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명상, 생명을 행복하게 일궈나가는 방법”

감정 나빠지면 좋은 추억 ‘반추’를 힘든 순간, 좋았던 기억으로 대치 내 무의식 변화 주는 방법이 ‘명상’ 명상으로 편견 초기화… 안목 확장

2024-09-13     정리=김가령 기자

조계종 불교상담개발원(이사장 선업 스님, 조계종 포교원장)은 9월 1일 서울 봉은사(주지 원명 스님) 법왕루에서 ‘2024 생명살림법회’를 개최했다. 이번 법회는 문화체육관광부 ‘몸·마음·쉼 생명존중·자살예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려 조계종 포교원장 선업 스님이 법사로 나섰다. 이날 법문 내용을 정리해 게재한다. 

조계종 포교원장 선업 스님이 9월 1일 봉은사 법왕루에서 열린 ‘몸·마음·쉼 생명살림법회’에서 법문하고 있다. (사진제공=봉은사)

지금 우리는 상당히 평화로운 시기를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이 시기를 어렵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쭉 살아온 역사를 가만히 보면 단군 이래 최고로 잘 산다고 하는데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하네요. 그래도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귀한 휴일을 반납하고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은 훌륭한 불자십니다.

지금 우리 주변엔 신비한 일이 참 많습니다. 법회에 오기위해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문득 지하철을 타고자 계단을 오락가락 하는 게 신묘한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행동은 누구나 매일 경험하는 평범한 일이지만 가장 신묘한 일이더군요. ‘걷는다’는 단순한 행동으로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는다면 법회라는 자리도 만들어질 수 없고 만약 내 몸이 불편했다면 걷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무릎이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아프면 서서 걸어다니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내가 뭔가 하면서 ‘내가 지금 이러이러한 걸 하고 있구나’라고 아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우리가 뭘 하고 사는지 잘 몰라서 멍하게 산다고 합니다. 산을 보면서 멍 때리는 ‘산멍’ 물을 보면서 멍 때리는 ‘물멍’ 온갖 멍 때리는 건 지금 다 발달했어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절 보면서 멍 때리더라도 나가서 5분만 지나면 제 얼굴, 제 이야기 전부 산으로 가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렇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요즘같이 행복하고 잘 사는 때면 즐거운 이야기가 가득해서 생명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줄어들어요. 그런데 잘 사는 요즘 주변에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는 눌리는 것을 의미해요. 이것도 자신이 뭔가를 누르면 편하고 좋은데 세상의 뭔지 모르는 것에 의해 눌린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게 내가 좋아하는 걸 잘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여러분이 달리는 걸 좋아해서 마라톤 대회에 나가 42.195km를 1시간 안에 들어왔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럼 전 세계가 여러분한테 집중하고 뭇 사람이 칭찬하겠죠. 이렇게 내가 잘 하는 어떤 일을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최고라 하면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행복을 느끼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어요. 내 뜻대로 잘 안 되는 게 조금씩 쌓여 복합적으로 변화합니다.

뜻대로 안 되다보면 처음엔 기분이 조금 안 좋다 정도인데 조금씩 보태지기 시작하면 욕구불만으로 바뀝니다. 욕구불만이 자꾸 쌓이면 타인과 자신을 공격하게 됩니다. 이어서 ‘다 내가 잘못한 거지 뭐’라는 생각이 들면서 굉장히 우울해지죠. 이런 변화를 의식해서 남 탓, 자기 탓만 덜해도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여러분께 ‘반추(反芻)’하길 권하고 싶습니다. ‘반추’란 ‘반복해 추억한다’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경험했을 때, 그것을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게 잘못되면 과거라는 것이 자신의 발목을 움켜잡고 놓지 않게 되는데 꼭 나쁘지만도 않습니다. 기분이 약간 안 좋을 때 역으로 과거에 가장 기분 좋았던 일을 반복해서 떠올린다면 빠르게 기분을 환기할 수 있어요. 이런 전환이 가능한 반추는 명상법이기도 합니다.

명상법 중 내가 기분이 안 좋을 때 지금까지 겪었던 가장 기분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 대치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실 추억을 많이 떠올리는 사람을 꼰대라고 하는데, 이건 지금이 즐겁지 않아서 수시로 ‘그때 그랬지’를 꺼내는 행태를 말합니다. 그러니 만약 기분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때가 있다면 종종 즐거웠던 과거를 반추해보는 게 좋습니다.

반추와 함께 또 마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높은 산에 올라가는 게 있습니다. 산을 타다보면 중간부터 죽겠다 싶은 느낌이 들어요. 죽은 것과 비슷하지만 죽은 건 아닌 경험을 하는데 이때부터 재밌는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불현듯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라요. 너무 몸이 힘드니까 ‘살아야겠다’는 무의식이 현실로 나타나는 거죠. 힘든 게 좋은 것으로 대치됩니다. 마라톤에서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35km, 42km쯤 뛰다가 더 이상 못 뛰겠다 싶은 순간에 갑자기 근육이 쫙 이완되면서 어디서 나왔을지 모를 힘으로 더 힘차게 나아갑니다. 죽을 것 같은 순간에 생명력이 갑자기 발동하는 거죠.

