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 경주 남산에 오르다] 16.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남산 자연과 조화 이룬 마애부처님  삼릉계곡 오르막 따라 오르면 바위 위 새겨진 6m 불상 만나 선각, 양각 조화시킨 양식 눈길 출입 자유롭지 않아 참배 어려움 불교문화유산 예경이 우선돼야 

2024-08-09     무진 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경기 광주 빛고운절 회주
경주 남산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필자가 2015년에 촬영했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은 2012년 스님들이 받는 연수 교육으로 경주 남산에 갔을 때 뵌 것이 처음이다. 이때 안내와 해설을 해주던 남산 연구자 선생님이 접근금지 구역에 있는 마애불상인데, 스님들이 연수 교육을 하는 것이기에 들어온 것이라고 했었다. 접근금지인 이유는 마애불상의 바위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상 부근의 마애석가여래좌상과 부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기가 막히다’는 표현이 전부일 정도로 멋진 자리에 있는 불상이다. 그렇기에 2023년에는 신도들과 남산 순례를 갈 때부터 참배 신청을 하려 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과 경주 남산 사무실 등 여러 곳에 전화 걸었는데, 모두 금지구역이라서 참배를 할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이후에도 신도들에게 꼭 참배시켜드리고 싶어서 국가유산청에도 전화를 걸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까지 혹시나 전화를 걸어 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삼릉계곡길 정상 바둑바위에서 금오봉 정상으로 가다 보면 멀리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볼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모두 그곳에서 ‘와 멋지다’란 감탄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뵙는 전부였다.

올해 봄 신도들과 순례를 할 때 일이다.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을 지나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좀 긴 오르막의 산행을 해야 한다. 힘들게 걷다 어디선가 염불 소리가 들려오면 상선암에 다 온 것이다. 상선암은 정확한 시기는 잘 모르겠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법당을 지은 암자다. 나는 개인적으로 걱정과 안타까움이 큰 암자로, 지붕은 함석 기와를 올렸고 법당은 작고 초라하다.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일반 사람들은 경주 남산의 사찰 기준을 경주 남산의 품격에 비해 초라한 상선암을 보면서 세울까 싶기 때문이다. 조계종 사찰이면 불사 좀 하라고 항의라도 하겠는데 종단 소속이 어딘지 모르겠다. 

상선암 옆 돌아가는 길가에 옷 주름이 새겨진 마애선각보살상이 깨져 엎어져 있다. 세우면 6m는 되는 보살상인데, 길가에 방치되고 있다. 어찌 됐건 이때 일이다. 신도들과 순례를 하면서 힘들게 상선암에 오르고 부처님오신날 전이라 법당에 들러서 참배하고 등도 올리고 있었다. 신도들과 이야기 나누던 상선암의 보살님이 웃으면서 말을 해주는 것이다. “스님, 신도들과 마애불상 참배하고 가세요. 옆으로 돌아서 들어가시면 돼요.” 

관리자가 누군지 모르고 법적으로 어떤지도 모르지만, 신도들과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삼배와 반야심경 독송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위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면 보수를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개인적으로 보기에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참배할 수 있도록 마애불 앞 공간을 다시 잘 정돈하면 될 것 같았다. 떨어질 바위가 걱정이라면 마애불상과 거리를 좀 더 물려서 참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면 될 일이다. 

올해 7월 중순 공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연수교육을 받을 때였다. 한 전문가가 석굴암 3D 입체영상 구현에 관한 설명과 더불어 고승과의 만남에 관한 말을 하였다. 불교문화유산을 3D 입체영상으로 구현해서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설명과 더불어서 옛 고승의 모습을 구현해서 만나게 한다는 구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는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언제나 강조하는 것인데 불교문화유산은 관람이 먼저가 아니라 참배가 먼저라는 것이다. 고승은 더더욱 그렇다. 성보를 3D로 구현하는 것은 전문 연구자의 연구 자료로 가치가 있다. 

사진 자료보다는 3D의 입체자료가 연구하기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불교문화유산에서 일반사람들에게 보기 쉽게 또는 접근이 쉽게 하는 목적의 3D 형상 구현은 큰 의미가 없다. 불교문화유산은 직접 성보가 있는 장소에 방문하는 순례와 참배의 의미가 큰 것이다. 

