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백고좌] 서울 도안사 회주 선묵 혜자 대종사

“기도하고 수행하라…삶이 행복해진다” 불교는 ‘실천’ 중시… 수행정진 기본 기도·절·참선 등 자기 수행 필요 “정진하면 업장소멸…미래가 달라져” 108산사순례 ‘韓순례문화’ 새장 열어 평화 기원하며 룸비니에 범종 불사도 “부처님 평화 사상, 세계에 전해지길”

2024-06-27     유철주 작가
선묵 혜자 대종사는… 1964년 청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통도사 강원에서 경학을 연찬하고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수료했다. 서울 도선사 주지와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사서실장, 불교신문 사장, 중앙종회의원, 군종특별교구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108산사순례기도회’를 결성한 뒤 현대한국불교사에 전무후무한 불교신행문화를 이끌었다. 서울 도안사 회주로서 지금도 대중들과 함께 기도정진하고 있다.

충북 충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자란 어린 소년은 스님이 된 사촌 형님의 추천으로 수행자의 길에 나섰다. 부모님 곁을 떠나 절로 가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스님이 되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설레는 마음도 컸다. 

버스와 기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서울은 엄청났다. 전에 보지 못한 도시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해 또 버스를 몇 번 더 탄 끝에 삼각산 도선사에 도착했다. 1964년의 일이다. 

곧바로 행자생활이 시작됐다. 행자를 잘하면 ‘도인(道人)’을 만날 수 있다는 선배스님들의 격려에 힘을 냈지만 고된 생활에 수시로 코피를 쏟았다. 밥 짓고, 밭 매고, 나무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었다. 녹초가 되어 새우잠을 자고 나면 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부모님이 그리워졌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팔만사천 번씩 들었다. 

어린 나이에 출가한 행자가 안쓰러웠는지 ‘도인’ 은사스님은 격려 법문을 자주 해줬다. 특히나 〈부모은중경〉에 대한 말씀은 가슴으로 다가왔다.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집중했다.

환갑이 넘은 은사스님은 할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예불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은 어린 제자에게 “어서 일어나 예불 올리자. 부처님 밥 먹고 부처님 제자 되려면 조석예불에 빠지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가끔씩 공양으로 올라온 과일을 남겨 어린 행자가 먹을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행에 있어서는 좀처럼 틈을 주지 않았다. “모름지기 수행자가 먹는 죽이란 하늘이 보이고 별이 보일 정도가 돼야 한다”고 시주밥의 은혜를 누차 강조하기도 했다.

행자생활이 익숙해질 즈음부터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은사스님에게 참선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참선하고 싶은 이놈이 누구인고? 그걸 찾아라”고 했다. 어디엔가 있을 ‘이놈’을 찾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렇게 수행하고 정진한 어린 행자는 어느덧 출가 60년을 맞이했고 한국불교 신행 문화의 역사를 바꿔놨다. 사람들이 “순례문화는 선묵 혜자 대종사 전과 후로 나뉜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어린 행자를 올곧은 수행자로 키워내기 위해 진력한 그 스승은 현대 한국불교의 중흥조로 존경받는 청담 스님. 설명이 필요 없는 선지식이다. 

법을 구하는 피안처, 道安寺
수락산이 봄을 내려 보내고 여름을 맞이할 즈음 도안사(道安寺)를 찾았다. 아침부터 세찬 비가 내렸지만 기도를 하러 올라가는 불자들의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워 보였다. 가파른 길을 헐떡거리며 올라가니 이미 수많은 대중들이 33관음기도를 올리고 있다. 대중들이 기도를 하는 사이 경내를 둘러봤다. 

도안사는 선묵 혜자 대종사가 1976년부터 불사를 시작해 대웅전과 미타전, 천불전, 범종각 등을 여법하게 조성했다. ‘108 평화보궁 근본도량’이자 부처님 탄생성지 네팔 룸비니에서 모셔온 ‘평화의 불 시원도량’답게 대한민국 유일의 108산사순례 벽비와 평화의 불 등화대도 있다. 대웅전 바로 옆에는 33관세음보살과 18나한을 모신 일심광명각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리석은 중생은 홀로 있으면 외로워하고, 함께 있으면 귀찮아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수행자는 홀로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고, 함께 있어도 귀찮아하지 않는다. 마치, 산봉우리의 소나무가 홀로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고, 저 숲의 소나무가 함께 있어도 귀찮아하지 않듯이….’

불자들의 쉼터에 걸린 글귀를 눈에 담고 가슴에 넣었다. 곳곳을 둘러보니 소문대로 도안사는 수많은 대중이 법을 구하는 피안처였다. 

