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인 붓다] 46. 안세영과 영화〈국가대표〉

국가대표는 ‘콩쥐’가 아니다  지키고 싶은 사회적 약자 청년들의 도전기 그려내 국가 승인 없이 운동할 수 없는 건 민주국가 아냐  ‘어리다’는 이유로 강짜 놓는 것은 관습 아닌 ‘악습’

2024-08-23     이안 영화평론가
영화 〈국가대표〉 한 장면

어릴 때는 절에 갈 때는 좀 무서웠다. 천왕문을 지나야했기 때문이다. 악기를 들고 있거나 창, 칼을 들고 눈 부리부리하게 뜬 천왕들 아래 발에 깔려 벌을 받고 있는 마귀들과 죄인들처럼 나도 벌을 받게 될까봐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아이 수준에서도 뭐가 잘못인지는 알고,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안다. 없는 걸 탐내기도 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이따금 거짓말도 하고, 다투기도 한다. 그런 잘못 하나하나가 다 어른에게 밝혀져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는 건 아니고, 혼자 슬쩍 저지르고 감춰둔 채로 지나가게 되기도 했다. 그게 사천왕들 부릅뜬 눈에 걸려 벌을 받게 되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천왕문을 지나고 나면 저절로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곤 했다.

많은 옛이야기에서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아주 무시무시한 벌을 받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곤 했던 것과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가령 서양 전래동화 ‘신데렐라’나 우리 전래동화 ‘콩쥐팥쥐전’에서 신데렐라와 콩쥐를 괴롭혔던 의붓어미와 자매들이 받은 벌은 사천왕들 발에 깔린 마귀와 악인들이 받는 벌 못지않게 잔혹하다.

신데렐라에게 자기네 청소·빨래를 다 시키며 불기운 하나 없는 다락방에서 떨며 지내게 만든 의붓 언니들은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할 때 구경하러 나섰다가 새에게 눈을 쪼여 평생 장님으로 살다가 죽게 된다. 콩쥐에게 나무 호미로 자갈밭을 매라고 하고,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라고 하며 온갖 허드렛일 다 시키던 팥쥐 어멈은 콩쥐가 잘난 벼슬아치에게 사랑받아 결혼하게 되자 죽여버린다. 그러고는 친딸 팥쥐를 콩쥐 행세 시켜 대신 감사에게 보냈다가 들켜 팥쥐 살점으로 담은 젓갈을 먹고 놀라 죽는다.

이렇듯 아주 옛날부터 동양이고 서양이고 청소년에게 허드렛일 시키고 괴롭히면 안 된다고, 의붓자식이라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부리면 벌을 크게 받으리라고 아주 무시무시하게 가르쳐왔다. 이것이 관습이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서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대표팀 막내로서 선배들 청소 빨래에 라켓 줄갈이까지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왔고, 그걸 바로 잡아달라고 청했다가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심하게 다친 상태에서도 그런 일이 계속 되어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신데렐라나 콩쥐처럼 그런 어려움을 밝혀줄 존재조차 하나 없이 7년을 버텨 금메달을 따고서야 이런 일을 바로 잡아줄 어른이 좀 나서주시면 좋겠다고, 국가대표가 된 이래 운동과 경기 말고 다른 상황들 때문에 정말 힘들었노라고 스스로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런데도 협회 어른들은 선배들 허드렛일 시켜 먹는 것이 관습이라고 핑계를 댄다. 그리고 비인기종목인 배드민턴에서 개인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며 국가대표가 된 이상 무조건 협회의 명령에 복종하라고 으름장을 놓아왔다는 것이다.

비인기종목인 스키점프를 다룬 〈국가대표〉(2009년, 감독 김용화)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소년이 청년이 되어 돌아와 낳아준 엄마를 찾으면서 시작된다. 돌아온 청년의 미국 이름은 밥, 한국 이름은 차헌태(하정우). 밥은 엄마를 찾기 위해 가족찾기 프로그램에 출연하지만, 정작 밥을 찾는 이는 엄마가 아니라 아직 제대로 모양새를 갖추지도 못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방코치(성동일)다.

