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백고좌] 조계종 전 포교원장 혜총 대종사
“문수보살 지혜는 ‘계율’서 나온다” 지계,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법 계율 지켜야 비로소 성불 가능해 악업 짓는 순간 세상은 오탁악세 자운 스님 “광명진언 독송” 가르침 출가 후 70여 년 동안 지키며 살아 “비로자나 광명 비추니 마음 밝아져”
6월 25일 조계사에서 전 조계종 포교원장 혜총 대종사를 친견했다. 가사 장삼을 수하고 대웅전에 들어간 혜총 스님은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린 뒤 필자를 조계사 인근의 전통찻집으로 안내했다.
온화한 웃음으로 맞아주시는 까닭에 혜총 스님을 뵙자마자 “인자하면 뜻에 혼란이 없나니 자비가 제일가는 행이다.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면 그 복은 한량없으리라”라는 〈법구경〉 구절을 떠올렸다.
‘광명진언’을 암송하는 이유는
혜총 스님은 조계사 대웅전에서도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기 전에 ‘광명진언(光明眞言)’을 염송했다. 스님은 법문에 앞서 항상 광명진언을 암송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필자가 그 이유를 묻자 혜총 스님은 자신의 출가인연에 대해 털어놨다.
“제가 출가하지 않으면 단명할 팔자라는 말을 듣고서 어머니는 저를 양산 통도사에 데리고 갔습니다. 사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거름이 지고 있었습니다. 자운 스님은 어린 제게 적멸보궁에 가서 3000배를 올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따지듯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3000배를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자운 스님께서 인자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업이 있다. 절을 올리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서란다. 오늘 네가 3000배를 하면 나중에 큰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자운 스님이 시키는 대로 적멸보궁에 가서 3000배를 올렸습니다. 자운 스님은 미리 준비한 마니가사(摩尼袈裟:조수가 없이 하나로 된 가사)를 제게 건넨 뒤 사미계와 보살계를 내려주었습니다. 당시 자운 스님이 제게 강조하신 것이 바로 광명진언(光明眞言), 발일체업장근본득생정토다라니(拔一切業障根本得生淨土陀羅尼), 아미타불종자진언(阿彌陀佛種子眞言)을 독송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혜총 스님은 광명진언의 공덕에 대해 “비로자나불의 광명이 비추면 마음이 절로 밝아진다”며 “살아 있는 사람들을 성불의 길로 인도하고, 망자들을 극락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진언”이라고 설명했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 타야 훔’이라는 광명진언에서 ‘바이로차나(Vairocana)’는 비로자나불을 의미한다. 광명진언의 영험에 대해 신라의 원효 스님은 “광명진언을 몇 차례 듣기만 해도 모든 죄업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사료에 따르면 원효 스님은 그릇에 흙을 담아놓고 광명진언을 108번 외우는 방식으로 영가들을 천도했다고 한다.
‘발일체업장근본득생정토다라니’에 대해 스님은 “모든 업을 소멸하는 것이 곧 극락세계에 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혜총 스님은 ‘아미타불종자진언’에 대해서는 “아미타부처님께서 법장 비구로 계실 때 48가지 원을 세우셨다. 48가지 원 중에 ‘아미타불을 열 번만 불러도 업장이 소멸돼 이생에 있으면서 극락의 복을 받고 죽어서도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서원이 있다”고 강조했다.
혜총 스님에 따르면 자운 스님께서 평생 동안 수행한 진언이 ‘아미타불종자’ 진언이었다고 한다.
“염불수행자는 마음이 청정해야 합니다, 염불하는 사람은 마땅히 자비심, 희사심, 지계심, 인욕심, 겸허심, 평등심, 일체심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탐·진·치 삼독심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일생에 지은 선악의 업만 남게 됩니다. 나쁜 업을 지었으면 악도(惡道)로 가고, 착한 업을 지었으면 선도(善道)로 가고, 염불을 하는 업을 지었으면 극락세계에 가는 것입니다. 오계 내지는 십계를 받아서 지키는 가운데 극락왕생을 발원해야 극락왕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염불하는 사람은 부모님, 나아가서는 조상님께 세간의 효와 출세간의 효를 동시에 행해야 합니다. 세간의 효는 부모님을 정성스럽게 봉양하는 것이고, 출세간의 효는 부모에게 염불을 권하여 정토에 왕생케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셨다시피 이 세상은 무상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임종게를 통해서 법에 의지하고 자신에게 의지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세월이 쏜 화살처럼 빠르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용맹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혜총 스님은 자운 스님으로부터 사미계와 보살계를 받으면서 속으로 ‘내가 이 스님을 40년 동안 시봉하리라’라고 다짐했고, 실제로 혜총 스님은 출가한 이튿날 다짐한 대로 40여 년 동안 자운 스님을 모셨다. 오랜 세월 자운 스님을 모시는 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혜총 스님은 “내가 자운 스님을 모신 게 아니라 자운 스님이 나를 모셨다”고 회고했다.
