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논문] 만해 문학엔 ‘대승불교사상’이 담겼다

한용운의 문학 작품에 나타난 대승사상

2024-09-13     정리 = 신중일 기자
만해 한용운 스님의 진영

만해 한용운 스님은 근현대 역사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불교계몽운동가였고, 민족의 아픔을 시로 풀어낸 시인이었다. 김형중 문학평론가는 8월 29일 ‘제9회 만해평화문학축전’에서 발표한 ‘한용운의 문학 작품에 나타난 대승사상’을 통해 만해 스님의 문학작품에 나타난 대승불교사상에 대해 조명했다. 이를 정리해 게재한다.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그동안의 만해의 연구 성과를 종합하면 만해를 세 가지 측면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독립운동가, 둘째 민족 저항시인, 셋째 계몽 사상가이다. 이 셋의 관계는 삼위일체이고 회삼귀일(會三歸一)이다.
본 논문에서는 각 시문학 장르(자유시, 시조, 한시 등)에서 발표한 대표적인 작품을 뽑아 거기에 나타난 만해의 대승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님의 침묵’과 대승사상
<님의 침묵>에서 ‘님’의 정체는 ‘부처’ ‘중생’ ‘조국’ ‘깨달음’ ‘불성’ ‘애인’ ‘자유’ ‘독립’ 등 다의적이고 복합적인 상징어이다. <님의 침묵>은 <유마경>에 나오는 ‘유마거사의 침묵’에서 유래한다. 만해가 <님의 침묵>이란 시집을 발표함으로써 당시 서구의 시를 번안하는 형식의 시 수준에 머물던 시단에 시 창작의 모범이 되었다. 

이 시에서 ‘님’은 조국이고, ‘이별’은 일본에게 빼앗긴 조국과의 이별이다. 만해는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는 불교의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순환 윤회의 진리를 근거로 제시하며 잃어버린 조국을 꼭 되찾을 것을 염원하고 있다. 

<님의 침묵>에서 님과 내가 둘이 아니고, 이별과 만남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사상적 근거는 <유마경>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이다. 

<님의 침묵> 가운데 가장 부처의 자비사상이 잘 드러난 대표시가 ‘나룻배와 인’이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나룻배와 행인’은 부처님의 자비 속에서 살면서도 부처님의 은혜를 모르고, 저버리고 배반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 날마다 스스로는 낡아가면서 그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대승 보살의 자비로운 마음을 읊은 시이다.

‘선사의 설법’에는 대승 선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선사의 설법’은 만해의 혁명적인 선 법문이다. 선은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창조적인 인식의 전환을 추구한다.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는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고통을 면할 수 있음을 서술한 것이다. ‘선사의 설법’에서는 구도자인 선사의 깨달음의 세계인 대승 선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선사가 집착의 줄을 끊으라는 원론적인 설법을 하였는데, 만해는 이 시에서 대해탈은 속박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설파하고 있다. 고통스런 현실을 회피한다고 고통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번뇌가 있어야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끝내 보리(菩提)를 얻는다.

만해 시조에 나타난 대승사상
만해의 시조는 <한용운 전집>(1978) 1권에 39수가 수록돼 있다. 그의 시조에도 깨달음의 세계를 읊은 선시가 많이 있다. 대표적인 선시가 ‘춘주’ 2수이다. 

‘춘주’는 “따사로운 봄날 대낮에 <유마경>을 읽는데 바람에 나는 꽃잎이 글자를 가렸다”로 시작한다. 처음에 붙인 제목 ‘공화란추(空華亂墜)’에서 알 수 있듯이 ‘허공을 나는 꽃(空華)’은 허공에 핀 꽃으로 본래 실체가 없는 번뇌 망상을 상징하는 선어이다. 번뇌 망상을 없애고 진리의 길에 이르는 길은 참선의 체험뿐이다. 그러니 구태여 꽃 밑의 글자를 읽을 필요가 없다는 선의 세계를 시화(詩化)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사법계)와 눈에 보이지 않은 본체의 세계(이법계)가 서로 장애가 없이 원융한 화엄의 이사무애법계를 노래한 것이다.

만해의 ‘심우장(尋牛莊)’이라는 시조가 있다. 이는 1937년 <신불교> 제9집에 발표한 시조이다.

“잃을 소 없건 만은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은 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쏘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심우장’ 초장 “잃을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는 우리의 본래 자성은 불생불멸이고 불구부정이다. 따라서 잃어버릴 것도 찾을 것도 없는 자리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소를 타고 소의 등 위에서 소를 찾듯이 마음을 가지고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찾는다. 본래마음(자성, 불성)을 찾으면 견성성불이다.

중장은 설사 마음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실체가 없는 마음을 찾아서 지닐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종장의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는 선종의 6조 혜능의 자성게(自性偈)의 뜻을 용사(用事)한 것이다. 혜능의 “본래무일물 하처염진애(本來無一物 何處染塵埃: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물들겠는가)”는 마음(一物)은 실체가 없어서 번뇌망상의 진애가 낄 수가 없으므로 닦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찾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마음의 본래자리인 불성(자성)을 읊은 것이다. 

만해 한시에 나타난 대승사상    
만해는 선시의 특성이 언어의 압축과 고도의 상징적 언어로 표현되듯이 가장 시어가 절제된 시체인 오언절구와 칠언절구가 대부분이다. 