불교문화유산인 성보는 직접 만나는 순례와 참배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삼릉곡 석조여래좌상이 접근 금지되어있는 것도 그렇고, 열암곡 마애불상이 세워지지 않는 이유도 성보의 가치에 관하여 관람을 위한 보존의 문화유산으로 접근하는 시선 때문일 것이다. 열암곡 마애불상의 입불을 반대하는 주장의 핵심은 ‘지금 있는 그대로가 역사’라는 주장이며, ‘원형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복원은 문화유산 파괴’라는 주장이다. 그대로 놔두고 관람하면 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무너지고 폐허가 된 지금의 모습도 잘 보존해서 후대의 자손에게 보여주고 물려줄 역사라는 점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찬란한 불교 문화유산을 묻어두고 참배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하는 오류일 수 있다. 무엇보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과 열암곡 마애석불입상은 불교 성보 문화재로 보존이라는 가치보다 참배와 순례의 가치가 앞선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과 마찬가지로 폐사지의 보존이란 이름의 방치가 있다. 폐사지의 보존이란 의미는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존이란 이름의 방치일 수 있다. 한국의 대다수 불교 폐사지는 복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장 유명한 폐사지는 경주 황룡사지가 대표적이다. 황룡사는 643년 한국 불교의 틀을 세운 자장(慈藏, 590∼658년)율사가 선덕여왕에게 건의하여 세운 80m 높이의 목탑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 황룡사의 9층 목탑을 모른다면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일 것이다. 황룡사의 웅장한 금당과 장육불상과 9층 목탑은 1238년 몽골의 침략으로 불에 타서 사라진다. 

황룡사의 원래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는 모형은 황룡사 역사문화관에 만들어져 있다. 지금까지 황룡사에 관한 연구는 ‘황룡사연구총서’가 2022년 23권이 발간되었을 정도로 충분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광활한 황룡사 폐사지에는 옛 석축만 남아있다. 전문가의 시선으로는 황룡사 터에 가면 옛 모습이 그려질지 모르지만, 대다수 일반인은 그저 아무것도 없는 넓은 공간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기에 황룡사와 같은 폐사지는 순례객의 발길조차 닫지 않는 방치된 불교 문화유산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황룡사지 바로 위 분황사를 보면 알 수 있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에는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황룡사지에 가려면 역사문화관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는데 언제나 변함없이 방문객 없이 텅 빈 상태이다. 특히나 황룡사 주차장은 무료인데 분황사는 참배객의 버스나 자동차로 가득 차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분황사는 불교 성보인 불상과 불탑이 순례객의 참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룡사지는 불교 성보인 참배의 대상이 없기에 순례객의 발길을 끌지 못하는 것이다. 

황룡사 구층목탑이 복원 재현되어 있거나 금당의 불상이 복원 재현되어 존재한다면 지금처럼 황량하지 않을 것이다. 황룡사는 반대의 목소리가 커서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황룡사의 복원을 반대하는 이유의 근거는 원형을 정확하게 모르기에 복원을 빙자한 파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경제력과 기술력과 학문적 연구의 성과는 황룡사의 복원과 재현에 충분하다. 복원과 재현은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최선의 합리적 추정으로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최선의 추정이란 타임머신이나 설계 도면이 없는 한 사실적 모습을 명확하게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또한 폐사지는 그 모습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폐사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폐사지의 가치보다 복원했을 때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지금 한국에는 80m 높이의 목탑이 없으며 황룡사에 버금갈 전각의 사찰이 없기 때문이다. 복원된 황룡사는 한국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사찰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 보다 불자에게는 순례와 참배의 대상이 되어줄 것이기에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또한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지만, 불교 문화유산은 성보의 가치가 앞서는 참배와 순례의 대상이어야 한다. 

서남산 삼릉계곡 가장 높은 곳에서는 중생을 굽어보는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다. 거대한 바위에 높이 6m의 부처님 몸을 선각으로 새겼으며, 부처님 얼굴은 입체적으로 조각하였다. 몸은 남산의 바위에 스며있는 자연과 하나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얼굴은 양각으로 섬세하게 조각하여 사바세계에 오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상징하나 싶은 마음이 든다.

부처님 눈은 반쯤 감았으며 이목구비는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오른손은 가슴 위에 두고 왼손은 가부좌 튼 다리 위에 놓고 있는 선정인의 자세다. 부처님이 앉아 계신 대좌는 위로 핀 연꽃인 앙련의 연화대좌이다. 조각의 완성도가 문제가 아니라 남산이란 자연과의 조화로 부처님을 모신 마애석가여래좌상이다. 이러한 선각과 양각을 조화시킨 양식은 고려시대에 유행하는 거대한 마애불상의 조성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