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백고좌] 성주 자비선사 주지 원허 지운 스님
“선명상, 생사고락 벗어난 대자유 얻는 길” ‘명상=힐링’은 본래 목적이 아냐 선명상 목적은 생사해탈에 있어 깨달음 자신감 얻으려면 정진을 자비수관 등 다양한 수행법 창안 ‘자비손’ 방편으로 몸, 마음 집중 “존재 그대로의 진실 보라” 강조
유월의 신록은 어루만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연초록빛이다. 자비선사의 우뚝 솟은 일주문은 무심한 듯이 객을 맞이한다. 푸른빛의 대나무는 성긴 바람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무상을 노래하는 듯하다.
명상 수행을 체계화하고 대중화하는 데 앞장서 온 원허 지운 스님의 인터뷰는 성주 자비선사에서 진행됐다. 나붓이 인사를 드리자 스님께서는 먼저 찻잔을 내밀었다.
“올해 직접 만든 햇차인데 몇 잔 마시면 땀도 나는 녹차입니다. 보이차를 마시면 땀이 나잖아요. 이 차는 녹차인데 땀이 나요. 올해 제다법을 다르게 해서 만들어보았어요.”
자비선사 주변에 차나무를 심어서 직접 차를 만든다는 스님은 해마다 차맛이 다르다면서 활짝 웃었다.
지운 스님은 강백 운성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고, 율사 성우 스님으로부터 전계를 받았다. BTN불교TV 및 BBS불교방송에서 〈법화경〉 〈해심밀경〉 〈한글 원각경〉 〈대승기신론〉 등 경전 강의를 비롯하여 자비다선, 자비수관에 관한 강의를 진행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을 여쭈었더니 금요일과 주말은 템플스테이로 하루 종일 일과표가 빡빡하게 짜여 있단다. 자비선사는 자비선 명상 관련해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지운 스님이 지도하는 명상 수행에는 자비수관(좌선명상), 자비경선(걷기명상), 자비다선(차명상) 등 모두 ‘선(禪)’에 바탕하고 있다.
“선의 목적이 생사해탈입니다. 삶과 죽음의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대자유, 이게 목적입니다. 죽음의 문제까지 해결한다는 것, 선의 목적이 열반입니다. 열반의 다른 이름이 진공묘유, 선에서 말하는 본래면목입니다. 우리는 명상이라고 하면 신비 체험, 힐링, 치유를 떠올립니다. 그것은 본래 목적이 아닙니다. 명상에서 힐링은 기본입니다. 설사 못 깨닫는다 하더라도 상관없어요. 하다 보면 깨달을 수 있겠구나, 생사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옵니다. 그 확신으로 수행을 하다보면 숨도 쉬지 않고 땀 흘리지 않는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어요.”
자비란 너와 내가 둘이 아닌 본래 하나라는 뜻이다. 자(慈)는 사랑으로 남에게 베풀어서 나와 남을 함께 기쁘게 한다는 것이며, 비(悲)란 상대방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이다. ‘자비선’은 자비와 지혜를 계발하는 명상이다. 명상을 통하여 마음의 본성은 병과 죽음이 없음을 알게 하고, 명상을 통해서 욕심을 줄이고 욕망의 불을 끄는 방법을 알게 하여 본래 죽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자비심에도 단계가 있는데 법(다르마)을 체험하기 전의 자비는 자신이나 남의 괴로움을 자각하는 데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상대가 사람이면 사람을 자비로 보고, 또 동물이면 동물을 자비로 대하는 것이다. 이 자비는 생명체가 겪는 괴로움에 대해서 일어나는 자비심이다.
다음은 ‘법연자비’로 법을 통해 보리심을 일깨우는 자비심이다. 법의 눈으로 보면 삶은 연기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므로, 모든 것이 조건에서 생기고 사라지는 무상한 것으로 본다. 모든 존재 자체가 똑같이 무상한 존재라는 것, 생기면 사라지는 존재임을 알게 되면 화내고 탐욕을 부린다는 것이 불필요함을 알게 된다.
그 다음은 무연자비로 공성에 대한 지혜가 있으면 모든 존재는 똑같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을 가진 존재임을 알게 된다. 법의 실상을 체험하고 난 뒤의 자비는 자아 그 자체가 없음을 알게 된다.
이에 대해 지운 스님은 “〈범망경〉에도 사물에 대해서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구절이 있다”면서 “유정무정에 대해서 어떤 특정한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한한 자비를 일으키는데, 그 바탕이 바로 모든 존재의 본질은 실체가 없이 비어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비어 있다 것은 그 안에 무한한 가능성, 무한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는 의미”이라고 강조했다.
“자비는 보리심을 일으키고 보리심이 일어나면 바로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바른 깨달음이 일어나면 그 다음에는 자기의 자비심을 실천하는 쪽으로 갑니다. 이때 보리심의 내용은 내가 일체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염원이지요. 보리심은 말 그대로 깨달은 마음인데 여기에서 자비심이 일어나게 됩니다.”
