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 경주 남산에 오르다] 20. 약수곡 마애불, 불곡 마애불, 장창곡 미륵삼존불

삼화령 미륵삼존에 차 올릴 날이 올까  경주 남산 참배, 두 코스로 나눠 약수곡 마애불 놓치는 경우 많아 장창곡 미륵삼존불, 경주博 전시 ‘삼화령 미륵부처님’으로 기록돼 ‘미륵삼존부처께 공양’ 상상해봐

2024-10-15     무진 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경기 광주 빛고운절 회주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장창곡 미륵삼존불. ‘삼화령 미륵부처님’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경주 남산 불국토 참배의 길은 크게 두 코스가 있다. 서남산의 삼릉에서 시작하여 용장사지를 내려오는 참배 길과 동남산의 통일전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칠불암을 왕복하는 참배 길이 있다. 순례할 때마다 이 두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서 다니게 된다. 이때마다 ‘언제 한번은 가야 하는데’ 하며 고민하는 남산에서 가장 큰 ‘약수계곡 마애입불상’과 감실 부처님인 ‘불곡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더불어 남산 불국토만 생각하면 언제 오실까 싶어 슬프고 아쉬운 경주국립박물관의 삼화령 미륵부처님인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이 있다.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은 금오산 정상에서 바로 서쪽으로 내려오면 만나는데, 남산에서 가장 큰 불상인 약수곡 제5사지 마애입불상이다. 그래서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은 다른 말로 ‘마애대불’이라고도 한다. 앞서 말한 약수곡 석조여래좌상이 약수곡의 제4사지에 있고, 그 위에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이 있는 곳이 제5사지가 된다. 또 말하게 되는데 계곡이나 곡이나 골이거나, 문화유산의 이름을 통일했으면 좋겠다. 뭐가 그리 중해서 혼란하게 이름을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문화유산청에서 하나의 이름으로 통일하자고 하면 될 걸 싶다. 계곡이나 곡이나 골이나 선택하면 될 것을 왜 혼용하는지 모르겠다.

남산의 불국토 부처님을 참배할 때는 시간을 안배하면서 다녀야 한다. 순례하러 다닐 때는 하루 코스가 대부분이고, 1박을 기획하고 오기도 한다. 하루 코스는 거의 서남산의 삼릉에서 용장사지로 내려오는 참배 코스를 택한다. 가장 많은 불상과 불탑을 참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선호하는 곳이 동남산의 통일대전 주차장에서 칠불암을 왕복하는 참배 코스다. 칠불암을 돌아오는 동남산 참배 길은 지루함이 있어서, 열암곡에서 시작해 칠불암으로 지나가는 코스를 생각 중이다. 어찌 되었든 거의 모든 참배는 이렇게 두 코스를 중심으로 하기에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의 참배는 포기하게 된다. 혼자 마음먹고 시간 내서 참배하는 것이 아니면 놓치는 불상이 남산에서 가장 큰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이다.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은 불상의 머리가 남아있다면 높이 10m 이상의 크기였을 것이다. 그래도 불상의 머리가 남아있지 않은 높이가 8.6m로 남산에서 가장 큰 불상이다. 위아래로 긴 바위의 좌우를 30cm 이상 파내어 불상을 육중하게 새겼으며, 두 어깨를 감싸는 ‘통견의’의 촘촘한 옷 주름에 몸의 굴곡이 가려져 있다. 이것은 단순한 선의 문양이지만 힘이 있어 보이게 한다. 

양어깨에 걸친 수직의 옷 주름이 중앙에서는 U자형으로 내려오며 대조를 보이는데, 9세기 불상인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골굴사 마애여래좌상’에서 보여진다. 왼손은 손등이 보이도록 목 위 가슴에 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밑을 향한 설법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불두와 두 발은 따로 조성하여 결합하였었는데, 오른발만 남아있다. 남아있는 발만 너비 79cm가 되는 크기다. 불두가 있던 자리에는 60cm의 홈이 원형으로 남아있고, 좌우에도 귀를 받혔던 작은 홈이 있다. 참배할 때마다 불두가 올려져 있고 화려하게 채색된 마애입불상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상상해 본다.