방코치는 낯선 종목을 지도할 코치로서도, 국가대표팀이라는 이름값 큰 조직을 책임지고 운영할 행정가로서도, 심지어 자기 가족을 책임질 아버지로서도 제대로 꾸려나갈 주변이 안되어 보이는 인물이지만 밥에게는 그나마 엄마를 찾을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밥 말고도 방코치가 국가대표팀에 끌어모으는 선수들은, 아니 방코치의 꼬임에 넘어가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신세처량한 젊은이들이다.

고교 시절 나름 앞길 창창한 스키 선수였으나 약물 복용으로 메달을 박탈당하고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껄렁대며 지내는 흥철(김동욱), 고깃집 아들로 숯불붙이고 음식 나르는 사이 종업원 조선족 아가씨와 정분이 난 재복(최재환), 생활력없는 할머니와 모자란 동생을 책임지느라 고단한 삶에 찌든 칠구(김지석), 해맑게 웃는 것 말고는 제 앞가림하기에 한참 모자라는 칠구 동생 봉구(이재응)가 방코치의 희망고문에 넘어가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을 꾸린다.

올림픽 메달만 따면 나라에서 아파트를 내어줄 터이니 엄마를 찾아 함께 살 수 있고, 군대도 면제가 되어 임신한 애인이나 생활력 없는 할머니를 두고 떠나지 않아도 될 터이며, 방코치의 딸처럼 어여쁜 아가씨가 애인도 되어줄 거란다. 그래서 이 청년들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스키점프라는 스포츠에 여건조차 변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을 던진다. 

비인기 종목, 그것도 아직까지는 국내에 있지도 않았던 새로운 종목, 그저 동계올림픽을 한국에 유치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명목상 필요한 종목인 스키점프는 국가대표팀 각자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족 찾기, 지키기, 만들기 프로젝트다.

훈련시설도 재정지원도 변변치 않은 국가대표팀이지만 목표가 절실한 만큼 노력도 대단하다. 그래서 흘린 땀에 행운이 보태져 바라던 올림픽 출전자격을 따냈건만 막상 국가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국가가 원했던 것은 선수들 각자의 간절한 꿈을 이루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동계올림픽 유치였기에 그 대의가 무산되는 순간 올림픽 출전자격을 따낸 국가대표팀이고 뭐고 간에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국가대표〉는 사회적 약자인 청년들로 구성된 국가대표팀의 도전기를 통해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많은 영화가 국가라는 상징과 만났을 때 쥐어짜내기 쉬운 애국주의나 민족주의가 아니라 ‘자유’가 국가라는 실체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를 보여준다. 함께 살아야 마땅한 가족이 흩어져 살도록 만드는 나라, 하고자 하는 운동을 제 아무리 열심히 해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더라도 ‘국가’의 승인 없이는 운동을 계속하기는커녕 삶을 꾸려나가는 것조차 어렵도록 하는 나라는 자유로운 민주국가가 아니다.

아찔한 도약대에 온몸을 던지기까지의 고난과 두려움을 겪어내고야 누릴 수 있는 것이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국가대표〉는 국가가 승인했을 때야 인정받는 것이 국가대표가 아니라, 아무리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더라도 우리들 각자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 애쓸 때 당당한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자유의 권리를 일깨운다.

영화 〈국가대표〉 이후 동계올림픽도 치렀고, 이제 어지간한 운동에서 국가는 지원하고 협회는 보살피며 운동하는 청년들의 자유가 보장되는 줄 알았다. 메달을 따든 못 따든 열심히 노력하고 즐겁게 참여하는 것이 스포츠인 시대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배드민턴계에서는 협회가 팥쥐 어멈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안세영 선수가 중3 이후 7년, 지금 22살이면 살아온 세월의 1/3을 남의 허드렛일을 하며 지내왔다는 것이다. 어리면 외려 살펴주고 일도 대신 맡아주는 것이 어른의 도리다. 어리다고 강짜를 부리는 것은 동서고금 ‘관습’이 아니라 ‘악습’이다. 

자비로운 미소를 띤 불상 모신 법당에 가기 전에 사천왕상을 지나며 악업을 짓지 말도록 한 깊은 뜻을 새기며, 누구든 팥쥐 어멈이나 신데렐라 의붓 언니들처럼 벌 받기 전에 그런 악습이 바로 잡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