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테크놀로지, 불교로 읽다] 8. 혁신적인 기술에 대하여

혁신적 변화에 불교, 정견 제시해야 군사, 의료분야 기술 발전 빨라 두 분야 윤리 책임과 무관 적용 선수행 바탕 韓불교 혁신 내재

2024-08-30     공일 스님

종교는 그 속성상 전통을 지향한다. 이러한 이유로 종교는 기존의 세계관에 위배되는 새로운 질서에 대하여 우려의 입장을 보인다. 종교계는 신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도입되는 현실에 대하여 일종의 불안감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는 보편적 기준을 검토하려는 노력이지 새로운 세계관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선수행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반도의 불교는 오히려 혁신적 모습을 보인다. 선사들의 가르침에 따라 기존의 것들을 넘어서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설봉 의존(雪峰義存) 화상은 〈선문염송〉의 786칙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가 한 자 넓으면 고경(古鏡)이 한 자 넓어져야 하고
세계가 한 장 넓으면 고경이 한 장 넓어져야만 한다네.
(世界闊一尺 古鏡闊一尺 世界闊一丈 古鏡闊一丈, H76, 585a3-5)

세계가 변화함에 따라 옛 거울(古鏡)도 새롭게 되는 것이 마땅하다. 불교의 본래면목은 전통을 맹종하는 고루함에서 벗어나 새롭게 거듭나는 일이다. 질병에 따라 합당한 약을 제시하는 응병여약(應病與藥)의 태도이며, 형편에 따라 적합한 가르침을 제시하는 방편시설(方便施設)의 자세이다. 불교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태를 목도하며 저 변화상을 꿰뚫고 정견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혁신적 기술들은 특히 두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하나는 군사 분야이다. 최첨단 무기들은 당대의 과학기술에 힘입어 윤리적 책임과 무관하게 적용되고 있다. 또 다른 분야는 의료분야이다. 현란한 생명조작 기술에 힘입어 의료계는 철학적 성찰과 무관하게 혁명적으로 비약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시대의 과학기술은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두 분야로 공간 이동하여 기묘하게 움직이고 있다. 살활(殺活) 자재의 경지는 선승들의 지혜가 드러나는 자리로 불성과 무명에 대한 공간이었다. 이 점에서 선수행의 전통은 첨단 과학기술과의 대비를 통하여 생명(生命)을 원천적으로 검토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생명은 살아 있음(生)에 대한 명령(命)이어야 하므로! 

광활한 대지(土)가 펼쳐져 있는 들판(一)에 삐죽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은 살아 있음(生)을 보여주는 것이다. 새싹이 피어나듯 생(生)이라는 글자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람(人)이 일생(一)을 통하여 고개를 조아리며 무엇인가를 빌거나 묻는 형국(叩)이 바로 명(命)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생명을 ‘삶에 대한 명령(生命)’으로 읽기보다 생명과학에 바탕을 둔 개체성으로 읽는 것에 익숙해졌다. 

코끼리를 더듬는 많은 맹인들이 혼란스럽게 말들을 하지만
옛 거울 앞에 서면 그 차이는 분명히 드러난다네
(摸象衆盲徒亂說 當臺古鑑見?殊, 〈선문염송〉 H76, 566b17-18, 海印信)

공일 스님/봉은사 포교국장

옛 거울 앞에 서서 삶에 대한 명령에 따라 법의 성품을 일깨워야 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하늘의 명령을 따르는 천명(天命)과 본성을 따르는 솔성(率性)의 가르침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