계율 지키는 것이 佛法 실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율사인 자운 스님에게 배운 까닭에 혜총 스님은 불자의 첫째 덕목으로 계율을 지킬 것을 꼽았다.
“계율을 지키며 사는 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입니다. 지계(持戒)는 ‘계율을 지키며 산다’는 의미입니다. 계율을 지킬 때 비로소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신분이 아니라 행동에 따라 귀천이 나눠진다’고 설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행동’은 다름 아닌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을 갖고 악한 말을 하고 악한 행동을 하는 순간 이 세상은 오탁악세(五濁惡世)가 되고, 역으로 선한 마음을 갖고 선한 말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하는 순간 이 세상은 처염상정(處染常淨)이 되는 것입니다.”
몇 해 전 혜총 스님은 중국의 오대산에 성지순례를 갔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오대산의 현통사(通寺)와 영축총림 통도사(通度寺)의 통(通) 자가 같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알자 스님은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 율사의 행장이 떠올랐다. 자장 율사는 문수보살의 주석처인 오대산(五臺山)에 머물렀다.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의 현신을 만나 석가모니가 입던 가사 한 벌과 바리때 하나, 부처님의 정수리 뼈와 치아사리를 건네받았다. 선덕여왕의 요청으로 귀국한 자장 율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 바로 통도사였다.
“저는 현통사와 통도사의 통(通)자의 의미에 대해서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죠. 무엇이 통한다는 의미일까요? 아마도 문수보살의 지혜가 통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수보살의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계율에서 오는 것입니다.”
혜총 스님은 필자에게 물었다. “문수보살의 지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 세상의 곳곳에 편재(遍在)해 있지 않을까요?”
말을 마친 혜총 스님의 표정은 더없이 여여(如如)했다.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율사였던 자운 스님의 가르침도 이 세상에 두루 편재해 있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혜총 스님은 자운 스님을 모신 복덕으로 성철, 청담, 향곡, 운허, 월하 스님 등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맥(禪脈)들에게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지관, 월운, 홍법 스님 등 강백의 동량들과도 반연을 맺을 수 있었다.
“포교가 수행, 수행이 포교…부처님 법 전하자”
제5대 포교원장 역임하며 포교 매진
법정·대행 스님, 이 시대 부루나 존자
“부처님 제자라면 수행, 포교는 기본”
꼭 알리고 싶던 두 스님과의 인연
조계종 포교원장을 역임한 혜총 스님이 꼽는 이 시대의 부루나는 법정 스님과 대행 스님이다. 혜총 스님과 법정 스님의 인연은 해인사에서 싹 텄다. 당시 법정 스님이 해인사에서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었다. 글을 쓰느라 여념이 없는 까닭에 법정 스님은 새벽예불이나 대중울력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생활을 하지 않는 법정 스님에 불만을 느낀 혜총 스님이 자운 스님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스님, 대중생활에 수시로 빠지는 법정 스님을 왜 그토록 아끼시는 겁니까?”
그러자 자운 스님이 인자한 말투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법정 스님은 조계종단을 위해서 큰일을 할 동량이다. 그러니 너는 법정 스님을 잘 모셔야 한다.”
법정 스님의 방에는 천장까지 인문학 및 사회과학 서적들이 쌓여 있었다. 방에 놓인 전축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원고지들을 보고서 혜총 스님은 법정 스님이 할 불사가 다름 아닌 문서포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친해진 두 스님은 함께 화단을 가꾸기도 했다. 대구에 가서 코스모스 씨를 사온 뒤 해우소 주변 잡초가 우거진 곳에 씨앗들을 뿌렸다. 가을이 되자 피어난 코스모스들이 부는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렸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것 같은 코스모스 꽃밭에서 법정 스님은 혜총 스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산에는 꽃이 피네.” 먼 훗날 법정 스님으로부터 〈산에는 꽃이 피네〉를 받고서 혜총 스님은 “어디서 많이 들은 말입니다”라고 말했고, 법정 스님은 “올해도 가을이 되면 해인사에 코스모스가 피어나겠지요”라고 대답했다. 이런 오랜 인연에 보답하기 위해 법정 스님은 혜총 스님이 법문집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를 출간했을 때 추천사를 써줬다.