문득 고개를 들고 창밖을 내다보니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도, 철 늦은 꽃을 피운 철쭉도 자비심을 품고 있는 듯 했다.
지운 스님은 송광사와 동화사에서 강주를 역임했다. 강주로서 보낸 세월이 15년이 넘는다. 적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있을 것 같아 물었더니 “당시 교수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저의 강의 방식이 좀 달랐어요. 공부는 묻고 답하는 가운데 실력이 향상되는데, 수업 시간에 질문하라고 하면 아무도 하지 않아요. 공평하게 하기 위해 산통을 만들어서 뽑기를 하여 당첨되는 스님은 저의 질문에 답하게 했어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올 때까지 산통을 흔들어서 여러 스님께 질문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지요. 학인스님들은 언제 자기한테 질문이 돌아올지 모르니까 거의 밤 12시까지 도서관에 불을 켜놓고 공부를 했어요. 학인스님들이 3개월 정도까지는 대답을 잘 못했지만, 3개월이 지나자 원하는 대답이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알기만 하고 말을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게 해주는 게 하나의 교육 방법이었지요. 제가 송광사에 있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방법을 사용했어요.”
송광사에서 강주로 있을 당시 80권〈화엄경〉을 하루에 1권씩 공부하여 80일 만에 마쳤다고 한다. 이렇게 빨리 진도가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수업 때마다 거의 2시간 동안 질의응답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효과는 대단했다. 실제, 시간이 흘러 강원을 졸업한 스님들이 찾아와서 “어디 가서 토론할 때 얼굴 붉히지 않고 말을 잘할 수 있으며, 법상에 올라가서 법문하기가 어렵지 않다”라고 말한다. 지운 스님의 교수법이 효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비선사는 자연 경관이 아름답고 커다란 연못이 있어 걷기선 명상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지운 스님은 “자비경선에서는 연못, 나무, 바람, 햇빛, 새소리, 물소리, 허공 등 일체의 자연이 경선의 도구가 된다”고 한다.
스님에 따르면 걷기선 명상은 마음공간 넓히기 수행이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남이 즐거우면 함께 기뻐하려는 마음, 남을 평등하게 대하려는 마음, 이렇게 자비희사의 마음을 동서남북 팔방 상하 온 우주로 무한 확장하고 가득 채우기 위해서도 마음의식의 공간을 넓혀야 한단다.
마음의 공간을 넓히면 의식이 깨어나게 된다. 의식이 몸 크기만큼 넓어지거나, 주변 사물과 한 공간을 이루고 유지하는 등 마음의 공간이 넓어지면 넓어진 만큼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고 깨어있는 의식으로 유지된다. 마음공간 넓히기 명상은 바로 ‘깸경선’이라고도 한다.
자비선사가 운영하는 여러 명상 수행법에 대해서도 질문을 이어갔다. 지운 스님은 막힘없이 프로그램을 설명했다.
‘자비수관’은 ‘자비손’이라는 방편을 통해 몸을 대상으로 하는 집중과 통찰을 이루는 수행이다. 자비수관에서 본다, 관한다라는 말의 의미는 ‘마음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으로 보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이에 스님은 “존재 그대로의 진실을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눈은 자기 밖의,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형상만 볼 수 있을 뿐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오직 마음으로 보는 관(觀)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감각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꿰뚫어 보고 아는 앎을 뜻합니다. 수행은 여섯 감각기관의 성격에 의존하지 않고 바로 마음 자체의 보는 성품을 개발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왜곡을 없애고 있는 그대로 존재의 진실을 깨달을 수 있어요. 이것이 ‘심안’입니다.”
스님은 “심안으로 보게 되면 먼저 업의 장애를 없앨 수 있다”고 설했다. 업의 속성은 움직임이며, 맹목적이며 습관적이라서 자기가 하는 일을 순간순간 알아차리기 어렵다. 하지만 마음의 눈으로 자신을 본다면 그런 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심안으로 보면 번뇌망상이 일어나지 않기에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궁극에는 공과 공을 보는 지혜로 법신 즉 지혜의 몸을 이룬다.
“초보자는 습관들이기부터, 조급함 내려놓으세요”
“집중하는 힘으로 삼매가 생기고
무상·무아 이치 관찰한 지혜로써
번뇌 소멸돼 깨달음 이룰 수 있어”
자비수관 수행이 스님께서 창안한 수행인지를 물었더니 지운 스님은 웃으며 이 같이 말했다.
“〈화엄경〉에 열 가지 마음의 손에 대해 설하고 있어요. 〈화염경〉에서 말하는 마음의 손이 곧 ‘자비심’입니다. 제가 ‘자비손’이라고 이름을 붙였지요. 자비수관은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때 자비손은 의식을 자비심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의식으로 만든 자비손은 자비심을 전달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에 대해 묻자 지운 스님은 “삼법인(三法印) 관찰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답을 내놨다. 몸과 마음이 괴로울 때 삼법인을 관찰하면 몸이란 ‘내’가 아니고 ‘내 것’이 아니며, 본래 무아면서 공하여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깨치게 된다는 것이다. 실체 없는 몸을 실체가 있는 것처럼 만드는 생각이 업이며, 이 업을 없애는 것이 삼법인을 보는 목적이자 수행이다.