너무 힘든 순간에 우리가 가진 최고의 기억, 향기가 떠오르는 순간. 우리에겐 그런 생명력이 있습니다. 세상 참 힘들다 싶다가도 무의식이 살짝 건드려지면 더 열심히 파이팅해서 살게 됩니다. 이렇게 건드려주는 것 중 최고가 명상입니다. 명상은 여러분의 마음을 살짝 건드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명상에서 중요한 게 호흡입니다. 명상은 들숨과 날숨의 조화로 만들어지는데 지역이나 사람마다 들숨과 날숨의 길이가 달라집니다. 더울수록 날숨이 길고 추울수록 들숨이 길어요. 게다가 국내와 해외의 숨 길이도 달라요. 나에게 맞는 숨 길이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명상의 포인트입니다.

요즘은 명상이 꽃 피는 시기예요. 스님들은 명상을 해라, 묻지 말고 그냥 해라 등 가르침을 받으면서 스스로 좋으니까 해왔습니다. 옛날에는 일반인 중에 명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좋아하는 사람끼리 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종단에서 명상을 주도하면서 요즘 많은 분들이 명상의 참맛을 알기 시작했어요.

명상을 시작할 때 먼저 이완하라 합니다. 많은 분들의 어깨가 대개 생각보다 훨씬 긴장돼 올라가 있습니다. 귀를 기울일수록 더더욱 긴장하게 되죠. 신경을 쓸수록 긴장하고 피로도도 올라갑니다. 박진감 넘치는 영화를 보면서 긴장감 속에 자극을 받다가 이후 푹 쉬면서 이완하면 참 시원해집니다. 그래서 긴장을 한 뒤 충분히 이완하라고 합니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세요. 두 팔에 무쇠가 든 양동이를 하나씩 들면 어떻게 되나요? 어깨가 지금보다 아래로 쑥 내려가죠. 이것이 바로 긴장하지 않은 어깨 상태라 생각하고 명상할 때마다 생각하면서 근육을 이완시키는 겁니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께서 말씀하신 명상 중 ‘무시로(無時로) 명상’이 있습니다.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명상이라서 ‘무시로 명상’입니다. 이 명상은 ‘연기성공(緣起性空)’으로 이어집니다. 여러분이 뭔가 행동이나 감정에 몰입하면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도 잊게 되죠?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라는 것은 선정삼매(禪定三昧)의 기본입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건 내가 우주 공간 어디에 어떻게 있어도 아무 상관없어지는 걸 말합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아 공간의 국소성이 사라지는 걸 공무변처(空無邊處)라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아 의식이 대상을 파악하는 기능까지 사라지는 것이 식무변처(識無邊處), 의식이 무엇을 대상화시키지 않는 것이 무소유처(無所有處). 또한 유무까지 분별하지 않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지 않음을 전제합니다.

또한 아는 것을 전부 잊는 제로베이스, 무(無)도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살이 하면서 겪은 모든 것을 리셋 시키는 공성(空性)을 거치면 앞서 말한 것들을 재밌게 이어가실 수 있어요. 또 세상이 납득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왜 필요하냐면 나의 경험과 배움이 자동센서가 돼 세상 모든 것을 파악해서 하나를 들어도 판단이 계속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피로도가 쌓여 힘들어지기 마련입니다.

한 사찰에서 자기 직업군에서 나름 성공을 거둔 분들을 대상으로 명상교실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의 직업에 오래 종사해 퇴직을 앞두거나 퇴직한 분들인데 법조인, 공무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참여자들에게 “여러분은 지금 7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판단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스님이 어떻게 생겼다, 발음이 이상하다, 옆 사람이 어떻다 등의 다른 생각을 끊어내는 사전작업이죠. 그게 안 되면 자신에게 집중하기도 어렵습니다.

고승대덕들의 법문을 들어도 만족도가 떨어지고 ‘왜 저런 말을 하지’ 싶은 것은 각자 자신만의 잣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랜 시간 자신이 만든 기준인데요, 명상을 통해 이것을 초기화 시키면 새로운 견해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제로로 돌아가면 새로운 사유의 체계 확보도 가능합니다. 흔히 내면아이라고 하는 우리 마음속에 남은 못 이룬 꿈, 응어리 등도 해소될 수 있죠. 이런 작업은 쉽지 않지만 마음 공부를 통해 조금씩 바꿔나가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스스로 마음을 개선할 수 있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임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무거울 때 절에 방문해도 좋고 스님들과 대화를 나눠도 좋습니다. 혹은 늘 우리를 기다리는 큰 부처님 앞에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됩니다.

생명을 행복하게 일궈나갈 수 있는 방법은 명상이라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전하고 싶습니다. 

김가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