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의 안심뜰] 삶의 뿌리를 내려야 잘 산다

15. 부처님께 은혜 갚는 삶 인생의 고난은 뿌리 점검하는 기회 불자 뿌리는 부처님 법 실천에 있어

2024-07-26     김영애 문사수법회 법사
김영애 문사수법회 법사 

필자는 어려서부터 엄마 따라 절에 다니길 좋아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불교동아리에 들어갔다.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두 동아리가 방 하나를 같이 사용했는데, 워킹테이블에 의자를 놓고 둘러앉아 법회를 모셨다. ‘불교동아리이면 최소한 절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에, 2학년이 되었을 때 회장을 맡으며 동아리방을 법당으로 꾸몄다. 

여학교였던 지라 옆학교 법우들의 도움을 받아 시장에서 스티로폼과 장판을 짊어지고 와서 바닥을 깔았다. 인근 절의 스님께 “저희 동아리방에 부처님을 모시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불단과 불상을 마련해주시고 직접 점안식도 모셔주셨다. 장판 위에서 처음 절을 올리던 그때의 감격이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소박하지만, 기쁘고 행복했던 인생의 첫 불사가 아니었나 싶다. 아침이면 동아리방에서 부처님께 108배를 올리고 수업에 들어갔다. 매주 법회를 알리는 대자보를 교내 곳곳에 붙이고, 예불을 드리고 법회 모시는 일이 즐거웠다. 시간이 날 적마다 동아리방(법당) 노트에 이렇게 적곤 했다. “지금은 전공 공부에 매진하느라 불교 공부를 제대로 못하지만, 사회에 나가면 꼭 부처님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곳에 찾아가 불법을 공부하고 싶습니다”라고.  

그 원(願)이 성취되어 사회에 나오자마자 법회를 만났다. 건물 벽에 청 테이프로 붙어 있던 창립법회 전단지가 1주일이 지났음에도 떼어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 있던 덕분에 법회를 찾아갈 수 있었다. ‘문사수법회 창립법회, 회주 한탑 스님’이라고 매직으로 쓰여진 전단지 글자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고, 올해 ‘문사수 대중법회 개원 30주년’을 맞아 지난 14일에 담양에 있는 수련도량 정진원 정토사에서 기념법회를 봉행했다. 

삶과 법회는 따로가 아니어서, 매주 법회를 통해 법문 들으며 신앙생활을 해왔다. 부처님법 상속의 원력으로 문사수법회에서 진행된 인재불사 과정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눈이 맞아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렸다. 신혼여행으로 떠난 태국에서 첫날밤에 부부는 ‘정진하고 공양하고 회향하는 삶’을 약속하며 부처님법을 널리 펼치는 법회에 대한 원을 세웠다. 각자 고건축과 조경을 전공하여 현재 문화재기술자로도 일을 하고 있다. 

몇 년 전에 나무만 심으면 다 죽어 나가는 구석기 유적지 현장 일을 맡은 적이 있었다. ‘건강하고 좋은 나무들이 들어와 죽어 나간다면 이건 뿌리의 문제겠구나’ 하는 판단에 토양을 점검해보니 역시나 배수가 되지 않았다. 대대적인 설계변경을 통해 배수시설을 보강하고 나무를 심었더니 지금까지 잘 살아있어 보람으로 남는 곳이다. 그만큼 뿌리가 중요하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뿌리가 땅속에 잘 내려지면 줄기는 자연히 잘 뻗고, 가지와 잎과 꽃도 어여삐 피어, 열매가 열리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뿌리가 튼튼하다면 꽃과 열매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생에서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뿌리이지, 겉으로 보이는 꽃과 열매가 아니다. 그런데 뿌리 상태는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다. 

삶의 뿌리가 튼튼한지는 어려움과 난관에 맞닥뜨릴 때 비로소 알게 된다. 보이는 현상에 휘둘려 지옥고를 헤매는지, 아니면 나의 아만심을 꺾어주는 공부의 기회로 삼는지 스스로를 보면 안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날 때 우리 삶의 뿌리가 튼튼함을 알 수 있듯이, 인생의 세찬 바람인 고난과 역경은 뿌리를 점검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불자 삶의 뿌리는 마음의 중심에 부처님을 모시고 늘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실천하는 삶이 아닐까 한다. 어려움에 처할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가 아니라, 신심을 돈독하게 하고 하심하게 해주시려는 부처님의 자비방편으로 받아들일 때 뿌리는 더욱 튼튼하게 내려질 것이다.

법회를 처음 찾아간 날 받아온 작은 책자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라’는 천둥 같은 법문을 들으며 앞으로 공부할 곳이 이곳임을 직감했다. 문사수법회와 함께해온 30년의 소중한 삶을 돌아볼 때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삶의 뿌리와도 같은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은 것이 가장 감사하다. 

재작년에 열반하신 한탑 큰스님으로부터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말씀을 들은 것으로 평생 갚아도 모자랄 은혜를 입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열심히만 살다 갈 뻔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나의 진짜 생명이 육신이 아니라 영원하고 무한한 부처님생명임을 알려주신 은혜가 너무도 크다. 그리고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천지자연과 모든 생명 덕분에 ‘살려지는’ 것이라는 여여 법사님의 법문은 왜 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시원한 답을 주셨다.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살려지는 거라고 잘 가르쳐주시니 배운 바대로 그 살려짐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오늘도 예경하고 공양 올리고 정진하며 살아갈 뿐이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