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 경주 남산에 오르다] 17. 경주 남산과 케이블카

경주 남산 케이블카, 이젠 생각해봅시다  “제가 올라갈 수 있을까요” 한숨 남산 순례, 노령 신도에겐 버거워 케이블카, 계획된 곳에 한정 설치 교통약자 문화유산 향유 증진 기대

2024-08-23     무진 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경기 광주 빛고운절 회주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통일신라 8세기 중엽에 조성됐다.

불편한 사람들과 장애인도 불국정토에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3년 4월 중순이었다. 1박 2일 남산 순례길 경기도 광주에서 출발하여 경주에 도착 점심 공양을 하였다. 이후 오후 1시쯤 ‘서남산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삼릉계곡 정상 경치 좋은 바둑 바위에서 쉬는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우박을 뿌리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 만 한 우박이 떨어지는데, 태어나 처음 맞아보는 큼지막한 우박이었다. 

삼릉계곡 정상인 바둑 바위에서 금오봉 정상으로 가면 바로 밑에 비포장 소방도로가 있다. 바둑 바위에서 금오봉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다.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갈 수도 없고 금오봉까지만 가면 비포장 소방도로를 만난다. 소방도로는 ‘동남산탐방지원센터’까지 이어져 있다. 거기까지 무조건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무릎이 안 좋거나 나이가 있으신 신도들은 산이 좀 험해서 동참을 안하게 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무조건 한 줄로 서서 비포장 소방도로까지 한 30분 정도 쉬지 않고 걸어갑니다.” 말을 하고 걷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걸어 금오봉 밑 비포장 소방도로에 도착하니 우박도 멈추기 시작했다. 안도감에 웃으며 ‘부처님께서 복덕을 우박으로 내려주셨나 봅니다’라는 말은 했지만, 누가 다칠까 봐 걱정되고 긴장된 시간이었다. 길도 미끄럽고 옷도 젖고 힘들기도 해서 계획된 용장사지 방향이 아닌 ‘동남산탐방지원센터’ 쪽으로 버스를 부르고 내려왔다. 내려와서 한숨 돌리고 봤더니 경주 다른 지역에는 비 한 방울 우박 하나 내리지 않았다. 남산 정상에서 30분간 우리에게만 우박이 내렸다. 참으로 신비한 경험이었다.

내려오면서 남산에서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케이블카나 리프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산에 케이블카가 있다면 위험한 상황에서나 다리가 불편한 분들이나 장애인분들이 요긴하게 사용할 건데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올해 6월 중앙승가대 교수 자현 스님(월정사 수행원장)은 중국 성지순례를 어떻게 다닐까 궁금해서 열하 피서산장에 가는 ‘쏘댕기기’에 참가했다. ‘쏘댕기기’는 자현 스님이 만든 순례 모임이다. 국내 순례에는 몇백 명이 참가하고, 외국 순례에도 100여명이 동참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배울 것이 있겠구나 싶었다. 열하의 호텔에서 하루 묵고 아침 조식을 하는데 멋진 쌍탑이 보였다. 우리나라 마이산 같이 솟아난 두 개의 바위산 정상에 탑이 하나씩 있어서 쌍탑이라고 한다. 산 위에 두 바위산이 솟아 있고, 그 위에 벽돌로 전탑을 만들어 세운 것이다. 우리나라는 통일신라시대 안동 지역에 전탑을 많이 만들었는데, 사람이 오를 길 없는 깎아지른 사방의 절벽 위에 어떻게 탑을 세웠을까 감탄사만 나왔다.

쌍탑에 가려면 리프트를 탄다고 한다. 나는 태어나서 그때까지 리프트를 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20대 중반의 기억 때문이다. 대둔산 케이블카를 처음 탔을 때 서서 정신을 잃었었다. 얼굴이 하얀 나를 보고 함께했던 친구들이 놀라 했고, 도착 후에 정신이 들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웬만하면 높은 곳은 가지 말라고 했다. 이때부터 의도적으로 케이블카를 타지 않았다. 특히나 리프트는 탈 일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리프트가 스키장에 거의 다 있는데, 스키장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까지 리프트를 타본 적이 없는 것은 당연한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쌍탑을 오르는데 리프트를 탄다는 것이다. 

케이블카는 눈을 감고 어찌 타보겠는데 리프트라니. 100여명의 순례자가 함께하는 자리에서 리프트를 못 타겠다는 말은 안 나왔다. ‘그래. 자존심이 있지. 눈감고 타보자.’ 쌍탑은 10분 정도 리프트를 타고 내린다. 눈을 감고서 어찌어찌 리프트를 탔다. 그런데 아하 이런. 다음 날 엄지손가락을 세워놓은 것 같은 ‘경추봉’이라는 봉우리를 리프트를 20분 넘게 타고 오른다는 거. 왕복 40분이다. ‘그래 이번 기회에 고소공포증을 이겨내자.’ 명상에 든 것처럼 마음을 다잡고 눈을 뜨고 주위를 보면서 오르고 내렸다. 떨림은 좀 있었다. 리프트를 타고 생전 처음 높은 곳에서 밑을 바라보며 펼쳐진 세상을 보았다. 지금까지 하늘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못 보다가 이제야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쑥스러운 나만의 도전의 시간이었다. 