오전부터 시작된 관음기도는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계속됐다. 매월 둘째 주 금·토·일요일 3일간 진행되는 관음기도에는 연인원 약 1000여 명의 불자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 이날도 400여 명의 대중들이 경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기도가 끝나고 평화의 불이 봉안된 ‘평화의 진신보탑’ 앞에서 혜자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기도의 모든 과정을 직접 주관했다. 신심(信心)과 원력(願力)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불교는 실천의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든지, 참회의 절을 하든지, 주력이나 염불을 하든지, 참선을 하든지 자기 스스로 수행을 해야 합니다. 도안사에서는 관음기도뿐만 아니라 매월 초하루부터 초삼일까지는 신중기도, 매월 음력 8일에는 약사기도 및 방생, 매월 음력 18일에는 지장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매월 넷째 주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108산사 영상순례도 하고 있어요. 우리가 업장을 소멸하고 뜻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스스로 얼마나 더 노력을 하고 진실되게 열심히 기도를 하느냐에 따라서 현재와 미래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지극한 기도와 염불로 우리는 나쁜 운명을 좋은 삶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기도정진에 대한 혜자 스님의 관점은 확고했다. 스스로 기도하고 정진해야 보다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1월부터 시작한 관음기도는 3년 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갖가지 고뇌를 받는 무량 백천만억의 중생이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듣고 일심으로 기도하면 관세음보살님은 즉시 그 음성을 관하여 원을 들어주시고 모두 성불케 한다’고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도안사에서는 현세에서 괴로움을 겪는 중생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도록 중생의 소리를 마음으로 포용하는 관세음보살님을 일심으로 부르며 모시고자 관음기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혜자 스님은 지난해까지 광명진언(光明眞言) 1080독송기도도 진행한 바 있다. 스님은 광명진언 기도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광명진언은 가피를 주시는 부처님의 진언이요, 모든 불보살님의 총주(總呪)이며, 부처님의 대광명으로 모든 소구소망을 얻게 하는 신령한 힘이 있습니다. 원효 대사가 지은 〈안심락도〉에 광명진언을 외우는 소리를 들으면 중생들의 모든 죄가 소멸하고, 무덤이나 혼백 앞에서 108번 외우면 죽음의 주인공이 죄를 벗고 극락왕생하게 되며, 환자 앞에서 1080번 외우면 과거에 의한 질병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원효 대사는 흙모래를 앞에 놓고 광명진언을 108번 외운 뒤, 이 모래를 죽은 자의 시신이나 무덤 위에 뿌려주면 이 흙모래를 맞은 영혼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한다고 하였습니다. 

광명진언은 여의주와 같아서 일체 지혜와 행복과 유형무형의 모든 광명을 불러오는 보배의 다라니진언입니다. 집에서도 할 수 있고 직장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광명진언 독송기도도 좋고 관음기도도 좋습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합시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관세음보살 귀명문’의 구절이 더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향로에 향을 사르니 법계에 향기가 진동하고/ 부처님 회상에 퍼지어 가는 곳마다 상서로운 구름/ 저희 뜻 간절하오니 부처님 강림하옵소서.

지난해 11월 네팔 룸비니에 조성한 한국의 종을 선혜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타종하고 있는 선묵 혜자 스님.

“인욕보살 되세요…적이 없어집니다”

수행은 기본… 수행돼야 기도도 가능
마음공부 함께 인욕하는 마음 가져야
“인욕하면 더 큰 행복 느낄 수 있어”

역사의 역사가 된 ‘108산사순례’ 
혜자 스님이 대중들과 함께 기도를 올리는 이유는 자명했다. 기도하고 수행해야 삶을 바꿀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광명기도와 관음기도 전에는 한국불교 순례문화의 역사를 바꾼 108산사 순례와 53기도도량 순례가 있었다. 

‘108산사를 찾아 108불공을 올리며 108선행을 통해 108공덕 짓고 108배하며 108번뇌를 소멸하고 108염주를 만들어가는 인연공덕을 쌓아가는 선묵 혜자 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기도회’는 남북의 평화적 통일과 지구촌은 하나라는 모토와 부처님의 평화사상을 전한다는 취지로 2006년 9월 첫발을 내딛었다. 2015년 10월 9년간의 여정을 마친 뒤에도 2차 108산사순례와 53기도도량순례도 계속됐다. 

108산사순례기도회는 서울 도선사와 양산 통도사를 시작으로 매달 5000여 명이 참여해 전국의 사찰을 순례하며 기도와 수행, 나눔과 봉사를 실천했다. 9년 동안 연인원 약 54만명이 동참해 지구를 204바퀴나 돌았고 여기에는 1만 2000여 대의 버스가 동원됐다. 또 순례하는 사찰마다 회원들이 십시일반 쌀을 보시해 총 3000여 가마의 쌀을 공양했고, 군 장병들에게 415만개의 초코파이를 보시했으며, 순례지에서 농어촌 직거래 장터를 개설해 회원들이 30억원 어치의 농특산물을 구매하는 등 각종 진기록을 세웠다. 혜자 스님이 진행한 순례는 ‘혁명’이었고 ‘역사의 역사’가 되었다.