혜총 스님이 대행 스님을 이 시대의 부루나 존자로 꼽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혜총 스님이 포교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한마음선원에 가서 대행 스님을 친견했다. 혜총 스님이 “대중 포교를 위해서는 불자 예술인 단체와 불자 체육인 단체의 설립이 시급하다. 하지만 이러한 원력을 실현하기에는 종단의 재정이 부족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하자 이 말을 듣고서 선뜻 대행 스님이 3억 원을 쾌척해줬다. 대행 스님이 후원해준 재원으로 태릉선수촌과 펜싱경기장 법당을 개원할 수 있었고, 체육인불자회도 설립할 수 있었다. 당시 체육인불자회 회장을 추대된 사람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전 중앙신도회장)이다. 대행 스님이 후원해 준 덕분에 결과적으로 불자체육인들이 결속할 수 있었고, 중앙신도회도 조직이 확대되고 체계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혜총 스님은 포교원장 재임 당시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전국의 108개 전통사찰이 각기 다른 스포츠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것을 계획했다. 이를테면 월정사는 양궁 템플스테이, 범어사는 태권도 템플스테이를 정례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계와 정부 부처와 체육단체가 합심해서 계획했던 전국 전통사찰의 스포츠 템플스테이는 안타깝게도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대행 스님이 스포츠 템플스테이 계획을 듣고서 무척 기뻐하셨어요. 나중에는 이 계획이 실현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했고요.”
큰일하려면 하심할 줄 알라
“출·재가를 막론하고 모든 불자에게 당부할 말씀”을 부탁하자 혜총 스님은 “큰일을 하려면 하심(下心)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그 실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를 들었다.
범어사 부주지 재임 시 혜총 스님은 노무현 인권변호사와 만났다. 친분이 생긴 두 사람은 바둑을 즐겼다. 같은 급수였지만 몇 차례 수담(手談)을 나눠보고서 자연스럽게 혜총 스님은 백을, 노무현 변호사는 흑을 잡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승패는 동일했다.
혜총 스님이 한 점을 깔고 두자고 제안했지만 자존심이 강한 노무현 변호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다 못한 혜총 스님은 “큰일을 하려면 하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던졌다. 이 말을 듣고서 노무현 변호사는 자못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 부부는 감로사를 여러 차례 찾았다. 마지막 방문 때 혜총 스님은 부부에게 광명진언을 독송해준 뒤 “청와대에 가거든 부처님을 잘 모시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비록 대외적으로는 천주교 신자라고 밝혔지만,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이러한 사실은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혜총 스님은 “불자라면 마땅히 인연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자운 스님에 대한 회고와 찬탄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저는 세납과 법랍이 높은 구하 스님이 자운 스님에게 예를 갖춰 대하는 것을 봤습니다. 마치 어른스님을 대하듯 극진했죠. 제가 구하 스님께 이유를 여쭙자 스님은 ‘자운 스님은 나의 은사스님인 경월(慶月) 도일(道一) 스님이 다시 환생한 분이란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당시 혜총 스님은 환생이라는 말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구참(久參)이 되고나서야 혜총 스님은 구하 스님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꽃이 진 자리에 다시 꽃이 피어나듯이 죽음 뒤에는 새로운 삶이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스님의 저서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는 책 제목은 자운 스님이 혜총 스님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심성이 맑다”는 한 노스님의 말씀을 듣고서 혜총 스님은 꽃과 나무를 가꾸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산야에서 묘목들을 캐서 화분에 심어 가꾸는 분재 취미로 발전하게 되었다. 자운 스님을 모시고 며칠 바깥에 나갔다가 돌아오니 분재의 나무들이 모두 말라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 혜총 스님이 슬퍼하자 자운 스님이 물었다.
“네가 꽃을 사랑하느냐?”
혜총 스님은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
혜총 스님은 말문이 막혔다. 그 순간 자신이 가지를 치고 뿌리를 자를 때 얼마나 나무는 아팠을지 깨닫게 되었다. 말없이 고개를 숙이자 자운 스님이 말을 덧붙였다.
“꽃이 너를 사랑할 때까지 너는 꽃을 사랑하지 말라.”
혜총 스님의 가슴에는 자운 스님을 모셨던 기억들이 꽃처럼 아름답게 남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