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법문] 멕시코 유스 프로그램 - 월정사 주지 퇴우 정념 스님
“다름 인정하고 공존하는 지혜 찾아라” 날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 나를 구하고, 친구를 구하고,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는 불교서 말하는 자비심
노벨평화상 수상자 월드서밋 사무국의 공식 초청으로 멕시코 누에보 레온주 몬테레이시에서 열리는‘제19회 노벨평화상 수상자 월드서밋 인 멕시코’에 참여한월정사 주지 퇴우 정념 스님이 멕시코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퇴우 정념 스님은 행사 일환으로 지난 9월 18일(현지시간)에 열린 유스 프로그램에서 ‘마음의 평화(peace of mind)’를 주제로 법문을 설했다. 이날 법문의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저는 한국에서 온 오대산 월정사의 퇴우 정념 스님이라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 한국의 오대산 월정사라는 곳은 깊은 산이 있고, 맑은 계곡이 흐르며 곧게 뻗은 전나무 숲길이 자리한 한국 전통의 사찰입니다. 오늘 이렇게 뜻 깊은 자리에서 20세기에 태어난 제가 21세기에 태어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갑고 기쁩니다.
여러분들과 같은 세계의 청년들을 만나는 것은 저와 같은 수행자에게는 매우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여러분들의 역할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하는 이 순간들은 여러분들 마음 속에 하나의 씨앗(원인)이 되어 ‘더 나은 세상’이라는 열매(결과)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저의 당부는, 함께 마음에 지니고 실천해 나아가야 할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속성은 부처님께서 남기신 다르마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환경이 변하고, 세상 모든 것들은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대규모 전쟁의 시대는 저물었고,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요소인 의식주는 더없이 풍부해 보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디지털 세계 안에서 우리를 매우 가깝게 연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사람들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먹고 입을 것과 살 집이 풍부한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이 인류 모두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공평하게 나누어지지는 않습니다. 세계 곳곳에 국지적 전쟁이 끊이지 않고, 전쟁을 피해 자신이 살던 나라를 떠나온 난민들은 새로이 정착한 나라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또 다른 이름의 ‘증오’를 재생산하는 기폭제가 되어버린 슬픈 현실입니다. 서로를 포용하고 존중하는 인류애의 가치는 점차 사라져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구 생태계 역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북극곰은 녹아버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며 소중한 생물들이 기후변화로 멸종되고 있습니다. 종교 선택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몇몇 나라들에서는 전통과 질서라는 명분아래 폭력의 관습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매일매일 쓰고 있는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함과 동시에 야기되는 ‘디지털 소외’의 문제입니다. 스마트 폰이 주는 일상의 편리함은 매우 크지만, 인터넷 보급이 저조한 나라들이나 전쟁 중인 국가의 경우 동일한 정보나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정보와 교육은 곧 경제적 생산능력으로 이어집니다. 여러분들이 경제인구로 활동하는 시기에 이러한 정보의 편차에 따르는 소외현상은 경제력 격차로 이어집니다. 즉, 앞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풍부해 보이는 의식주가 온 인류에게 좋은 방식으로 분배되지 못하는 사회적 구조로 연결되는 것이지요.
여기 더하여 이 모든 과정들은 나와 내 주변의 가까운 관계의 소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을 경쟁자로 의식하게 합니다. 자본주의 세계 안에서 ‘함께 공존’하기 위한 가치관은 생겨나기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나의 생존과 안녕이 다른 누군가의 패배이거나 착취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구조는 우리 모두를 이어주는 연대의식의 끈을 약하게 만듭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혜택을 누리는 여러분들 역시 포장된 이미지들과 왜곡된 정보에 노출되어, 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더불어 ‘진정한 관계’가 아닌 디지털 관계[온라인 만남]에 편향되는 관계를 맺기 쉽습니다. ‘우정’과 ‘신뢰’ 그리고 ‘협력’이라는 감정은 디지털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지요. 따라서 여러분들이 살아갈 이 지구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의 바람을 타려면, 서로 다름을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식(spirit of mutual coexistence)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것은 매우 주요한 가치입니다. 우리 모두는 연기의 질서 속에서 상생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겠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우주적 관계의 회복’은 마음의 평화를 위한 첫 번째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인간적 관계 회복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공생이 가능해진다면 날로 심각해지는 각종 갈등과 기후위기를 극복할 해결 방안을 찾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주적 관계에서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단계는 ‘나 자신과의 관계 회복’이지요. 자아의식이 굳건한 사람은 평화로운 마음을 바탕으로 나 자신의 평화를 세계로 확장시켜 나아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지구의 앞날을 지키고, 인류 공동체를 지켜 나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통한 마음의 평화를 다지는 것입니다. 불교 전통의 가르침에는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자비심은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자리이타(Benefit oneself and others, Altruistic Self-interest)’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 모이신 소중한 여러분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이 정의 내릴 수 없는 여러분 각자가 지닌 고유의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 시기는 SNS 안에 보이는 타인의 화려한 모습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의식을 가지기 쉬운 나이입니다. 수많은 상업광고들과 TV시리즈들 역시 자아의식을 위협하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소중한 자신을 포장된 이미지들과 비교하는 것은 건강한 자아상을 해칠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존중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은 친구들이나 가족 같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정의하는 내가 아닌,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언제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려는 의지와 힘은 내 주변 그리고 함께하는 삶에 대한 상생의식의 토대가 되어 줍니다. 마음의 평화는 ‘나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은 나를 구하고, 친구를 구하고,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게 해줍니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심입니다. 이러한 자비심, 곧 선한 마음만이 21세기를 이끌어 갈 여러분과 20세기의 우리 장년들이 함께 평화롭게 지구별에 공존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월정사에서는 화엄선이라는 사상을 연구하고 있는데, 화엄선 사상의 근간이 되는 화엄경이라는 경전의 입법계품에는 자비심에 대한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또한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초기의 경전인 <법구경(Dhammapada)>에는 이러한 구절이 나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안락하라.”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평화의 상생의식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마음의 속성은 홀로 방안에 우두커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 우주를 감싸고도 남을 만큼의 마음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자리합니다. 그리고 그 내면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결의식이 없는 마음의 평화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속한 나라가 평화로울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불교 전통에는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려운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기 더욱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말이지요. 살아 숨 쉬는 우리 모두에게는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친구를 구하고,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자비의 힘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소중한 몸’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디딤돌로 삼아 나를 사랑하고 지구를 사랑하는 우리(We, Human)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신과 종교적 가르침을 믿거나 피부색이 다르다 해도 괜찮습니다. 같은 집단 안에 나와 생각이 다르거나 생김새가 다른 동료가 있다 해도 함께 밥을 먹고, 업무를 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불교 등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우리는 공통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자’는 마음이 그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우리는 함께 지구별을 살기 좋게 만들어 나아갈 수 있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 인 자비심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오늘 모이신 소중한 여러분은 세상의 일부이자 전부입니다. 모두 함께 우리 자신과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는 마음의 힘을 길러 나아가기를 당부합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간직한 등불이 세상을 밝히는 커다란 등불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