만해의 한시(총 165수) 가운데 ‘달(月)’을 소재로 하여 읊은 시가 많다. ‘월(月)’은 45회나 나타나는 시어이다. 만해의 시에서 달은 잃어버린 조국의 꿈과 희망, 생명을 주는 의미를 지닌다. 달은 조국 광복을 상징하는 빛이요, 항상 마음속에서 광명을 발휘하는 불성이다. 관월시(觀月詩, 詠月詩)가 만해의 한시에 6수 있다.

‘월욕생’ ‘월초생’ ‘월방중’ ‘월욕락’ 4수의 연작 관월시를 짓기 전에 달을 보고 묘오(妙悟)의 경지에서 시작을 시도하는 ‘견월’과 달과 함께 하나가 되어 무아지경에서 노는 ‘완월’이 있다. 

‘월욕생(月欲生)’은 달이 막 떠오르려 할 때를 인상적으로 묘사한 시이다. 달이 뜨기 전에 뭇 별들이 먼저 나타나서 빛을 비추니 온갖 잡념과 번뇌가 사라져 울창한 숲 속의 고요와 함께 그 위에 달을 뜨려고 준비하고 있다. 

‘월초생(月初生)’은 달이 막 나올 때의 전경을 묘사한 시다. 백옥같이 깨끗한 마음의 달이 푸른 언덕 위에 나타나니, 산 속 시냇물 위에서는 황금덩이가 춤을 추며 놀고 있다. 

‘월방중(月方中)’은 달이 하늘 한복판에 떠올랐을 때의 전경을 읊은 시이다. 기구와 승구에서 달이 중천에 떠서 만국의 사람이 달을 바라보며 부처의 자비 광명에 흠뻑 젖어 환희의 기쁨을 누리는 모습을 표현하고, 전구와 결구에서는 불성이 모양이나 크기가 없어서 우주에 하늘에 꽉 차 있어서 중생들의 눈과 마음으로 인식되지 못함을 나타내고 있다.

‘월욕락(月欲落)’은 달이 지려 할 때의 전경을 읊은 시이다. <십우도>의 ‘반본환원返本還源)’의 경계와 같이 달이 처음 푸른 언덕에 떠서 차츰 중천에 이르러 마음껏 광명을 발휘하다가 마지막으로 학이 내일을 위해 나래를 접고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달도 하룻밤의 활동을 정리하는 전경을 묘사한 것이다.

만해가 달을 보고 달의 변화하는 모습을 마음이 깨달음의 과정으로 변화하는 세계를 표현한 것은 동방의 선종 선시사에서 처음 있는 창작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옥중시에 나타난 호국불교 사상
만해가 감옥에서 면회를 온 학생에게 써 준 ‘기학생(寄學生, 학생에게 부친다)’의 한시가 있다.
“보신(保身)하여 기와처럼 온전하면 삶이 치욕 되고(瓦全生爲恥)/ 옥으로 부서지면 죽음도 이름답네(玉碎死亦佳)/ 하늘 가득 가시 자르는 고통으로(滿天斬荊棘)/ 길게 한숨짓건만 하늘 달은 밝구나(長嘯月明多)”

목숨을 보전코자 기개를 굽히고 부끄러워하느니 충절을 위해 깨끗이 죽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젊은 학생에게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일제와 싸워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당송(唐宋) 대가의 시에 어깨를 견줄 수 있는 풍격을 갖춘 시이다. 온전한 기와(全瓦)처럼 사는 것보다 차라리 부서져도 옥으로 사는 것이 이름답다는 시이다. 

만해에게 선망하는 위인이 있었다. 안중근의 장한 쾌거를 읊은 ‘안해주(安海州)’와 매천 황현의 순교를 위로한 ‘황매천(黃梅泉)’이 있다.

안중근(安重根)은 해주 사람으로 만해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이다. 조선 총독부 총독 이토 히로부미를 하르빈 역에서 사살하여 조선 청년의 기개를 만천하에 진동시킨 영웅의 역사적 사건을 찬양한 시이다. 두보의 시가 위대한 것은 당시 안사의 난으로 피폐해진 민중의 처참한 모습을 시로 읊은 인간애이다. 시인은 자신이 산 시대의 아픈 사건을 시로써 기록할 의무가 있다.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여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 선비로서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책임과 수치를 자살로서 자신의 충절을 드러내 온 국민을 통분케 하였다. 만해는 이 시에서 매천의 죽음을 위로하고 국민이 그의 뜻을 따라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을 것이라고 결구(結句)하고 있다.

만해가 <님의 침묵>에서 임진왜란 때 왜장을 보듬고 산화한 논개와 계월향의 의로운 죽음을 찬양한 것도 시를 통해 국민들에게 열사와 의녀의 충절을 격동시켜 잃어버린 님을 되찾자는 다짐이다.

만해가 잃어버린 님(조국)을 찾는 길을 ‘무제(無題)’란 시조에서 “이순신 사공 삼고 을지문덕 마부 삼아 파사검(破邪劍) 높이 들고 남선북마(南船北馬)하야 볼까 아마도 님을 찾는 길은 그뿐인가 하노라”고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김형중 문학평론가 

또 ‘남아(男兒)’의 시조에서도 “사나이 되얏으니 무슨 일을 하야 볼까 밭을 팔아 책을 살까 책을 덮고 칼을 갈까 아마도 칼 차고 글을 읽는 것이 대장분가 하노라”고 조선의 백성이 가야할 이상적일 구국의 방향을 설파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사명 대사와 서산 대사의 호국 불교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