿰뚫린 채 아직 숨이 끊이지 않은 채 ‘대동’을 말하는 정여립에서 시작한다. 그러니까 정여립의 난과 임진왜란 3년 전에 벌어진 기축옥사부터가 싸움의 시작이다. 조선시대 벌어진 정쟁 가운데 4대 사화로 꼽히는 무오·갑자·기묘·을사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낸 기축옥사에서 당시 인구 500만 명이던 조선에서 1000여 명이 처형당하거나 고문 받다가, 또는 귀양길에 죽거나 옥에 갇히거나 노비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 방방곡곡에 칼바람 피바람이 일었다.
‘천하는 공물(公物)이니 어찌 주인이 따로 있으리요’라는 천하공물론(天下公物論)과 ‘누구든 임금으로 모시고 섬길 수 있다’며 왕의 혈통이 아니더라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선진적인 사상을 가진 정여립은 신분 구별 없는 대동계를 만들었다. 대동계원들은 사람은 글만 배워도 안 되며 무술도 알아야 한다는 정여립의 뜻에 따라 매달 보름에 한 번씩 모여 글도 배우고 활쏘기, 말 타는 법, 칼과 창 쓰는 법도 배웠다. 이때 정여립 본가에서는 술, 고기와 같은 음식을 많이 준비하여 모두를 배불리 먹였다고 한다. 이런 정여립을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으로 몰려 죽게 만든 것이 영화 〈전, 란〉의 시작이고, 이 일로 벌어진 것이 기축옥사다.
이 기축옥사를 배후에서 조종한 송익필은 조선 중기 8대 문장가에 들 정도였다가 할머니가 안씨 집안 노비였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도로 천민이 되라는 판결을 받았다가 권력에 가까이 오른 자이다. 서얼이었던 송익필의 아버지가 당시 좌의정이었던 외숙부 안당과 외사촌 형제를 역모죄로 고발하면서 안씨 가문에 멸문시키고 자신은 정3품으로 벼락출세를 했었다. 그 덕에 엘리트로 잘 배우고 잘 먹고 잘 살다가 하루아침에 ‘환천’이라는 신분 몰락을 겪은 송가가 앙심을 품고 왜란과 폭동 전에 반대 당파였던 정여립을 모반으로 몰아 죽게 만든 것이 영화의 시작인 것이다.
가문 몰락의 한을 품고 보복의 기회만 노리던 송익필이 반왕조적 대동사상으로 이상사회를 꿈꾸던 정여립의 대동계를 역모로 몰아 정권 복귀를 노렸고, 그 이후 불어닥친 피바람이 왜군이 침입하도록 나라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든 시대가 배경인 것이다.
〈전, 란〉의 주인공인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노비 천영(강동원)은 영화적 허구가 아니라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실제로 살고 죽었던 인물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양인에서 노비가 된 천영은 도련님 무과를 준비하는 종려가 실수할 때마다 대신 매를 맞는 게 일이다. 맞다가 죽어 나간 애노비가 몇이나 되는 살벌한 집안에서 무골을 타고 난데다 눈도 밝고 의지도 굳은 천영은 맞아 죽지 않기 위해 종려에게 밤마다 무술을 가르친다. 그래도 안되니 면천을 약속받고 무과 대리시험장에 들어가 장원 급제 어사화까지 안겨준다. 그런 천영을 종려는 ‘동무’라고 한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약속대로 노비 증서를 돌려받는 대신 천영이 매타작 당하고 광에 갇힌 사이 왜적이 들이닥쳤고, 무신이 된 종려는 선조 피란길 호위로 집을 비우자 종려 집안 노비들은 집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다. 자기 아이가 매 맞아 죽어도 조아려야했던 족쇄인 노비문서들을 불태우고서. 선조는 백성들을 죽여서라도 살 길을 만들어내라고 종려를 닦달하고, 종려의 칼은 적군이 아니라 조선 백성을 도륙한다.
조선을 침략한 왜군 앞에서 지배층은 다 달아나고 천영은 의병이 된다. 남녀를 가리지 않는 동지로서 싸우는 의병들에는 천영같은 노비도 있고, 광대도 있고, 양반도 있고, 백정도 있고, 정규 군관도 있다.
이들은 오히려 왜란 중에 대동세상을 이루어 서로를 지켜낸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왜군에게 힘을 보탰던 ‘부왜’ 관료들이 고기 먹을 때, 저 혼자 살겠다고 내뺐던 왕이 경복궁 다시 짓겠다며 전쟁에서도 지켜낸 불상까지 중국에 팔아먹을 때, 귀순한 왜군 앞세워 면천을 바라던 의병들의 목을 칠 때, 세상은 여전히 난세다.
불이법문을 일깨우는 범동의 도리깨는 여전한 불평등을 내리치는 죽비처럼, ‘밥에 평등 할 때 법도 평등하다’는 〈유마경〉의 가르침처럼 매섭다. 지금도 불평등은 여전한 세상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