“108산사순례가 ‘바른 마음, 자비로운 실천,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목표에 따라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순례였다면 53기도도량순례는 발원과 기도, 수행이라는 신행·수행문화에 중점을 두고 진행했습니다. 선지식은 앉은 자리에서는 만나지지 않습니다. 오직 보리심을 발하여 찾아 나설 때만이 비로소 우리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결코 주저앉거나 물러나지 않겠다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발심으로 마침내 성불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정진해야 합니다.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께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108산사를 순례하기는 한국불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하시며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그 오랜시간 동안 사고 한번 없이 순례를 진행한 것은 많은 대중들이 마음을 모아준 결과이고 또 불보살님들께서 가피를 내려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때 많은 힘을 받아 순례기도를 진행했고 뒤이어 광명진언기도와 관음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관음기도가 끝날 때가 108산사순례 20주년이 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함께해 주시는 모든 대중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기도의 힘으로 이룬 성과들은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도 굳이 하나 의미 있는 일을 꼽는다면 지난해 네팔 룸비니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한국의 종’을 세계에 울린 것이다.

룸비니에 조성한 한국의 종은 무게가 1.5t이다. 충북 진천에서 제작해 부산항으로 이운한 뒤 다시 배에 싣고 싱가포르를 거쳐 인도 콜카타로 옮겼다. 콜카타에서 트럭에 싣고 육로를 통해 네팔 룸비니로 오는 데만 꼬박 5일, 총 53일이 걸렸다. 종 이운과정보다 그전 과정은 더 드라마틱했다. 

“2008년 네팔은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해외의 관광객이나 히말라야에 가고 싶은 등산객들도 네팔 방문을 꺼릴 정도였어요. 네팔 정부로서도 여러가지가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108산사순례기도회원 300명을 이끌고 전세기를 이용해 룸비니 순례를 갔습니다. 네팔 정부로선 우리 순례기도회가 그저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우리 순례단이 네팔에 머무는 1주일간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는 평화 휴전 협정이 맺어졌습니다. 우리 순례단의 방문이 협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네팔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네팔 정부는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해 저에게 룸비니 동산에 있는 땅 2000평을 통 크게 기증했습니다. 그래서 2000평 부지 내에 부처님 탄생불을 모셨습니다. 탄생불의 발바닥에는 인도 쿠시나가르에서 받은 진신사리를 모셨습니다. 탄생불을 조성하고 한국의 종을 바로 조성하려 했는데, 코로나가 찾아와 진행하지 못하다가 작년에서야 한국의 종을 건립했습니다.” 

혜자 스님은 “룸비니 동산을 찾는 모든 세계인들이 한국의 종을 칠 수 있도록 개방했다”며 “한국의 종이 룸비니에 울릴 때마다 부처님의 깨달음, 부처님의 평화사상이 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전해지길 바라고 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갈등이 종식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조만간 도안사에 조성된 평화의 진신보탑과 똑같은 탑을 룸비니에도 조성해 성역화 불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마음공부와 忍辱이 필요한 때
수많은 신화를 써낸 스님은 “그래도 수행자의 본분은 수행”이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수행이 바탕이 되어야 기도도 할 수 있고 불사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청담 스님과의 이야기를 한 구절 들려줬다. 출가하고 세월이 좀 흐른 어느 날 청담 스님이 혜자 스님을 불렀다. 

“나는 고등학교 때 길에서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다가 어떤 스님이 ‘마음이 타는 것을 물로 식힐 수는 없다’고 하셔서 그 말씀을 듣고 발심해 출가를 했다. 너는 무슨 마음으로 출가를 했느냐?”

“큰스님! 저는 아직 수행이 부족해서 지금도 그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 ‘모르는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해 깨달음을 구해 보아라.”

청담 스님의 말씀을 들은 그 순간부터 혜자 스님은 ‘모르는 마음’을 찾기 위해 기도하고 정진했다.

“저의 모든 기도와 수행의 여정은 이때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중과 함께하며 저도 성장하고 우리 불자들도 좀 더 성숙한 수행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은사스님께서는 ‘마음’에 대해 ‘이 마음, 생명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 그렇다면 이 생명은, 마음은 곧 우주의 핵심이며, 만물의 생명인 것이다. 영원한 실재인 이 생명, 이 마음을 떠나서 어느 곳에 인생이 있을 수 있으며, 또한 그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인생이며, 문자 그대로 신비이며 무사의(無邪疑)한 이 생명을, 이 마음을, 이 나를 바로만 깨닫고 보면 인생의 모든 문제는 모조리 해결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고 있습니다.”

혜자 스님은 마음공부와 함께 인욕(忍辱)의 중요성과 필요성도 강조했다. 

“인욕을 하게 되면 적이 없습니다. 인욕을 하게 되면 다음에는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번 두 번 인욕을 실천하다 보면 언젠가는 제 은사스님처럼 ‘인욕보살’이 되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더 확신하게 됐다. 혜자 스님이 만든 엄청난 성과는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며, 절실한 기도와 수행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6월 관음기도의 둘째 날에 이어 마지막 날에도 도안사를 찾았다. 성큼 다가온 초여름의 더위가 괴롭혔지만 대중들의 기도는 여법하고 여법했다. 

기도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그때 하늘에는 일심광명 무지개가 떠올랐다. 혜자 스님과 같이 기도하고 정진하는 대중들에게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항상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관음기도 중 도안사 상공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일심광명 무지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