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의 깨달음의 노래] 7. ‘詩佛’이 바라본 삼라만상

푸른 이끼는 중생계, 석양은 자비광명 상징 왕유, 이끼서 생명력 있는 중생 모습을 봤다

2024-07-05     김형중 문화평론가

사슴 울타리(鹿柴)

텅 빈 산 사람은 보이지 않고(空山不見人)
아득히 들려오는 두런거리는 사람 소리 뿐(但聞人語響)
보라 석양빛이 숲 속 깊숙이 들어와(返景入深林)
다시금 푸른 이끼 위에 비치네(復照靑苔上)

당나라 삼시인(三詩人)인 이백을 시선(詩仙), 두보를 시성(詩聖) 그리고 왕유(699~759)를 시불(詩佛)이라 칭한다. 왕유는 돈독한 불심으로 불교적인 삶을 살아 유마힐 거사에 빗대어 왕마힐(王摩詰)이라고도 불렸다.

왕유는 중국 장안의 동남쪽에 위치한 종남산과 남전산 사이에 흐르는 풍광이 빼어난 강 기슭에 망천장(輞川莊)이란 별장을 짓고 벼슬이 상서(장관)에 이르렀지만 40세에 사직하고, 평생을 홀로 살면서(부인과 30세에 사별) 낮에는 불교경전을 보고 밤에는 참선을 하면서 자신이 깨달은 선적 경계를 시로 읊었다.

그가 망천장에서 읊은 산수 자연시 가운데 ‘사슴 울타리’는 선적인 풍취가 은은하게 잘 드러난 선취시(禪趣詩)의 전범이 되어 절창으로 뽑히고 있다. 왕유는 ‘망천 20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시를 지었다. 소동파가 이 ‘망천도’를 보고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유명한 평론을 하였다. 남종화의 비조가 되어 중국은 물론 조선, 일본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오언절구의 20자 짧은 정형시다. 1구(起句) “텅 빈 산 사람은 보이지 않고”에서 선의 고요와 적막함을 표현하고, 공산(空山)은 사람이 없는 텅 빈 산이다. 실체가 없는 반야 공은 불교의 깨달음의 핵심 내용을 상징한다.

2구(承句) “아득히 들려오는 두런거리는 사람의 소리 뿐”은 눈에 보이는 것(見)은 없으니 작은 소리라도(聞, 響) 있어야 살아 있는 활공(活空)이 된다. 적막뿐이면 죽은 공이다. 보조 지눌 선사는 “우리의 본래마음(자성 불성)은 공적하지만 신령스럽게 깨어 있는 적적성성(寂寂惺惺)하고, 공적영지심(空寂靈知心)”이라고 하였다.

3·4(轉結)구 “보라 석양빛이 숲 속 깊숙이 들어와 다시금 푸른 이끼 위에 비치네”는 반전(反轉)의 깨달음이 나타났고(返, 入), 부처의 은덕이 높고 넓게 비춘다(照, 上). 깨달음을 얻은 눈으로 부처의 광명이 온 누리에 빛나는 모습을 바라본다. 한시의 맛은 운율과 서로 짝이 어울리는 대구의 절묘함이다. 왕유의 시는 음율이 아름다운 것이 최고로 평가받았다. 전문 불교용어를 한 자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부처의 깊은 사상을 잘 드러내는 고수이다.

이 시의 소재는 푸른 이끼이다. 깊은 숲 속 골짜기에 석양빛이 깊숙이 들어와 푸른 이끼를 비추는 전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양탄자처럼 바닥에 잘 달라붙어 보드랍게 깔려있는 푸른 이끼의 모습은 선경이다. 이끼의 미학이다. 여기서 푸른 이끼는 중생계의 모습을, 석양볕은 부처의 자비광명을 상징한다. 이끼는 바다 식물이 처음 육지로 나오는 선태류 식물이다. 적당한 습기가 있어야 하고, 햇볕도 약간은 있어야 하고, 바람 통풍은 필수적이다. 석양볕이 가장 좋다. 이끼는 홀로 자랄 수 없다. 군생집단으로 모여야 잘 자란다. 가난한 민초(民草)와 같다. 왕유는 푸른 이끼에서 생명력 있는 중생의 모습을 보았다.

김형중 문학평론가

 

지난해 아내와 아들 지수의 손을 잡고 늦겨울 해질녘에 일본 교토의 은각사를 참배했다. 은각사는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끼고 자리 잡은 전형적인 일본 정원 문화의 정수를 꾸민 작은 산사인데 물이 졸졸 흐르는 골짜기 사이로 온통 푸른 이끼가 경내를 덮고, 하얀 은으로 단청한 법당이 단정하고 청아하다. 왕유의 시 ‘녹채(鹿野苑)‘가 떠올랐다. 어디선가 불쑥 사슴이 나타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