남산의 불상 중 삼국시대인 7세기 초 조성된 오래된 불상으로 불곡 불상과 삼화령 미륵불상이 있다. 불곡은 부처 골짜기로 감실 부처님이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공식적으로 ‘경주남산불곡마애여래좌상’이라고 한다. 이 불상은 불교 문화유산의 중요한 위치에 있다. 경주 남산 불상 중 초기 불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례를 와서 참배하기에는 위치가 좀 애매하다. 도로 사정이 안 좋은 동남산 순례 코스의 외지에 있기 때문이다. 순례를 올 땐 도로에서의 시간을 계산하고 참배할 코스의 시간도 적절하게 배분해야 한다. 그러자면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순례의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무엇보다 버스를 정차할 장소가 없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동남산 순례 때마다 참으로 고민스럽게 하는 불상이다. 여유롭게 남산에 온다면 꼭 참배하길 바라는 불상이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에서 서쪽으로 오르면 1925년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 삼화령 미륵불인 ‘창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이 발견된 자리가 나온다. 두 불상은 신라시대에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북쪽으로 반월성 왕궁이 가까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낭산의 선덕여왕릉과 사천왕사지가 있다. 서쪽으로 넘어가면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가 있는 나정과 창림사 그리고 오릉이 나온다. 언뜻 보기에도 7세기 초 남산의 중요 요지 중 요지에 조성된 두 불상이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을 보면 뚝섬 출토 금동불좌상이나 부여 군수리 절터에서 출토된 납석제 불상 그리고 경주국립박물관의 인왕동 출토 불좌상이 생각난다. 뚝섬 금동불좌상과 군수리 불상은 손바닥을 배꼽에 두고 있으며, 두 어깨를 감싼 옷을 입고 앉아 있다. 특히나 부여 군수리 불상과 인왕동 출토 불좌상은 불곡 마애여래좌상처럼 가사를 깐 좌대 위에 앉아 있는데, 남산의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도 가사를 깐 좌대에 앉아 있다. 뚝섬 불상은 5세기 전반 조성된 고구려의 불상으로 보고 있으며, 부여 군수리 불상은 6세기 백제 불상이고, 인왕동 불상은 7세기 초로 보고 있다. 여기서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신라 초기 양식의 불상임을 알 수 있으며, 선덕여왕의 얼굴을 한 불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선정인을 한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바위를 타원형으로 파 감실을 만들고 조성했다. 일명 감실 부처님으로 이웃집 할머니의 친근함이 배어있어 할매 부처님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자하고 인간적인 모습의 친근한 불상이다. 

선덕왕 때 생의(生義)라는 스님이 항상 도중사(道中寺)에 거주하였다. 꿈에 스님이 그를 데리고 남산으로 올라가 풀을 묶어서 표를 하게 하고, 산의 남쪽 마을에 이르러서 말하길, “내가 이곳에 묻혀있으니 스님은 꺼내어 고개 위에 안치해주시오”라고 하였다. 꿈을 깬 후 친구와 더불어 표시해 둔 곳을 찾아 그 골짜기에 이르러 땅을 파보니 석미륵이 나오므로 삼화령(三花嶺) 위에 안치하였다. 

<삼국유사>에 소개되어 있는 내용으로, 644년 선덕여왕 13년에 생의 스님이 삼화령의 미륵불상을 찾아내고 있다.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삼화령 미륵부처님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이것은 7세기 초 삼국시대 신라의 미륵신앙을 알려준다. ‘경주 남산 정밀학술조사보고서’를 보면 삼화령 미륵불상 출토지는 창작곡 제10사지이다. 삼존불상 중 본존불상은 1924년 남산 장창곡 정상(삼화령) 부근의 무너져 있던 석실에서 발견되었으며, 동시에 보살 입상 2구가 민가에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함께 경주박물관에 옮겨져 현재까지 전시되고 있다. 

왕이 묻기를, “어디서 오시오?”라고 하니, 승려가 대답하기를, “소승은 3월 3일과 9월 9일에는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에게 차를 다려 공양하는데, 지금도 차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과인에게도 차 한 잔을 줄 수 있소?”라고 하니, 승려가 곧 차를 다려 왕에게 드렸는데, 차의 맛이 이상하고 찻잔 속에는 특이한 향이 풍겼다.

 <삼국유사>에는 8세기 중반 경덕왕과 향가인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와 안민가(安民歌) 지은 충담(忠談) 스님의 차 공양 이야기도 있다. 한국은 차를 먼저 부처님께 공양 올린 이후 마시는 문화였음을 알려준다. 이처럼 이야기가 풍부하게 남아있는 미륵부처님이 박물관이 아닌 삼화령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삼화령 고개에서 미륵부처님께 차 공양 올리며 기도하고, 둘러앉아 차 한 잔씩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명상도 하는 상상을 해본다.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의 미륵 본존불상은 높이 1.6m이며, 의자에 다리를 일자로 내리고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다. 인도나 중앙아시아의 불화나 불상에 의자에 다리를 X자로 내려 걸쳐 앉아 있으면 미륵불을 의미한다. 그런데 삼화령 미륵 본존불처럼 일자로 내려앉은 모습으로 특별함을 보여준다. 

두 협시보살은 입상으로, 협시보살의 연화대좌는 본존불의 연화대좌를 모방해서 1975년에 만든 것이다. 어린아이의 미소와 같아 아기 부처라고 불리는 두 협시보살은 불상이 이렇게 귀여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정말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포근함을 주는 미륵여래삼존상이다.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을 바라보면서 남산 불국토 삼화령에서 차 공양 올릴 날을 그려보고 또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