“수행은 들어가는 길을 먼저 알고 하는 것이지, 모르고 하면 체험이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지요. 모든 것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일 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수행을 시작하면 삼법인을 체득할 수 있어요. 삼법인은 모든 속박의 자물쇠를 풀어버리는 진리의 열쇠이며, 자비손과 정념에 의해 나타나는 깨달음의 현상입니다.”
자비손이 의식으로 만든 상상의 손이듯이 ‘연꽃 찻잔 명상’도 연꽃 찻잔을 시각화해서 상상하는 차명상법이다. 시각화에 대해 질문하자 지운 스님은 〈청정도론〉의 사마타 수행을 예로 들며 설명을 이어갔다.
“상상 기법은 2500년 전에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입니다. 이런 방법은 수행논서인 〈청정도론〉에 사마타 수행에 대해서 40가지가 나와 있어요. 40가지의 수행이 상상 기법을 사용합니다. 부처님께서 우리한테 가르쳐준 건데 현대 사회에서는 이것을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합니다. 이미지 트레이닝 혹은 심상화하는 이 방법은 심리치료를 비롯하여 다양하게 응용합니다. 제가 선명상 방법을 개발한 것은 150가지가 넘습니다. 외국에서 들어온 게 아니니 다 ‘K-명상’이지요. 사마타나 위빠사나 수행을 현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새롭게 디자인 한 것입니다.”
결국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지혜다. 지혜와 지식은 다르다. 지혜는 삶과 죽음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데 있어 칼과 같이 괴로움의 원인인 무명과 번뇌망상을 단번에 잘라내는 것이다. 지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가르침이 바로 지혜의 가르침이라고 지운 스님은 전한다.
“지혜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문사수(聞思修)라고 하여 법문을 들어서 얻는 지혜, 법을 사유하여 얻는 지혜, 들은 법문과 사유로 얻은 지혜에 의지하여 닦는 지혜가 있어요. 특히 수혜(修慧)는 선정을 의지하여 오온을 분석해 공성을 드러내는 깨어있는 지혜를 말합니다. 지혜는 지식과 달라요. 지식은 현상의 부분을 아는 것이므로 변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폐기될 수 있어요. 하지만 지혜는 모든 현상, 모든 것의 공통되는 것을 꿰뚫어 아는 것이기에 변하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하는 무상한 존재임을 아는 것, 상호의존하기에 변하고 변하므로 독립된 불멸의 실체가 없음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무상, 연기, 공은 같습니다. 공 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문사수를 통해 얻은 지혜에 의해서 믿음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운 스님은 사무량심(四無量心)인 ‘자비희사(慈悲喜捨)’는 일상에서도 수행에서도 중요한 것이기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자(慈)’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사랑입니다. 사랑을 방해하고 무너뜨리는 것은 탐욕과 분노입니다. 사랑과 연민은 모두가 여기에서 이루어지므로 사랑은 단절로부터 관계성을 회복시켜 주어 행복을 만들어 내지요. 보시, 베풂은 곧 사랑의 표현입니다. ‘비(悲)’는 연민인데, 연민심을 키우는 이유는 원망하는 마음과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제거하여 슬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반성하고 위안을 주면 자기와 남을 원망하고 해치려는 마음이 치유됩니다.
‘희(喜)’는 기쁨입니다. 기쁨은 어떤 만족감에 의해 느끼는 즐겁고 흥겨운 감정입니다. 자기만이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그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나’를 버릴 때 자타의 관계가 회복되고 소통이 일어납니다. ‘고맙다’라는 말은 자타를 연결시키고 관계 회복과 소통이 일어나도록 하지요. ‘고맙다’라는 말에는 무아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일상에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사(捨)’는 평정입니다. 평정은 선정을 일으키며 공성의 평등을 알고 체득하게 하여 과거의 잘못을 없애고 용서하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용서합니다’라고 상대를 용서해 주면 마음의 평등과 평정을 유지하는 사무량심이 길러지지요.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본성이 공성입니다. 마음의 본성은 청정하고 생멸이 없으므로 미워할 대상은 처음부터 없어요. 다만 생멸하는 번뇌를 미워할 뿐입니다.“
자비희사에 대한 설명을 마친 지운 스님은 “일상에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용서합니다”를 사용하게 되면 공성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가정과 일터에서 실참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명상 초보자는 먼저 명상 습관 길들이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스님은 충고한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하는 것도 필요하다. 수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깨달음에도 단계가 있다.
“처음부터 지혜가 있어 번뇌를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중하는 힘으로 삼매가 생기고, 삼매를 의지하여 무상과 무아의 이치를 관찰하여 생기는 지혜로써 번뇌가 제거되고 깨달음을 이룰 수 있어요.”
선명상을 하다보면 인생이 바뀌고, 삶과 죽음의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대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지운 스님의 가르침은 감로수와 같다. 이른 더위에 생긴 갈증이 해소되는 듯 했다.