열하 순례 첫날에도 만리장성을 갔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왔었다. 중국은 높은 곳에 있는 문화유산을 케이블카나 리프트를 만들어서 접근을 편리하게 해놓은 것이다. ‘경추봉’을 오르고 내려오면서 갑자기 ‘아’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문화유산이 있는 산에도 도로나 등산로보다 리프트나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이 환경 훼손이 덜한 것 아닌가 하는.

남산 순례를 신도들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내가 올라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다. 남산 불교 문화유산 참배의 대표적 순례길인 서남산 삼릉에서 시작하여 용장사지로 내려오는 코스는 넉넉잡고 6시간 내외가 걸린다. 동남산의 칠불암 코스도 그렇고 남산의 순례 코스는 경사가 급한 지역들이 많다. 그렇기에 무릎이 아프거나 연세가 든 분들은 힘에 겨운 것이 사실이다. 열암곡 누워계신 부처님이 계신 마애불상을 참배하는 코스도 무릎이 안 좋은 분들은 힘들어하는 것이 마찬가지다. 어느 코스건 무릎이 아프면 가보고 싶어도 못 가보는 것이 남산 순례길의 변함없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불교 문화유산 탐방과 참배의 순례길에는 케이블카나 리프트를 설치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케이블카나 리프트를 남산에 설치하면 좋겠다는 생각 중에 이런 생각이 더해졌다. 환경단체에서는 케이블카 설치가 환경훼손이라서 반대한다. 그런데 케이블카나 리프트는 산악이 많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환경보존에 더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마다 무분별하게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면 환경 훼손을 불러올 것은 뻔한 결론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설치가 아닌 계획 하에 필요한 곳에 설치한다면 노령인구가 많아진 현실에서 필요한 것 아닐까. 

남산 금오봉 정상 어딘가에 케이블카나 리프트로 설치된다면 몸이 불편하여 남산 순례를 포기했던 사람들도 순례할 수 있다. 남산 금오봉 정상길은 급경사가 없는 완만한 길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금오봉에서 삼릉계곡 쪽 바둑 바위를 가다 보면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멀리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금오봉에서 금오정을 지나 부흥사 가기 전에 남산을 기단으로 하는 멋진 풍경의 포석곡 제6사지 오층석탑(늠비봉 오층석탑)도 참배가 가능하다. 금오봉에서 서쪽 약수곡 밑에 있는 남산에서 제일 큰 ‘약수계곡 마애입불상’도 있다. 서남산 순례 코스인 용장사지에는 너무나 멋진 ‘용장사곡 삼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 그리고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몸이 불편한 분들도 정상까지만 오를 수 있다면 다 순례하고 참배할 수 있는 것이다.

서남산 순례를 마무리하는 용장사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역사가 깊은 사찰이다. 조선시대에는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금오신화’를 쓴 사찰이기도 하다. ‘금오신화’의 ‘금오’는 남산 금오봉 용장사에서 쓴 ‘금오신화’라는 의미다. 용장사는 일제강점기 용장(茸長)의 이름이 쓰여있는 기와가 발견되어 용장사의 터라는 것이 확인된 법상종 사찰이다. 법상종은 유식종이라고도 하며 미륵불의 정토 신앙을 믿는 종파다. 용장사는 출토된 유물로 보아 8세기 중엽인 700년 중반에 대현(大賢)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법상종의 개조인 대현이 용장사에서 ‘미륵석조장육상’의 둘레를 돌면서 기도를 하면 불상이 대현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고 한다. ‘미륵석조장육상’은 지금의 불두가 사라진 둥근 연화문 좌대 위의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대현의 이야기는 이어서 의미심장한 내용이 대현의 법상종과 법해의 화엄종 대결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754년경 신라 경덕왕(742~765)이 가뭄이 들자 용장사의 대현을 궁궐에 초대하여 기도하게 하였다. 이때 대현은 마른 궁궐의 우물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는 신통을 보인다. 다음 해에 경덕왕은 화엄종의 고승 법해를 황룡사에 초청하여 〈화엄경〉을 강론하게 하였다. 왕은 이 자리에서 대현의 우물에서 물이 솟은 이야기를 하면서 법해의 법력은 어떠한지 묻는다. 그러자 법해는 대현의 일은 별거 아니라면서 동해를 움직여 감은사(感恩寺)의 불전 앞까지 바닷물로 잠기게 한다. 이러한 일을 본 경덕왕은 법해를 공경하였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경덕왕대인 8세기 중반 화엄종이 법상종보다 강성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설화로 보인다. 또한 한국 불교 역사에서 8세기 중반이 되면 전국적으로 화엄종 사찰이 창건되기 시작하는 현상을 설명해준다. 668년 백제와 고구려 멸망과 함께 이 지역의 사찰은 폐허가 된다. 이후 100여 년이 지난 8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신라 땅 이외의 백제와 고구려 지역에 화엄종을 중심으로 사찰이 창건되는 것이다.

※ 해당 원고 중 케이블카 설치 관련 내용에 대해 편집자와 필자가 장시간 논의를 거쳤으나 의견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필자의 요청에 따라 내용 수정 없이 교열 원고를 게재합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